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산업군에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미디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블록체인을 접목한 미디어 실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디어는 왜 블록체인에 술렁일까. 블록체인과 미디어는 궁합이 맞는 조합일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블록체인을 접목한 미디어 실험들부터 살펴보자. 먼저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블록체인 미디어로 꼽히는 '스팀잇’이 있다. 스팀잇은 스팀 블록체인 위에 구현된 블로그 플랫폼이다. 아직 베타 단계이긴 하지만 출시 2년 만에 100만에 가까운 가입자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팀잇 사용자들은 자체적으로 여러 미디어 실험을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7월 시작된 '키핏(KEEP!T)’은 블록체인과 관련 콘텐츠를 보여준다. 키핏에 저자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무직부터 학생, 학원 강사, 개발자 등 다양하다. 이들은 콘텐츠를 생산해 키핏에 올리고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는다.

 키핏의 공동 운영자인 이대승 오딘네트워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4월24일 열린 ‘29th 오픈업 : 블록체인과 미디어' 행사에서 키핏 저자들이 가져가는 보상 규모에 대해 "2개 뛰던 아르바이트를 하나로 줄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대승 COO는 키핏 이외에도 '메디팀(MEDITEAM)’이라는 스팀 매거진도 운영하고 있다.



스팀 의학 매거진 메디팀 (출처=메디팀 사이트 갈무리)


메디팀은 의사 20명, 개발자 3명, 법률가와 약학자 등이 모여 운영하는 의학 매거진이다. 의학 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쓰는 의학 정보를 볼 수 있다. 이대승 COO는 키핏, 메디팀 등 스팀 내 미디어 경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팀은 프로가 있기엔 작지만 아마추어는 지속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스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실험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스팀 블록체인 기반 토큰 프로토콜인 스마트미디어토큰(SMT)가 연내 출시를 목표를 개발 중에 있기 때문이다.

자체 블록체인으로 보상형 소셜미디어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유니오’가 그 예다. 김탄휴 전 유니오 프로젝트 매니저는 오픈업 행사에서 "유니오는 중앙화된 기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게 뺏긴 크리에이터의 주권을 돌려주고, 크리에이터와 사용자 모두에게 활동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주는 콘텐츠 마켓 플레이스"라고 소개했다. 유니오 블록체인은 현재 개발 단계다.


언론사가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한 케이스도 있다. 2017년 창간한 <토큰포스트>는 올해 3월1일, 자체 암호화폐 '토큰포스트코인(PTC)'를 발행했다. 권성민 <토큰포스트> 대표는 4월30일 자사 주최로 열린 '미디어×블록체인' 행사에서 "언론의 미래는 토큰화(토크나이제이션)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토큰을 개발해서 기사 조회수, 기자의 인지도에 따라 토큰으로 보상을 해주는 방법"을 생각했다며 "그래서 3월1일 전 세계 언론사 중 최초로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했다"라고 말했다. <토큰포스트>의 실험은 미디오 콘텐츠 자체를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방식은 아니다. 다만 <토큰포스트> 홈페이지에 기사를 게재하고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다는 등 참여 행위에 PTC로 보상하는 토큰 경제를 도입했다. 권성민 대표는 '기존 미디어에 토큰을 입혀서 보상하겠다는 차이 밖에 없는 것 같다'는 말에 "정확히 맞다"라고 답했다.

이외에도 블록체인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인 ‘싱귤러DTV’, 블록체인 미디어 플랫폼 ‘포엣(po.et)’, 블록체인 저널리즘 플랫폼 ‘시빌’ 등 다양한 블록체인 미디어 실험이 있다.


이런 시도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미디어 산업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미디어 산업은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기 어려운 이익 구조, 공유와 유통의 투명성 문제, 저작권 문제 등에 시달려 왔다. 블록체인 기술로 저작권을 관리하고 공유와 유통을 투명하게 관리하며, 이를 바탕으로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수익 구조를 재설계할 수 있다는 기대다.

미디어 산업과 블록체인 기술이 이 기대에 부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실천적 경험을 통해 입증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둘의 궁합을 점쳐볼 수는 있다.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는 오픈업 행사에서 "블록체인과 미디어는 찰떡궁합"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행사의 패널토론자로 참석한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현재 블록체인 기술은 영상, 음악 등 미디어 사업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라는 말로 토론을 열었다.

조영신 연구원은 "막상 미디어와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블록체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라며 "블록체인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미디어 시장을 현혹한다"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미디어가 과연 블록체인을 필요로 할까?'라는 물음에 "블록체인만 만들어지면 콘텐츠 창작자에게 막 돈이 생기고 이런 것은 아니다"라며 "(수익은) 코인과 현물 거래가 가능해야 한다. 블록체인과 비즈니스를 혼동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블록체인 기술은 보안이 뛰어나서 불법복제를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순전히 거짓"이라면서 "블록체인의 보안성이 높은 이유는 데이터가 블록체인에 저장될 때 가능한데 미디어 콘텐츠는 블록에 넣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조영신 연구원은 이어 창작자 보상 문제를 짚었다. 그는 "중개 사업자를 제거해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크게 한다는 그림도 실제보다 훨씬 과장됐다"라며 "미디어가 중개인을 두는 이유는 은행에서 이야기하는 보증 등 문제 때문이 아니다.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중간 거래자를 없애면 리스크는 누가 감당하나?"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블록체인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미디어) 생태계가 분명 있을 것이고 이것은 의미를 가지겠지만, 블록체인을 기존 미디어에 도입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은 내가 보기엔 판타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미디어 시장이 잡아야 할 화두는 블록체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토큰 경제"라며 "여기에서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토큰으로 어떻게 시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