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 중 일 유럽 기술경쟁력 비교, 4차산업혁명 분야 5개중 4개 꼴찌

 한국 경제의 주축인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백척간두의 기로에 섰다. 스마트폰•TV 등 주력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가 버티고 있지만 '포스트 반도체'를 이끌 뚜렷한 성장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위기 중의 위기이다. 
 
■ 한국 ICT, 한미중일유럽 모두에게 낙오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4차 산업혁명’ 5개 분야 중 4개에서 한국이 주요 비교 대상국 가운데 기술 수준(기술격차)이 가장 낮다는 정부 산하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는 한국•미국•중국•일본•유럽 5개 지역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클라우드 △3차원(3D) 프린팅 △지능형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5개 분야의 기술 수준을 평가했다. IITP는 전문가 평가와 논문•특허 등을 활용해 평가를 진행했다.

5개 분야 50여 명의 석학이 2개월간 자료 검토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낸 전문가 평가에서 한국은 IoT를 제외한 4개 분야에서 최하위였다. 전 분야에서 1위를 한 미국과의 기술격차는 3D 프린팅의 경우 2.6년으로 중국(1.7년)에도 1년 가까이 뒤졌다. 인공지능의 격차는 2.3년으로 중국(1.9년)에 처음으로 역전당했다. 5개 분야를 합친 평균 기술 수준도 5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IITP는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술 수준이 상승 추세에 있긴 하지만 미국의 수준이 월등히 높고, 중국 기술의 상승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평가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분야별 논문•특허 평가에서도 4, 5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3D 프린팅의 논문평가 순위(3위)가 가장 높은 순위였다.

5개 분야의 평균 논문평가 점수(44.12점)와 특허평가 점수(55.82점)는 4위였다. 중국은 각각 3위와 5위였다. 이는 최근 12년간 등재된 논문•특허를 분석한 결과다. 2013년 이후 중국은 논문과 특허 건수에서 미국을 제치고 5개 분야 모두에서 1위다.

이들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의 경제를 이끄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ICT 산업의 중심축은 제조업에서 이런 4차 산업 중심의 서비스•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은 ICT 산업에서 전자부품 등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등 소프트웨어 산업의 비중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특히 시장분석기관인 가트너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같은 ‘ICT 기기’ 제조업은 2021년 전 세계적으로 -0.1%의 역성장이 예상된다.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는 소프트웨어(8.1%), 정보기술(IT) 서비스(5%)와 대비된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에 집중된 산업구조는 대외 충격에 취약하다”며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면서 제조의 지능화를 통해 제조업의 주도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반도체가 버티는 한국,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주축인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기로에 섰다. 스마트폰•TV 등 주력 사업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버티고 있지만 '포스트 반도체'를 이끌 뚜렷한 성장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폰 1위인 삼성전자는 올해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보다 0.4%포인트 줄어든 20.7%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32.3%)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해 스마트폰 판매량(3억1430만대)도 지난해보다 32만 대 줄면서 상위 5개사 중 유일하게 역주행할 것으로 전망됐다. 2013년 4.8%의 점유율로 세계 4위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10위권 밖으로 떨어진 LG전자는 올해 점유율이 3.5%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화웨이ㆍ오포ㆍ샤오미ㆍ비보 등 세계 3~6위인 중국 스마트폰 4사는 2013년 10% 초반대의 점유율에서 올해 31.7%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2006년부터 세계 1위를 지켜온 TV 시장도 비슷한 분위기다. IHS에 따르면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TV(2500달러 이상)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2015년 76%에서 지난해 51.5%까지 낮아졌다. 반면 소니를 중심으로 한 일본 기업은 같은 기간 19.8%에서 44.4%로 점유율을 늘리며 부활했다. 이밖에 한국이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가전ㆍ디스플레이ㆍ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ㆍ일본은 한국 기업의 점유율을 끌어내리고 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은 2000년대 초반 일본이 한국에 ICT 산업의 주도권을 뺏길 때와 오버랩된다”라며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미국ㆍ일본 기업에 쫓기고, 신흥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에 점유율을 뺏기는 샌드위치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비(非)제조 ICT 분야는 더 심각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한글과컴퓨터의 지난해 매출은 1341억원으로 마이크로소프트(899억 달러)의 0.14%에 불과하다. 국내의 1위 사이버보안 업체 SK인포섹의 매출(2127억원)도 미국 시만텍(40억 달러)의 5% 수준이다.
 
국내 최대 ICT 서비스 기업인 삼성SDS의 매출은 9조원을 넘지만 삼성 계열사 의존 비율이 73.5%나 된다. 아직 해외에서의 경쟁력을 논할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 같은 4차산업 혁명 관련 분야에서는 구글ㆍ아마존 같은 선두그룹과의 격차가 비교 불가능 수준이다. 
 
ICT 서비스•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약한 상태에서 한국이 비교 우위에 있는 ICT 제조업 분야의 성장성은 크지 않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ㆍ가트너 등에 따르면 ‘ICT 기기’ 분야의 성장률은 지난해 3.8%를 기록한 뒤 계속 감소해 2021년 마이너스 성장(-0.1%)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웨어가 같은 기간 7.6%에서 8.1%, IT서비스가 3.1%에서 5%로 고공비행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KISDI의 최계영 ICT통계정보연구실장은 “세계적으로 ICT 산업의 무게 중심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지만, 한국 ICT 산업의 중심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와 같은 소수 제조업에 한정돼 있다”며 "이들 분야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중장기적인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책은 우선 규제 완화를 통한 디지털 서비스 산업 육성이다.  미국은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규제 원칙으로 기업들에 신사업을 실험할 재량을 줬고, 중국은 신규 디지털 사업에는 규제를 가하지 않다가 시장이 커진 뒤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 사후 규제를 도입했다.
 


전략 수정도 필요하다. 이제 중국보다 남의 물건ㆍ서비스를 모방해 잘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지구에 없다. 기업들에 연구개발(R&D)를 확대할 유인책을 제공해 원천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유승호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교수는 “단순히 ICT 제품 제조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서비스 부문을 접목한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을 통해 부가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권춘기 순천향대 의료IT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의료산업에 ICT 기술을 접목하는 식으로 새로운 융합산업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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