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연구 관련한 영감 얻으려 3년째 '화성 콘퍼런스' 열어...미국의 힘은 이런데서 나온다

로봇 과학자, 뇌신경의학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중력파 천체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설치미술가, 인공지능 연구자, 특수 섬유로 장애인용 옷을 만드는 벤처사업가, 철학자….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 200여명이 최고급 리조트에서 사흘간 머리를 맞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54)가 지난달 19~21일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에서 개최한 '화성 회의(Mars 2018 Conference)'의 모습이다.

베이조스는 자신의 우주 개발 회사 '블루 오리진'과 관련된 과학·기술자들과 벤처 기업인,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영감을 줄' 다양한 분야 인사를 초청해 2016년부터 이 행사를 열고 있다. 학술 연구와 벤처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다지는 비밀 파티다. 올해 처음으로 그 파티에 소수의 언론인이 초청돼 그 전모가 드러났다.

'화성 회의'는 왜 미국이 미래 혁신 기술을 선도하는지, 신산업은 왜 대부분 미국에서 발흥하는지, 나아가 왜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지 그 해답의 일단을 보여준다.

미 뉴욕타임스(NYT)와 경제 매체 쿼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박3일간의 화성 회의는 "영역을 파괴한 과학 학술대회이자, 모두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 호화파티"였다. 학술 발표에선 '인공지능 기술'과 '파킨슨병 치료'에서부터 '근육 세포를 모방한 전자 센서를 이용한 의류 개발' '모기 퇴치용 레이저 기술' '스마트폰에 녹음된 목소리를 분석해 우울증을 진단·치료하는 기술' 등이 소개됐다.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하는 크고 작은 최첨단 기술도 있고,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이 만들어낸 아이디어 차원 기술도 있었다.

유명 설치미술가는 미래의 우주복에 이용될 특수 필름을 이용한 아치형 길을 선보였고, 베이조스는 "내 새 반려견"이라며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노란 로봇개를 이끌고 나왔다. 이런 광범위한 과학기술의 향연을 연 이유에 대해 베이조스는 "(우주 시대라는) 놀라운 르네상스, 황금시대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르네상스·황금시대'라는 모토에 맞게 즐길 거리도 색다르고 호화로웠다. 참가자 모두에게 고급 1인실이 배정됐고, 매사냥과 소시지 만들기, 해병대 특수 훈련, 곡예비행 등 유독 몸을 많이 쓰는 야외 레저 활동이 이어졌다. 해초로 몸을 감싸는 스파와 단체 명상도 즐길 수 있었다. 초특급 인재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교류하고 유대를 다지는 가운데 자연스레 서로의 아이디어와 상상이 융합되도록 한 것이다.

1994년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창업해 시가총액 세계 2위의 기업으로 키우고, 스스로는 세계 최고의 부자(재산 약 140조원)에 오른 인물이 돈 쓰는 방식은 이랬다. 과학과 기술, 예술 분야 특급 인재들이 한데 모여 놀고 즐기면서 지식과 상상, 기술의 향연을 벌이도록 판을 벌여준 것이다.

베이조스만 이런 게 아니다. 억만장자 미국 IT 창업자들은 '획기적인 미래'를 개척하는 데 자신들의 돈을 척척 내놓는다.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공동 창업한 폴 앨런은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5억달러(약 5300억원)를 기부했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인간 수명 연장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 기업 칼리코(Calico)를 세우고, 제약사 에브비와 함께 노화 연구에 15억달러를 공동 투자하기로 했다. 오라클 공동 창업자 래리 엘리슨도 자신의 이름을 딴 의학재단을 세워 노화 연구에 3억3500만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베이조스는 고향인 텍사스주의 산속에 초침은 1년에 한 번, 분침은 100년에 한 번 움직이고, 1000년에 딱 한 번 알람이 울리는 거대한 '만년 시계'도 만들고 있다. "인류에게는 멀리 내다보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언뜻 현재의 사업 수익과 직결되지 않아 보이는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괴짜와 천재들의 엉뚱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신기술 창조와 창업에 영감을 주고 후원하기 위한 것이다. 베이조스의 '화성 파티'는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보여준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