사물인터넷•자율주행차•5G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수요 늘어

글로벌 반도체 업체의 인수•합병(M&A)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 물고 물리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5세대(G) 네트워크 등의 수요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국 기업의 확장을 막고 자국이 주도권을 확고히 하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 중국의 반도체 굴기, 평지풍파를 일으이키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의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인수 승인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중국은 양사 합병으로 퀄컴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돼 라이선스 조건 등에서 자국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퀄컴에 자국 기업 보호조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퀄컴은 NXP 인수 승인 대상 9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미국, 유럽연합(EU), 한국 등 8개국에서 이미 승인을 받았다. 외국 기업일지라도 현지 매출이 일정액 이상이면 승인을 받도록 한 각국의 경쟁법에 따른 것이다. 퀄컴은 지난해까지 NXP 인수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중국의 조치로 이미 계획에 차질이 생긴 상태다.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한국의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한•미•일 연합의 반도체 기업 도시바 인수도 중국에 막혀 있다. 매각 시한은 지난 3월 31일이었으나 역시 시한을 넘겼다. 인수 승인에 필요한 8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미국, 일본, EU, 한국 등 7개 정부가 승인했다.

미국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堀起) 전략에 ‘태클’을 걸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미국은 싱가포르 통신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불허했다. 미국은 브로드컴 뒤에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 정부가 버티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브로드컴 통신칩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의심은 상당한 근거와 설득력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화웨이는 5G 기술과 관련해 미국 업체들과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할 경우 5G 시대에 화웨이가 통신 기술을 주도할 위험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굴기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간 갈등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은 지난해 27%에 그친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세운 상태다.


█ 미, 중의 밀거래설---한국 왕따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의 불똥이 한국 반도체 업계로 튈까.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늘리겠다고 미국에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2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출렁거렸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주말 연 376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늘리겠다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 중국은 연간 2600억 달러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하지만 이 중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밖에 안 된다. FT는 “중국 측은 한국과 대만 제조사의 수입 물량을 줄이고 대신 미국산 반도체를 더 사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중국의 제안을 미국이 수용할지는 불분명하다는 게 FT 해석이다. 미국이 한국•대만과의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 보도는 좀 달랐다.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더 늘리겠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반도체 수입 물량이 아니라 중국 중앙•지방정부가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산업을 보조해주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이 신규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면서 해외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제하는 데다, 중국이 반도체를 자급자족하는 것 자체가 미국 반도체 산업엔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무역전쟁 발발을 피하려는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어떤 식의 합의를 이뤄낼지는 현재로썬 미지수다.
 
국내 전문가는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늘리더라도 한국 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구원은 “국내 기업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70%,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50%를 웃돌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 수입을 줄이기란 어렵다”며 “중국은 메모리보다는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산 제품의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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