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캐릭터 연예인 '키즈나 아이' 일본 관광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지난 3월, 일본 정부가 관광홍보대사로 미소녀 연예인 '키즈나 아이'를 임명했다. 긴 갈색 머릿결을 휘날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초밥을 맛있게 먹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 소녀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3D(입체) 캐릭터에 성우 목소리가 덧입혀진 버추얼(가상) 연예인이다.

IT(정보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가상 연예인 산업이 커지고있다. 이들 가상 연예인은 실시간으로 사람 움직임에 3D 캐릭터를 덧씌워 방송하는 것으로, 애니메이션과도 개념이 다르다. 영화 '그녀'에 등장했던 대화형 인공지능(AI) 사만다가 형체를 갖추고 활동하는 것과 유사하다. 현재 일본에서만 가상 연예인 2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 이제는 가상 연예인 시대


키즈나 아이는 2016년 10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처음 데뷔했다. 사람이 아닌 3D 캐릭터가 등장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자 폭발적인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도 1년 반 만에 185만명을 넘었다. 팬층은 일본은 물론 한국과 동남아시아, 유럽과 북미 등 전 세계를 아우른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방송마다 영어•스페인어•중국어 등 10여 개 이상 언어로 자막을 만들어 공유한다. 이런 글로벌한 인기에 힘입어 키즈나 아이가 일본 관광홍보대사까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정규 TV 프로그램 진행과 CF 촬영, 화보집 발매까지 마쳤다.



                        지난해 9월 일본 지바 마쿠하리멧세에서 열린 홀로그램(3차원 입체 영상) 여가수 하쓰네 미쿠의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 모습(왼쪽 사진).

                        미국 출신 가상 패션모델로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릴 미켈라. /유튜브 캡처•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가상 연예인의 등장은 실시간 모션캡처 기술 발달 덕분에 가능했다. 애플의 아이폰X(텐)이나 삼성전자 갤럭시 S9 같은 스마트폰에도 모션캡처를 활용한 VR(가상현실) 이미지 기능이 들어갈 정도로 기술 인프라가 확산했다. 가상 연예인 방송의 경우 스튜디오에서 진행자가 신체 곳곳에 센서를 부착하고 움직이면, 컴퓨터가 센서 움직임을 감지해 3D 캐릭터로 표현한다. 얼굴 표정은 특수 안면인식 소프트웨어로 다룬다. 가령 눈을 찍으면 센서가 눈썹•눈동자•눈꺼풀 등 미세한 부위들을 촘촘하게 포착하기 때문에 캐릭터 표현이 자연스럽다. 본모습 노출은 가상 연예인에게 치명타다. 실제로 지난 2월 은발 미소녀 캐릭터가 실수로 본모습을 드러냈더니 구독자가 5분의 1로 줄었다. 캐릭터를 연기한 인물이 미소녀가 아니라 40대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6년 세계 최초의 사이버 가수 다테 교코가 나오고, 2007년 홀로그램(3차원 입체 영상) 여가수 하쓰네 미쿠가 등장할 정도로 가상 연예인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홀로그램은 반원형으로 설치된 100여 개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투명 스크린에 3차원 입체 영상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푸른색 양 갈래 머리를 한 하쓰네 미쿠는 컴퓨터에 멜로디와 가사를 입력하면 어떤 노래든 기계음으로 척척 불러준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하쓰네 미쿠의 글로벌 콘서트 투어 의상을 디자인하고, 구글•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이 광고 모델로 발탁할 정도로 인기다.


█ 노래•패션•CF•방송 등 종횡무진 활약


패션 업계에서도 가상 연예인이 뜨고 있다. 지난해 4월 온라인에 데뷔한 흑인 여성 슈두 그램(Shudu Gram)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수퍼모델이다. 영국 출신 베테랑 패션사진가 캐머런 제임스 윌슨이 3D 이미지 기술을 활용해 제작했다. 윌슨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창조했다"며 "유명 뷰티 브랜드와 패션 업체들에서 모델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가상 패션모델 릴 미켈라도 인스타그램 팔로어 110만명을 보유한 인기스타다. 샤넬•발렌시아가•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 업체들로부터 의상을 지원받아 여느 할리우드 연예인처럼 LA 명소를 배경으로 한 일상 사진을 올린다. 유명 패션잡지 화보 촬영도 하고, 작년에는 싱글 앨범도 발매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정말로 사람이 아닌 게 맞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이 정식 데뷔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에 몇 분 분량의 입 모양을 움직이는데도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갔고, 결국 저조한 흥행과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제작사가 2004년 파산했다. 국내 연예계는 실제 가수로 홀로그램 공연을 연출하는 데 관심이 많다. 2012년 SM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홀로그램 공연을 처음 성사시킨 데 이어 YG엔터테인먼트도 제주도와 서울 동대문에 홀로그램 전용관을 운영하고 있다. 2016 다보스포럼에서는 싸이의 홀로그램 콘서트가 열려 호평받기도 했다. 가수 김재중은 군 입대 당시 홀로그램으로 콘서트 투어를 열었고, 작년 11월에는 고 신해철의 3주기 추모 콘서트가 홀로그램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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