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하위권' 한국, 연구소 만들어 놓고도 2년간 방치

정부가 인공지능(AI) 연구개발에 올해부터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인공지능대학원 신설 등을 통해 AI 전문인력 5000명도 양성한다.

AI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치열한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것이다. 지난 정부가 대기업과 함께 AI 연구소를 세웠지만 ‘적폐’ 논란으로 사실상 2년 동안 방치돼 시간을 허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대규모 공공프로젝트 등 정부 주도 전략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산학연 협력과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인수합병(M&A)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15일 6차 회의를 열어 ‘AI 연구개발(R&D) 전략’을 심의•의결했다. 장병규 4차산업위 의장은 “한국의 AI 기술력은 미국 중국과 비교해 약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이 두루 발전돼 있고 분야별로 상당한 데이터가 축적돼 있어 AI를 개발•활용할 여건은 양호하다”고 말했다. 이번 ‘전략’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방, 의료, 안전 등 공공 분야에서 대형 AI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차세대 기술 분야의 중장기 투자도 확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선 상반기 중 1조원 규모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할 방침이다. 경진대회를 열어 우수연구진을 선발하고 후속 연구비를 지원하는 ‘AI R&D 챌린지’를 확대해 신약•미래소재 개발 등 다른 분야 R&D에도 AI를 융합한다.


정부는 AI R&D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도 양성한다. 내년부터 2022년까지 인공지능대학원 6개를 신설하고 AI 연구 지원과 실무교육을 확대한다. 연구인력 1400명과 제품•서비스 창출인력 3600명 등 총 5000명의 AI 전문인력을 키워낸다는 계획이다.



AI 분야에서 협력형 연구기반도 조성하기로 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중소기업 등이 AI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2022년까지 학습용 데이터 1억6000만 건과 한국어 말뭉치 152억7000만 어절을 올해 초 만든 AI 허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세계는 이미 ‘AI 기술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에선 기업은 물론 정부까지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AI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기술 수준도 미국, 유럽, 일본, 중국과 비교했을 때 최하위 수준이다. 가장 앞선 미국과의 기술 격차는 1.8년에 이른다. 과기정통부는 “AI는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라 경제 성장에 비약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경제•사회 대변혁의 핵심 동력이어서 기술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이번 전략 수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알파고 쇼크’로 한국형 AI를 개발하기 위해 민간기업과 손잡고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해 3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AI 연구역량과 국내 데이터 활용 능력을 결집하려고 민간 주도로 기업형 연구소인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현 인공지능연구원)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같은 해 7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한화생명 등 7개 기업이 30억원씩 출자해 주식회사 형태로 AIRI가 출범했다. 정부는 당초 AIRI에 연간 150억원씩 5년간 총 750억원의 연구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 정부, 늦게나마 AI에 뛰어든 배경은


우리나라는 AI 분야에서도 미국의 선도와 중국의 추격 속에 '샌드위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은 딥러닝, 기계학습 등 원천기술을 적용한 범용 AI분야에서 월등한 기술력을 보유했고, 중국은 얼굴인식과 같은 실용•응용 분야에서 정부의 막강한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미국의 AI 기술수준을 100으로 가정할 때 우리나라는 78.1로, 81.9를 기록한 중국에 역전 당했다. 유럽연합(EU)의 88, 일본의 83에 비해서도 뒤처진다.

우리나라는 2016년 알파고 쇼크 당시 지능정보사회추진전략과 인공지능연구원(AIRI)을 수립하며 대응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분야와 산업별 발전 목표를 제시해 집중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AI R&D 전략은 우리 기술과 인력, 인프라 실태를 면밀하게 분석, 5년간 2조2000억원을 가장 적합한 분야에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통해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포석이다.


■ 투자 분야


과기정통부는 민간투자가 어렵지만 국가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공공영역•고위험 분야에 자급을 집중한다. 민간 투자가 시작되고 있는 분야에는 '마중물' 역할로 자금을 지원, 초기시장 창출을 지원한다는 목표다.


구체적으로 과기정통부는 핵심원천기술을 응용서비스로 연결하는 '미래융합서비스 지능화 혁신 기술개발사업'에 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안전분야에서는 안면인식 범용 기술 정확도를 97%까지 높여 공항 테러방지, 위험인물 추적 등 서비스에 활용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국방분야에서는 음성, 훈련정보, 편대전술 등을 AI로 분석하는 강화학습 기술을 적용해 작전지휘통계 의사결정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대화, 생체데이터 등 비정형 의료데이터 분석기술과 의료•구조 기관 등 최적정보를 바탕으로 한 응급상황 환자 맞춤형 대응체계 등을 마련한다.

과기정통부는 시장상황과 기술수준, 이용자 수요를 고려해 구체 사업을 확정, 4분기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AI 인재양성 전략, 슈퍼컴퓨터와 빅데이터 등 AI인프라 전략과도 연계할 방침이다.


■ AI로 산업경쟁력.삶의 질 ↑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전 세계 AI시장 규모는 지난해 124억달러(약 13조3225억원)에서 2021년 522억달러(약 56조837억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IBM '왓슨',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아마존 '알렉사' 등 AI 플랫폼이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ICT 인프라를 기반으로 의료, 제조, 금융 등 분야별 빅데이터를 AI와 융복합해 발전시키면 빠른 추격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게 이번 'AI R&D 전략'의 비전이다. 또한 오는 2022년까지 AI대학원 6곳을 신설하는 한편 기존 대학연구센터 AI 연구 지원을 강화해 관련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문제의 과학기술적 해결을 위해 AI와 접목도 강화키로 했다. 일례로 폐쇄회로TV(CCTV)를 활용해 실종아동을 찾거나 빅데이터 기반으로 교통혼잡을 해결하는 사업에 올 한 해 772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내외 이슈 관련 빅데이터 기반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AI기술을 활용한 탐지.분석을 개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스타트업 투자 전제돼야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주도 AI 육성전략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정부의 AI R&D 로드맵 및 선제적 투자와 더불어 산학연 협력과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M&A 등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토양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글(알파벳),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은 전 세계 AI 인재들을 끌어모으며 전 세계 주요 대학 및 연구진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삼성과 네이버 정도가 최근에야 이런 흐름에 동참한 정도다.


또한 정부가 AI 분야 고급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놨지만 실제 관련 교원이나 연구자 등도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 우리나라는 내년에 AI대학원을 신설한다는 목표지만, 이미 미국은 2002년에 카네기멜론대에 머신러닝(기계학습) 학과를 개설했다. 중국도 현재 82개 대학 내 AI학과가 개설돼 있다.


국내 유.무선 네트워크와 업종별 빅데이터를 AI시장 추격 전략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았지만 한발 더 들어가면 클라우드컴퓨팅(클라우드) 등 주요 인프라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클라우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데이터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핵심기술이지만 여전히 활용도가 낮은 탓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은 "공공부문의 민간 클라우드 이용 활성화를 위한 발전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의 클라우드 활용은 여전히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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