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달로 수세 몰린 전통기업도 블록체인 및 빅데이터 선택

농수산 및 에너지 자원 등 1차 산업과 제조 및 금융업종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클라우드, 인공지능(AI)에 적극 투자하고 있는 것은 기술발달에 따른 수세적 위치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간단히 말해 ICT발달로 위기에 처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선택으로, 자의가 아닌 환경적 압박에 따른 것이라는 풀이이다.
예컨대 국내 대표적 ICT기업들의 블록체인 투자도 각종 규제로 본업의 글로벌 진출에 제약을 받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별도 해외 법인 설립이나 결제 파트너 없이도 바로 글로벌서비스가 가능한 점 등을 활용, 글로벌무대 진출을 우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ICT기업, 블록체인사업으로 글로벌 공략


SK텔레콤, KT, 네이버, 카카오 등 굴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잇따라 블록체인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배경이 글로벌 시장 공략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ICT 기업들은 이렇다 할 해외사업 실적을 내지 못한 채 국내에 고립돼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차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결제 인프라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 없이도 바로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어 해외시장 공략에 유리한 입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결국 당초 글로벌 DNA를 갖고 탄생한 블록체인 기술이 고립돼 있던 국내 ICT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교두보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KT 등 통신사와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대표 ICT 기업들이 하나같이 블록체인 전담 조직을 운영하며 글로벌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 전담조직 꾸리고, 블록체인에 투자 늘려


SK텔레콤은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 초대 협회장을 맡고 있는 오세현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장(전무)을 주축으로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망 블록체인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블록체인 기반 자산관리, 결제 서비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KT도 융합기술원 산하에 블록체인센터를 두고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센터장은 서영일 상무가 맡고 있다. 이미 자회사 BC카드 등의 기업 문서관리시스템(EDMS)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했으며, 모바일 상품권 '기프티쇼'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아예 자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의 블록체인 사업은 라인이 주도하고 있다. 라인은 블록체인 자회사 언블락과 언체인을 설립하고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 블록체인 기반 D앱(댑, Dapp) 발굴에 나섰다. 카카오 역시 자회사 그라운드X를 설립했다. 그라운드X도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 ICT기업 숙원 '글로벌 공략', 블록체인이 푼다


이처럼 국내 대표 ICT 기업들이 블록체인 분야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은, 블록체인이 아킬레스건이었던 글로벌 시장 공략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SK텔레콤과 KT 등 통신사들은 수차례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통신망 구축 사업을 진행하며 해외 시장 진출을 노렸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국내 매출 비중이 해외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라인이나 픽코마 등이 성공한 사례는 있지만 북미나 유럽 공략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안방에서도 구글과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시장을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상한 블록체인 기술은 국내 ICT 기업에 단비나 다름없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서비스는 가상화폐를 통해 구동되고, 가상화폐는 국경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동되기 때문에 글로벌 서비스에 최적화됐다. 현지에 별도로 법인을 세우거나 결제 파트너 등을 찾지 않아도 바로 글로벌 서비스가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 블록체인 업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도 이들에게는 호재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가상화폐가 거래되고 있는 한국으로 글로벌 블록체인 전문가들과 기업들이 모여들고 있다. 한국 기업이 블록체인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한 블록체인 기업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가상화폐를 주고받는 블록체인 생태계는 사실상 국경이나 환율과 같은 결제 장벽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된다"며 "그동안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며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고도 실패했던 국내 ICT 기업들이 블록체인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표=블록체인밸리 제작


■ 수세 몰린 해외 전통기업들도 블록체인 및 빅데이터로 대혁신


제조업과 금융업 등 전통적 강자인 대기업들이 인공지능(AI),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첨단기술과 보유한 데이터를 접목해 업종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후 아주 최근까지도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이나 애플, 구글, 알리바바 등 디지털 기반 신생기업들의 공격에 수세에 몰리며 자기 시장을 잃게 되거나 대체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고 있다. 물론 디지털 기반 신생기업과 스타트업의 출현으로 많은 전통기업이 혼란을 겪고 있으며 그 중 몇몇은 존망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생업체가 쉽게 따라하거나 뛰어넘지 못하는 내재적인 강점을 가진 대기업들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 가고 있다.

IBM 기업가치 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전통기업의 반격'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초기 혁신 기술을 선별해 인수하는 능력과 함께 자체적인 디지털 기술 혁신능력까지 갈고 닦고 있다. 금융회사가 핀테크(Fintech), 인슈어테크(Insuretech), 레그테크(Regtech) 등 관련 스타트업을 사들인 것을 비롯해 월마트는 플랫폼 리테일 업체인 젯닷컴을 비롯한 여러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UPS는 '트럭우버'라고 불리는 코요테 로지스틱스를 사들였다. 에어버스는 버진그룹, 퀄컴 등 여러 기업과 함께 원웹에 투자했다. 원웹은 640여 개 위성을 제작해 글로벌 광대역 인터넷 액세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IBM 기업가치 연구소가 모든 산업에 걸쳐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C레벨급 임원 1만28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72%(복수 응답)는 '혁신적 업계 전통기업이 업계의 파괴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답했다. 디지털 기반 신생기업(34%)이나 스타트업(22%)이 혁신을 주도한다고 평가한 C레벨급 임원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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