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올해 D램•낸드물량 쏟아내면 가격 덤핑으로 시장 교란… 국내기업 매출 8조원 사라진다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면 한국 경제 마지막 버팀목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한국과 동일한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면 그동안 반도체 강국 신화도 무너진다. 중국산 반도체 덤핑과 가격 공세로 시장 질서가 무너질 가능성이 짙다. 국가 차원 기술 보호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 지원 제도가 급하다.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산업 진입에 성공할 경우 4년 뒤 국내 기업 매출이 약 8조원 축소될 것이라는 한국산업진흥원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정부는 중국이 메모리 설계, 생산 기술을 완벽하게 확보하는 순간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격 덤핑으로 시장을 교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자신문의 8일자 보도와 한국산업진흥원 연구보고서 '중국 메모리반도체 산업 진출에 따른 국내외 파급효과 분석 및 대응전략 연구'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 산업 진출로 한국 산업이 악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지난해 말부터 외부 전문가 집단에 연구 용역을 발주, 작성됐다.



보고서 주 내용은 △중국 메모리 산업 진출에 따른 공급 확대 △이에 따른 메모리 가격 하락 △국내 기업 기대 매출 예상치 하향 조정 등이다.

2022년까지 D램과 낸드플래시 연평균 가격 하락률 예상치를 각각 5.15%, 23.6%로 잡았다. 이는 중국이 없었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중국이 진출하면 공급 물량이 확대되기 때문에 추가 가격 하락이 생긴다.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은 올해 계획대로 중국산 D램과 낸드플래시가 쏟아지는 것이다. 이 경우 2022년까지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각각 2.2%, 0.5%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매출액도 축소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022년 연간 예상 매출액 합계 전망치는 628억 달러로 중국 기업이 없었을 때 예상 매출액(695억달러) 대비 약 67억달러 축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조건으로 낸드플래시 분야 국내 업체 매출은 2022년 365억달러로 관측됐다. 중국 기업이 없었을 때 예상 매출액(376억달러) 대비 기대치가 11억달러 줄어든다. 그 결과 2022년에만 국내 메모리 업계 기대 매출이 78억달러(약 8조4000억원)나 축소된다.

2022년 이전인 2019~2021년 3년간 축소액까지 합치면 10조원 이상, 더 먼 미래 기간으로 늘려 잡으면 국내 기업이 거둬들어야 할 매출 수십조원이 사라진다.

현재 중국에 건설하고 있는 현지 업체 메모리반도체 제조 시설은 D램 2개, 낸드플래시 1개 등 3곳이다. 칭화유니그룹 소유의 양쯔강메모리테크놀로지컴퍼니(YMTC)가 후베이성 우한에서 3D 낸드플래시, 이노트론(시노킹테크놀러지→루이리IC→이노트론으로 사명 변경)이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D램, 푸젠진화반도체(JHICC)가 푸젠성 진장에서 D램을 각각 생산한다. 생산 시작 시점은 모두 올 하반기로 잡았다. 칭화유니그룹은 2019년 난징에 추가로 D램과 낸드플래시 공용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는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같은 연구 용역을 실시한 사례가 없었다”면서 “반도체를 제외한 국내 제조업 전반으로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응을 더 늦추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51조원에 이르는 반도체 펀드를 추가 조성할 예정인 가운데 한 해 2000억달러에 이르는 반도체 수입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 반도체 무너지면 한국경제 붕괴, LED, LCD 전철 밟을 수도


이번 정부 보고서는  “중국이 시장 진입에 성공하면 메모리 평균 가격이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충분히 확보하는 시점에선 가격 덤핑 등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경고성 메시지도 담았다.

중국은 이미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패널 시장 등에 진입하면서 비슷한 전략을 구사했다. 한국 선발 기업을 저가 공세로 무너뜨리고 시장을 재편했다. 최근엔 견고하던 한국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산업도 중국 물량과 저가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중국 물량 확대 추이에 따라 적자 폭이 좌우되는 매우 불안한 환경에 직면했다. 반도체도 중국 기업 진출로 비슷한 궤적을 밟아 갈 수 있다는 것이 정부 보고서 핵심이다.

