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전문은행의 중금리 대출 증가 추세가 주춤하다. 출범 이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틈을 비집고 은행권이 중금리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이에 인터넷전문은행이 중금리대출에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대출금리를 낮추자 은행권도 경쟁에 가세하면서 양측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고 있다. 중금리시장은 과거 은행권의 외면으로 인터넷은행이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그러나 최근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지지부진한 영업력을 회복하기 위해 나란히 대출금리를 인하하자 시중은행은 즉각 맞불 작전에 나섰다. 중금리 대출이란 통상 4~6등급 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10% 전후 금리대 개인신용대출을 말한다.


기존엔 제2금융권과 은행권 사이에 비어 있는 대출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고신용 대출시장 포화로 최근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신상품을 늘리고 인터넷전문은행까지 금리 전쟁에 가세하며 경쟁이 더욱 뜨거워졌다.


■ 인터넷전문은행의 선공


포문을 연 쪽은 케이뱅크다. 지난 17일부터 가산금리를 내리고 중금리 대출 확대에 나섰다. 슬림K 신용대출 가산금리는 기존 3.45~7.25%에서 3.40~6.65%로, 일반가계신용대출 가산금리는 기존 2.40~5.68%에서 2.10~5.43%로 인하했다.


이에 발맞춰 카카오뱅크도 중금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 18일부터 소액마이너스통장 대출인 '카카오뱅크 비상금 대출' 금리를 낮췄다. 고신용자는 최저 0.25~0.35%포인트, 중•저신용자는 0.40%포인트 낮아졌다. 전•월세보증금 대출도 금리 인하 대상에 포함됐다. 신용등급별 최대 인하 폭은 0.15%포인트, 최저는 0.10%포인트다. 두 은행 모두 중신용 부문 금리를 낮췄지만 전략은 조금 다르다. 카카오뱅크 소액마이너스통장은 케이뱅크보다 금리는 낮지만 대출 가능 금액이 300만원으로 소액이다.


두 인터넷전문은행이 중금리 대출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출범 후 지난 1년간 경험으로 독자적인 리스크관리모델(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 구축이 어느 정도 완료됐다는 판단에서다.


 

자료: 각 사 취합, 그림 : 블록체인밸리


카카오뱅크는 지난달부터 새로운 CSS를 대출 심사에 도입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자체 빅데이터를 적용해 고객을 더 잘 파악하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중금리 부문에서 차별점을 가지고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카카오톡 등 비정형 데이터를 CSS에 포함하면 높은 정확도로 부실 예측이 가능해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한다.


새롭게 충전된 실탄도 중금리 대출 확대에 한몫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5000억원 규모 추가 증자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9월 5000억원에 이어 이번 5000억원까지 7개월여 만에 자본금 1조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증자 완료로 카카오뱅크 납입 자본금은 1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케이뱅크 역시 늦어도 다음주까지 1500억원 규모 증자를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제3인터넷전문은행 등장을 앞두고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복안도 숨어 있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금융위원회는 제3인터넷전문은행 심사 검토에 들어간다. 현재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이 각자 정보기술(IT) 스타트업들과 연합군을 꾸리며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인터넷전문은행으로서는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기 전에 중금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최대한 키워놓을 필요가 있다.


■ 시중은행들의 반격


시중은행들은 잠자코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태도다. 맞불 작전으로 금리를 인하하거나 신상품을 출시하는 등 손님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카카오뱅크가 금리를 낮춘 날 신한은행도 청년•고령층 고객에 대한 사잇돌중금리대출 금리를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만 29세 이하 청년층 고객과 만 65세 이상 고령층 고객이 신한 사잇돌중금리대출을 이용하면 우대금리 0.2%포인트를 추가해 최저 연 6.22%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신한은행은 우대금리 대상자를 넓히며 두 인터넷전문은행과 차별점을 뒀다.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다문화 가정, 다자녀 가구, 한부모 가정 등을 '금융 배려 고객'으로 정하고 사잇돌중금리대출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서민계층 고객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우대금리 대상을 청년•고령층 고객으로까지 확대했다.


