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의 개가에 이어 글로벌은행들 착착 준비, 한국은 실무진이 이해조차 못해

지난 주 초 새벽 국제금융시장을 깜작 놀라게 하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글로벌은행인 HSBC가 블록체인기술을 통해 세계 최초로 상업성이 있는 무역금융에 성공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15일자 단독 보도였다.
상호보증 및 신용장 개설 등 복잡한 거래절차와 단계를 거쳐 수출업자와 수입업자간의 거래가 체결되는 현재의 무역금융질서에서는 '혁명'과 같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무역금융은 거래계약, 신용장 개설신청, 신용장 개설•송부, 신용장 도착통지, 보험가입, 선적, 화물운송, 환어음 발행 및 매입신청, 환어음 및 선적서류 송부, 선적서류 도착통지•수입대금결제 및 물품 반출 등 10개가 넘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한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활용할 경우 이 복잡한 단계를 건너뛰어 사고 파는 당사자간와 은행간의 거래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HSBC의 모험과 같은 시도를 지켜보던 국제금융시장은 일제히 환호를 했고, 스탠다드차터드(SC), 아야유타 등 글로벌은행들과 미쯔비시상사를 비롯한 종합무역상사들은 앞다퉈 블록체인의 무역금융활용 계획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소식을 별로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지만 블록체인의 금융산업 융화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고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있는 무역거래 특성상, 블록체인 무역금융이 대세로 자리잡아 간다면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아무리 외면을 하고 싶어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준비를 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무역금융의 후진국으로 전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림=블록체인밸리


█ HSBC의 무역금융 성공


FT에 따르면 HSBC는 미국의 농산물 대기업인 카길이 아르헨티나산 콩을 말레이시아로 수출하기 위해 지난주 개설한 신용장을 처리하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했다.
HSBC는 기술 컨소시엄인 R3(시티, 골드만삭스, HSBC, ING 등 글로벌은행 40여 개가 투자)가 개발한 코다 블록체인 플랫폼을 사용했고 거래 상대방은 같은 기술을 채택한 네덜란드의 ING 은행이었다.
비베크 라마찬드란 HSBC 상업금융혁신성장 부문 대표는 종전의 시험적 무역금융과 달리 카킬의 경우에는 동일한 거래 쌍방이 관여할 경우에 반복될 수 있었으며 블록체인 기술이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부동산 등기와 의료기록, 보험 청구 등의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HSBC의 성공 사례는 무역금융 분야에서도 폭넓게 채택될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글로벌 무역금융은 9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으로, HSBC는 지난해 이 부문에서 25억2천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블록체인 기술은 수많은 서류, 여러 날이 걸리는 절차를 아무런 서류 없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 세기 동안 지속된 무역금융 분야의 관행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라마찬드란 대표는 다음 단계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참가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라며 은행과 해운회사, 항만 및 세관 당국들이 동일한 기술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을 표준화된 해운 컨테이너에 비유했다. 처음 등장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해운회사들과 항만 철도, 무역회사들이 채택한 끝에 결국 글로벌 해상운송의 주력 모델이 된 점을 언급한 것이다.
HSBC 외에도 다수의 은행과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무역금융 분야에 활용하는 시험을 벌이고 있으며 실증 시험에 나선 경우도 없지 않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三菱)상사와 미쓰비시파이낸션그룹(MUFG)은 외국 대형 금융기관과 협력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국제송금체제 구축에 나선다.
지금까지 며칠씩 걸리던 송금절차를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양사는 빠르면 이달 중 실증실험을 시작해 연내에 실용화한다는 계획이며 장차 개인 간 국제송금에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실증실험은 태국에 있는 미쓰비시상사 자회사가 현지 아유타야은행(MUFG 계열)에 보유하고 있는 계좌에서 싱가포르 달러를 송금하면 미쓰비시상사의 다른 자회사가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지점에 개설한 계좌로 수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보편화된 국제송금시스템은 직접 송금할 수 있는 은행끼리만 가능하므로 복수의 은행을 경유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데 2∼4일이 걸린다. 경유하는 은행마다 수수료가 드는 것은 물론 의뢰자가 송금 경로 등을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국제송금과 관련해서는 가상통화 비트코인을 이용하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으나 가격의 급등락이 잦아 거액을 주고받는 기업 간 결제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중국 등 가상통화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도 있어 각국 통화를 단기간에 저렴하게 송금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쓰비시상사 등의 대기업은 한 달에 수 만 건의 국제송금을 하고 있어 새로운 시스템이 마련되면 기업의 해외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블록체인으로 신용장을 개설하면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의 기반 기술로 알려진 블록체인이 무역금융 분야에 활용될 경우 효율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무역금융은 거래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데 블록체인을 적용한다면 거래 신뢰성을 높이고 비용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것.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혁신기술로 △금융거래(결제, 송금) △인증(개인인증, 생체인증) △스마트 계약(무역금융, 부동산계약) △유통관리(유통정보, 재고처리) 등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다. 특히 정보 보안성과 비용 및 시간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우수한 기술이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블록체인의 무역금융 분야 활용 필요성 및 과제' 보고서에서 "블록체인의 특성을 감안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여러 단계에 걸쳐 운영되는 무역금융 분야에게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존 무역금융은 거래계약, 신용장 개설신청, 신용장 개설•송부, 신용장 도착통지, 보험가입, 선적, 화물운송, 환어음 발행 및 매입신청, 환어음 및 선적서류 송부, 선적서류 도착통지•수입대금결제 및 물품 반출 등 10개가 넘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한다.
일반적인 무역거래에서 수출업자와 수입업자 간 결제는 은행이 수입업자의 신용을 보증하기 위해 발행한 보증서인 신용장(L/C, Letter of Credit)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수출업자는 수입업자가 거래은행에서 발급받아 보내준 신용장을 바탕으로 환어음을 발행하고 이를 수출업자 거래은행이 매입하는 절차로 무역금융이 진행된다.
단계가 복잡한 만큼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적지 않다. 서류 교환만해도 열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신용장이 이동하는 절차에서 수수료와 보안비용이 발생한다. 문서의 위변조 가능성 때문에 보안의 신뢰성이 떨어지며 만약 신용장 내용이 계약서와 다르다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계약'이 이뤄질 경우 신용장 자동개설 및 서류자동화(보험가입, 통관서류, 매입서류, 대금청구 등)가 가능하고 동일한 무역정보를 동시에 다수의 이해 관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즉 절차가 단순해지고 수수료 등 부가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관련서류도 보다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작년 한국에서 신용장 방식의 무역거래는 1282억 달러였다. 같은 해 GDP의 약 8.4%에 해당하는 큰 수치다. 유럽의 디지털 무역 컨소시엄 WE.TRADE나 싱가폴 블록체인 무역금융 플랫폼 등에서 블록체인을 적용한 무역금융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무역금융에서 블록체인 활용 시도는 초기 단계다.
이대기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정부 및 관련기관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스마트계약 관련 용어 정의, 계약 효력, 성립 시기 등 구체적인 사항들을 규정하고 법적으로 정리해야하며 기업은 사용자 입장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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