조선이나 자동차 같은 한국 주력 수출 산업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홍역을 앓던 2009년 3월 이후 최저치(70.3%)로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 동력이 꺼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품목은 사실상 반도체 하나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979억달러로 단일 품목 수출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메모리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마저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면 한국 산업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셈이다.

중국 메모리 시장 진출이 예상처럼 쉽게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존 메모리 기업의 특허 회피, 전문 인력 양성, 생산 노하우 습득, 난관에 부닥친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 등 변수가 많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3000억위안(약 51조원) 규모 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 해 2000억달러에 이르는 반도체 수입 의존도를 줄이자는 것이 목적이다.

중국 기업이 초기에 생산한 메모리 성능이 일부 떨어지더라도 '자급률'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시장에 어떻게든 중국산 메모리를 유통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렇게 기술 노하우를 쌓고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며 규모의 경쟁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반도체 슈퍼 호황기가 지속된다면 30나노, 40나노 등 낮은 기술로 만든 메모리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 투자 공세는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보고서에서 “중국 기업이 메모리 공장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USB용 저가 낸드플래시나 가전 제품용 D램 등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시장 진출 후 점차 시장점유율을 높인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투자 등 사활을 건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되돌릴 수 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중국, 메모리 덤핑으로 시장질서 교란할 듯


정부 연구보고서 '중국 메모리반도체 산업 진출에 따른 국내외 파급효과 분석 및 대응전략 연구'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출 성공 여부를 다섯 가지로 가정해 추가 가격 하락률과 국내 기업 기대 매출 하락률이 산출돼 있다.

다섯 가지 시나리오는 ①시장 진입 실패 ②2018년 시장 진입 성공 ③시장진입 1년 지연 ④시장진입 2년 지연 ⑤3년 지연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선 1번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중국이 아예 없는 시장'이다. 이 경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기가비트(Gb)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연평균 5.1%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공급이 늘지만 서버 등 고성능 D램 수요가 확대되면서 가격 하락폭이 완만할 것으로 전망됐다. 낸드플래시는 주요 생산업체가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32Gb 제품 기준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ASP가 연평균 23.6%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올해 계획대로 중국 기업이 메모리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중국 기업의 D램 생산 용량은 300㎜ 웨이퍼 투입기준 4만장(2018년)→8만장(2019년)→16만장(2020년)→32만장(2021년)→42만5000장(2022년)으로 매년 확대된다. 현재 전 세계 D램 생산량은 약 110만장 규모다.

같은 시나리오대로라면 중국 기업 낸드플래시 생산 용량은 300㎜ 웨이퍼 투입 기준 5만장(2018년)→10만장(2019년)→15만장(2020년)→20만장(2021년)→25만장(2022년)으로 늘어난다. 현재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량은 약 175만장 규모다.

추가 가격 하락률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D램이 연평균 2.2%, 낸드플래시가 연평균 0.5% 수준으로 분석됐다. 낸드플래시보다 D램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이렇게 되면 매출액도 축소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022년 연간 예상 매출액 합계 전망치는 628억달러로 중국 기업이 없었을 때 예상 매출액(695억달러) 대비 약 67억달러 축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낸드플래시 분야 국내 업체 매출 전망치는 2022년 365억달러로, 중국 기업이 없었을 때 예상 매출액(376억달러) 대비 기대치가 11억달러 줄어든다. 2022년에만 국내 메모리 업계 기대 매출이 78억달러(약 8조4000억원)나 감소할 전망이다.

1년, 2년, 3년 지연 시 추가 가격 하락률은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보고서에 “중국이 중장기적으로 메모리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확보하는 시점에서 가격 덤핑 등으로 시장 질서를 혼란시킬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적었다.

중국 기업 설비투자 확대는 국내 장비 소재 업계에 향후 몇 년간 대규모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원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선 '적당히 활용만 당하다 버려질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장비•소재 등 후방산업에서도 기술 격차를 확보할 수 있는 선행 연구 개발(R&D)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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