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장치 마련 선행돼야, 재산권침해소지

한국은행이 미래화폐인 디지털화폐(CBDC) 연구작업에 착수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화폐에 대한 개념정의 부터 상용화 가능성, 디지털화폐 발행에 따른 문제점 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은행이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해서는 당장 한국은행법 개정 등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개편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개인 정보보호 및 재산권 침해 가능성 등 과거에는 없던 많은 문제들을 해소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박선종 숭실대 법대 교수와 김용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동으로 발간한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 시 법률적 쟁점'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화폐는 기존 법률과 제도로 포섭할 수 없거나 기존 법률과 제도에 정면으로 상충될 위험이 큰 것으로 평가했다.

디지털화폐는 기존 실물화폐가 전자적 형태의 화폐로 전환 또는 대체되는 새로운 방식의 화폐로, 법정화폐 역할을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실체가 없는 화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데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등장하면서 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현행법에서는 한은의 디지털화폐 발행이 사실상 엄격히 제한돼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은 한은이 금융기관 외 법인이나 개인과는 예금 또는 대출 등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한 한국은행법 제79조다.

이 법을 적용하면 한은은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때 금융중개기관을 거치는 간접 방식을 택해야 한다.

한은은 별도의 중재기관을 거치는 간접 발행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간접 방식 보다는 개인 등이 중앙은행에 직접 계좌를 개설하고 이를 이용해 직접 여수신 및 개인간 거래를 하는 직접 방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디지털화폐의 효율성 제한을 위해서는 한은법을 개정해 한은이 개인이나 법인과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화폐의 주요 특성인 익명성이 훼손돼 개인의 재산권 침해 논란도 크다. 한은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해 직접 유통하게 될 경우, 디지털화폐를 보유한 예금자의 개인정보, 신용정보, 금융거래 내역 등을 중앙은행이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향후 도래할 디지털화폐 시대에는 영장 없이도 개인 재산권 보유 및 행사에 관한 상세한 내역이 중앙은행을 통해 국가에 노출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실물 화폐가 완전히 사라지면 디지털화폐 보유 잔액과 거래 현황의 중요성과 민감성은 더 심화될 것"으로 진단했다.

디플레이션에 대응해 디지털화폐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디지털화폐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와 투자 위축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디지털화폐도 개인 자산에 포함되는 만큼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명목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

한은은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과 마이너스 금리 시행이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재산권 보장 조항을 침해할 수 있다"면서 "한은법이나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한 특별법에서 유효 적절하게 정보보유의 남용을 사전적으로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처럼 미래화폐인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문제점과 논란을 해소해야 한다.

이 때문에 디지털화폐 발행이 조만간 현실화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대표로 하는 가상화폐 시장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디지털화폐 시대가 예상외로 더 빨리 다가올 수 있다는 낙관론도 이어지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당장 가까운 장래에 디지털화폐를 내놓을 계획이 없다"면서 "이번 공동연구는 디지털화폐 시대에 대한 입장 정리 차원에서 진행한 것이며, 5~6월에 가상화폐 등과 관련된 추가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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