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험사는 실리콘밸리에 연구소 세운다는데...

보험업에 블록체인 첨단 기술을 결합한 '인슈테크(insurance+technology) 바람'이 아시아 보험시장에 불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 대형 보험사들은 인슈테크를 '신(新)비즈니스'로 삼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와 비교해 한국 보험사들은 인슈테크 분야에서 크게 뒤진다는 지적이 많다. 보험개발원은 "한국은 제조업에서 혁신적인 기술 강국으로 평가받지만, 금융 분야는 변화에 대응이 더딘 편"이라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보험 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 실리콘밸리로 간 일본 보험사들


일본 보험사들은 고령화•인구 감소 등으로 기존 사업에서 수익 확대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인슈테크에서 기업 경쟁력을 찾고 있다. 대형 보험사들은 첨단 기술업체들이 모여 있는 해외 주요 거점에 R&D(연구개발) 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보험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신기술을 빠르게 탐색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손보재팬은 2016년 실리콘밸리에 R&D 센터인 '디지털 랩'을 설치한 데 이어, 작년 11월엔 핀테크 선도국인 이스라엘에도 디지털 랩을 설치했다. 일본 스미토모생명도 올해 4월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세웠다. 유용한 기술을 찾으면 일단 상품개발부터 하고 본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마치 테크(기술) 기업처럼 변모하고 있다"고 했다. 손보재팬은 '시제품(trial) 단계'를 두고, 1년에 20여 개씩 실험적인 보험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본다. 그중 5개 정도만 실제 상품으로 출시된다고 한다. 드론을 활용해 재해현장에 대해 손해 사정을 하거나, 고객이 다른 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증권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면 이를 분석해 같은 조건에서 손보재팬을 이용하면 보험료가 얼마 나오는지 비교해 주는 서비스 등이 이런 방식으로 탄생했다. 가능성 있는 해외 인슈테크 스타트업에는 직접 투자도 한다.




중국에선 핑안(平安)보험 그룹이 선도적이다. 1988년 중국 선전의 작은 보험사로 시작한 핑안보험은 '금융 IT(정보기술) 기업'으로 성장하며 중국 최대의 민영 금융그룹이 됐다. 그 바탕엔 과감한 기술 투자가 있었다. 2008년부터 '생체인식'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을 5대 기술로 선정하고, 자체 기술력을 보유하기 위해 500억위안(약 8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개발한 기술 중엔 3만명의 얼굴을 99.8%의 정확도로 1분 안에 인식해내는 안면인식 기술도 있다. 핑안손해보험은 이 기술을 '돼지 안면인식'에 활용해 양돈 농가의 보상 업무에 이용할 예정이다. 폐사한 돼지 사진만으로 해당 농가의 돼지인지를 확인해 보상 업무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


또한 중국의 18개 보험사는 핀테크업체 앤트 파이낸셜이 개발한 손해사정 시스템 '딩순바오'를 도입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고객이 찍어 보낸 자동차 사진만으로 차량 모델과 손상 부품을 인식해 차량 손상에 대한 견적을 단 몇 초 만에 낼 수 있다.


■ 의료 빅데이터 활용 연구도 활발


국내에선 개인정보보호법 규제에 가로막혀 진척이 없는 의료 빅데이터 활용 연구도 앞서나가고 있다. 일본 다이이치생명은 후지타보건위생대학병원의 각종 의료 빅데이터를 분석해 일본인의 당뇨병 악화 예측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 모델을 이용해 새로운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기존에 가입이 거절됐던 일부 고객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또 고객 1000만명의 의료 빅데이터를 분석해 성인병 때문에 입원할 가능성과 입원 일수를 예측하는 모델도 만들어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A사 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기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보험사들도 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보험업계도 인슈테크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두드러진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보험상품 비교 사이트나 AI 채팅 로봇 서비스, 모바일 보험금 청구 서비스 등에 머물러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게 더 급할 수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절박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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