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 10% 지분 제한에 묶여 자본확충 못해

 금융위원회는 2일 금융업 진입규제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은행•보험•증권 등 업종별로 진입장벽을 낮추고 특성화된 금융회사 설립을 권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 이어 새로운 인터넷 전문은행 허용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작년 4월 인터넷 은행이 처음으로 등장한 후 기존 은행과 경쟁을 벌이면서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은행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은산(銀産)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안에 대한 언급은 없어 '반쪽짜리 발표'라는 지적도 나온다.


■ 새 인터넷 은행 적극 검토


금융위원회는 2일 '금융업 진입규제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인터넷 전문은행의 성과와 기존 은행 산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시장의 수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인터넷 전문은행 추가 인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전문가, 언론인, 법조인 등 민간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자문기구 '금융산업 경쟁도 평가위원회'를 6월까지 만들어 인터넷은행 추가 도입과 관련한 의견을 듣기로 했다. 평가위는 향후 보험•신탁•증권 등 분야에서도 새로운 사업자가 나타났을 때 인가 여부도 토론하고 논의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금융위가 새 인터넷 전문은행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작년 출범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금융권의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올 2월 말까지 출범 1년도 안 돼 600만명 넘는 고객을 모았다. 시중은행보다 유리한 예금•대출 금리와 저렴한 수수료, 스마트폰을 통한 24시간 예금•대출•송금 서비스 등으로 차별화했다. 그러자 기존 은행도 모바일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저렴한 예•적금 상품을 내놓는 등 변화가 일어났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 실망스러운 상태에서 인터넷은행 추가 사업자 나올지 의문


금융권에 등장한 ‘메기(인터넷 전문은행)’가 1년 만에 힘을 잃었다. 혁신의 주역이 되기는커녕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정부가 약속한 생태계 조성(규제 완화)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메기’를 더 풀겠다고 한다. “당초 유도했던 ‘메기 효과’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정작 메기 2마리는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자본금)’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최훈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단기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의 추가 인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에 세 번째 인터넷은행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기존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4월과 7월 각각 영업을 시작했다. 1992년 평화은행 이후 25년 만에 등장한 새 은행이었다.
출범 첫해 영업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고객이 은행에 맡긴 돈의 총액(총수신)은 카카오뱅크가 5조원, 케이뱅크는 1조원을 넘는 데 그쳤다. 기존 은행과 경쟁은 고사하고 제2금융권의 저축은행과 비교되는 수준이다. 저축은행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의 총수신은 지난해 말 기준 5조원이었다.
영업이익은 카카오뱅크가 1000억원, 케이뱅크는 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인건비와 정보기술(IT) 인프라 등에 초기 투자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갈라놓는 ‘은산분리’ 규제는 인터넷은행의 도약을 가로막는 최대 장벽으로 꼽힌다.
현행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율을 최대 10%로 묶어 놨다. 그중 의결권은 최대 4%만 행사할 수 있다. 대기업이 은행을 자신의 사금고로 만드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현재 카카오뱅크의 대주주인 카카오와 케이뱅크의 대주주인 KT는 각각 지분율 한도 10%를 꽉 채운 상황이다. 다른 주주들의 동의와 협조가 없다면 추가로 자본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과 똑같은 규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과 IT를 결합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으려면 IT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몇 백만원짜리 서민 대출을 주로 취급하는 인터넷은행에선 대주주라도 큰돈을 빌릴 수 없다”며 “기본적으로 은산분리는 필요하지만 인터넷은행은 예외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은산분리 규제로 자본금 확보에 한계가 뚜렷하다”며 “인터넷은행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자본금 증액 없이는 대출을 늘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은행은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을 전제로 추진됐다. 하지만 국회에서 의원들의 입장차로 법 개정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1인 투자자문사 설립은 쉬워진다. 투자자의 돈을 대신 굴려주는 일임업과 투자 조언을 하는 자문업의 자본금 기준이 대폭 낮아진다.



■ 애완동물보험•유언신탁 등 특화금융회사 나올 듯


금융위는 보험, 금융투자, 신탁 등 분야에서도 소규모 특화 금융 회사가 나올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추기로 했다. 애완동물 보험이나 여행자 보험처럼 작은 보험료로 단기간 적용되는 보험상품만 파는 특화 보험사가 나올 수 있게 자본금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일본의 경우 이런 회사의 자본금 요건은 일반 보험사의 100분의 1 수준이다. 또 상장주식이나 코스닥•코넥스 주식만 중개하는 소형 증권사가 나올 수 있게 현재 30억원인 최소 자본금 요건을 절반 수준으로 깎는다. 신탁업에서도 후견 신탁과 유언 신탁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신탁 종류에 따라 자본금 요건을 다양화하기로 했다.
최훈 국장은 “은산분리 완화 법안은 국회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사항”이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추가 인가 때 반영하겠지만 법 개정이 안 되더라도 인터넷은행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온라인 쇼핑몰에서 간단한 소액 보험의 판매를 허용하고 온라인을 통한 보험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애완동물 보험이나 여행자 보험처럼 특정 상품만 취급하는 보험사의 자본금 기준은 낮춘다.
현재 종합보험사는 300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하다. 앞으로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소액•단기 보험사는 훨씬 적은 돈만 있어도 된다. 일본의 경우 최소 1000만 엔(약 9800만원)만 있으면 소액•단기 보험사를 세울 수 있다.

금융위는 증권 분야에선 자본시장법을 바꿔 소규모 특화 업체의 설립을 유도하기로 했다. 자기 돈으로 주식을 매매하지 않고 고객의 주문만 처리하는 중개전문 증권사는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다. 이런 증권사의 자본금 기준은 30억원에서 15억원으로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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