NH농협은행은 두 인터넷전문은행에 한발 앞서 지난달 자체 중금리 상품 'NH e직장인중금리대출'을 출시했다. 사잇돌•새희망홀씨 등 정부가 보증하는 정책금융상품이 아니라 주요 시중은행권에서 자체 개발해 내놓은 '무보증 중금리 신용대출'은 이 상품이 거의 유일하다. 1년 이상 법인기업체 재직자라면 인터넷•모바일로 최대 2000만원까지 신청할 수 있다.


우리은행도 사잇돌대출 모태 격으로 일찌감치 출시했던 '위비모바일대출'을 중금리 대출 상품으로 전환하기 위해 시스템을 자체 개발 중이다. 이 밖에도 하반기에는 중금리 대출 수요자들의 접근성을 향상하고자 우리카드 등 제2금융권과 연계 영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 측도 "중금리 대출을 위한 별도 신용평가 모형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터넷은행 출범 1년 지났지만 중금리대출 비중 낮아…초조감 반영


인터넷 전문은행의 중금리 대출 증가 추세가 주춤하다. 출범 이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출범 1년을 앞둔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의 중금리 대출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뱅크가 신용등급 4등급 이하의 중•저신용자 중심으로 금리 인하를 진행하며 중금리 대출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은행 출범 당시 공언했던 것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당초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통해 금융 소외 계층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 하에 은행업 인가를 내줬지만, 고신용자들 위주로 대출이 이뤄지다보니 일반 시중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올해 1~3월 신용대출 금리구간별 취급비중을 보면 지난달 카카오뱅크의 신용대출은 대부분 연 4~6% 구간에서 이뤄졌다. 금리가 연 6% 이하가 전체 대출의 98%, 그 이상 대출이 2% 수준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중금리대출은 연 6~20% 사이의 금리로 제공되는 대출을 말한다. 이는 카카오뱅크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은 대출을 해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카카오뱅크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출범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신용등급 4등급 이하인 중•저신용자 대출 잔액이 1조원을 넘어섰고, 잔액 비중이 아닌 대출건수 비중으로 보면 신용등급 4등급 이하 대출이 전체의 4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카카오뱅크 중•저신용자 대출은 지난 17일 기준 1조2744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20.6% 수준이지만 대출건수 비중으로는 전체의 38.5%에 이른다. 잔액기준 비중과 단순비교해 18%포인트 가까이 높다.


또 다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도 중•저신용자와 고신용자의 대출잔액 비중은 4대6 수준이지만, 대출 건수 비중은 6대4 수준이다.

일각에선 카카오뱅크의 자체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 구축이 중금리 대출 확대의 관건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범 당시 카카오뱅크는 자체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 완비를 통해 중•저신용자들의 상환능력을 평가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과 데이터 축적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카카오택시'나 '선물하기' 등과 같은 카카오 앱의 이용 실적 정보를 활용하고 있으며, 롯데 멤버스와의 빅데이터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상환능력 평가에 본격적으로 이용되기까지는 6개월 가량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지난 정부와 금융당국이 '인터넷 전문은행 프레임의 오류'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의 당위성을 제공하기 위해 '서민을 위한 중금리 대출 전문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씌웠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산분리 완화 등 여러 사안이 얽혀 있던 인터넷 전문은행의 출범에 당위성을 제공하는 데 '서민을 위한 중금리 대출'만큼 합당한 이유가 어디 있겠냐"며 "지금도 인터넷 전문은행의 중금리 대출은 낮은 수준이 아니지만 출범 당시 씌워진 이미지가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달 케이뱅크가 출범 1년을 맞았고, 카카오뱅크도 이제 곧 출범 1년을 앞둔 신생 은행인만큼 과도기로 생각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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