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를 둘러싸고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신판매업자로 볼 수 없다며 지위를 박탈했는데 정작 국회에서는 현행법상 통신판매업의 일종으로 보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인식 차가 크다는 점도 문제지만 이 같은 엇박자로 암호화폐 거래소가 입법이 완료될 때까지 사실상 규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는 게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17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 권한을 금융당국에도 부여하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최근 대표 발의했다. 채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거래소 해킹 등 암호화폐와 관련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법안의 소관 부처인 공정위는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통신판매업자 지위 말소를 추진해왔다.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가 지자체 신고를 거쳐 통신판매업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전자상거래법상 영업 형태가 달라 통신판매업자로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 압박에 빗썸이나 코빗•업비트 등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는 통신판매업 지위를 포기했다. 코인원도 조만간 통신판매업 지위를 포기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국내 ‘빅4’ 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꼴이 된다. 금융당국은 입출금계좌를 발급한 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거래소를 점검할 뿐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공정위만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직접적인 검사 권한이 있는데 이마저 어렵게 됐다”며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고객 자금의 횡령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통신판매업자 지위 말소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암호화폐 투자가 투기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자 국회에서는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다며 반대했다. 이 때문에 정부도 블록체인 산업 자체의 육성은 막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났다. 이후 국회에서는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을 부여하기 위한 각종 법안들이 발의돼 있지만 7월 이후로 암호화폐 규제를 미룬다는 정부 방침에 논의 자체를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공개(ICO)를 둘러싼 국회와 정부 간 견해차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ICO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지만 국회에서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ICO를 전면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강력한 로비로 국회가 암호화폐나 ICO 허용 등에 관대한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가 이처럼 코미디 같은 엇박자를 이어가다 보니 업계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명확한 규제 방침을 정해야 이에 맞춰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면서 “국회와 정부가 입장 차가 크다 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차라리 규제를 해달라”며 코미디 같은 주장을 하고 나선 이유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