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통사 방송계에는 재앙?

컨텐츠산업에도 4차산업혁명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가 사상 처음으로 디즈니를 제치면서 미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회사가 됐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 주도권이 전통 매체(TV•케이블•영화관) 중심에서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네플릭스는 LGU+와 손잡고 한국 컨텐츠시장에 진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 우리나라에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57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최근에는 방송인 유재석•이광수 등이 출연하는 오락물까지 만들기도 했다. 국내 콘텐츠를 확보해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또 LG유플러스와 손잡고 국내 인터넷TV(IPTV) 진출도 추진하면서 국내 미디어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통신망은 공짜로 사용하되 이동통신사들의 컨텐츠 서비스 영역까지 침범, 이통사와 유료방송업계의 경영수지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컨텐츠산업에서도 4차산업혁명의 바람이 상륙하기 시작한 것이다.


█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사로 등극


25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하루 전 24일 장중 한때 시가총액이 1530억 달러(약 165조870억원)를 돌파하며 미디어 분야 1위로 뛰어올랐다. 이날 디즈니 시가총액은 1520억 달러(약 164조80억원)로 집계됐다.

넷플릭스 시가총액은 2014년 말 200억달러에 불과했으나 4년 만에 약 7.7배 증가했다. 가입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 주가도 82% 뛰었다. 반면 디즈니는 21세기폭스 인수 합의에도 올 들어 주가가 5% 하락해 넷플릭스에 '미디어 왕자' 자리를 내주게 됐다. 넷플릭스는 이미 전통적 미디어인 컴캐스트, 타임워너, 21세기폭스, CBS 등을 추월한 바 있다.

넷플릭스는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디즈니, 컴캐스트 등 거대 미디어에 비해 작다. ABC, ESPN, 디즈니 스튜디오 등을 보유하고 있는 디즈니는 지난해 매출 551억달러를 기록했으나 넷플릭스는 151억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NBC와 유니버설 등을 소유한 컴캐스트는 지난해 매출이 845억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공격적 투자로 현금 소진 속도도 빠르다. 올해 영화, 드라마에 8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는 지난 1분기 가입자 1억25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30년까지 가입자가 매년 8%씩 증가해 3억6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와 기업가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냇 쉰들러 애널리스트는 "넷플릭스가 글로벌 시장 확장이 성공하면서 기회를 얻고 있다. 콘텐츠 시장에서는 사실상 지배적인 사업자"라고 평가했다.

디즈니는 ABC•ESPN•A&E와 같은 30여 방송 채널은 물론이고 픽사•마블 스튜디오•루카스필름 등 유명한 애니메이션•영화 제작사를 보유한 대표적 미디어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이 557억달러로, 넷플릭스(117억달러)의 4배가 넘는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 전시회 CES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블룸버그 캡쳐


하지만 성장세를 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넷플릭스의 주가는 올 들어서만 약 82% 오른 반면 디즈니는 오히려 5% 하락했다. 매출도 최근 3년간 넷플릭스가 72.4% 증가한 반면, 디즈니는 5.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넷플릭스와 디즈니의 운명이 갈렸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는 월 1만원 정도만 내면 언제라도 스마트폰뿐 아니라 노트북, 컴퓨터, TV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보고 싶은 영화•드라마를 무제한 볼 수 있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궁지에 몰린 디즈니가 내년부터 넷플릭스에 자사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 제공을 중지하고 자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넷플릭스가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얼마나 선전할지는 미지수다.

넷플릭스는 1997년 미국에서 DVD 우편 배달 서비스 업체로 출범했다가 2007년부터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변신했다. 이후 계속 성장하면서 전 세계 190국에 유료 가입자 1억250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이미 미국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컴캐스트를 앞섰다. 미국 증권 업계에선 2030년까지 넷플릭스의 가입자가 3억6000만명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뿐 아니라 넷플릭스는 하우스오브카드 등 인기 드라마도 자체 제작하며 콘텐츠 투자도 늘리고 있다. 지난 2016년 콘텐츠 투자비로 50억달러(약 5조4000억원)를 사용한 데 이어 올해는 80억달러(약 8조6000억원)를 투입해 자체 제작물 700여 편을 선보일 계획이다.


█ 국내는? 갑자기 넷플릭스가 되려한다
 
지난해 월트디즈니가 21세기폭스의 영화 스튜디오를 포함한 콘텐츠 자산(부채 포함)을 총 661억달러(약 72조원)에 인수한 데 대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촌평이다. 넷플릭스는 신규 투자자금의 85%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쓸 만큼 콘텐츠 투자에 올인한다. 넷플릭스의 연간 콘텐츠 예산은 80억달러(약 8조6400억원). 지난해 매출 117억달러(약 12조5000억원)의 70%에 달한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최고경영자)는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에 100억달러 넘게 쓰는 반면, 기술 개발에는 13억달러 정도만 투입한다”고 밝혔다. 덕분에 넷플릭스는 올 1분기에만 신규 고객이 740만명 증가, 월가의 전망치(650만명)를 크게 웃돌았다. 넷플릭스 주가는 올 들어서만 60%가량 올랐다.



넷플릭스의 성공은 많은 기업들에 콘텐츠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네이버, 카카오,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주요 IT 기업들도 잇따라 콘텐츠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콘텐츠 산업도 고공행진하며 전체 산업 성장을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콘텐츠 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들여다봤다. 


110조5000억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산한 지난해 국내 콘텐츠 산업 시장 규모다. 국내 의약품 시장(약 20조원)의 5배가 넘고, 식품•외식 산업 시장(약 200조원)의 절반에 달한다. 국내에서 생산된 콘텐츠를 수출해 벌어들이는 외화는 7조원 이상. 중형 자동차 20만대 이상을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콘텐츠 산업 매출액은 지난 5년간(2012년~2016년) 연평균 4.9%씩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 수출액 증가율은 14.7%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전 산업 매출액이 연평균 1.5% 성장하고, 지난해 국내 경제성장률도 전년 대비 3.1% 증가한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 경제를 앞에서 이끄는 ‘무형의 산업’인 셈이다. 지식정보화가 심화될수록 콘텐츠 산업 성장세도 계속 가팔라질 전망이다.

콘텐츠 산업의 맏형은 단연 게임이다.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56.7%를 차지한다. 이어 캐릭터(9.4%), 지식정보(9.1%), 방송(7.2%), 음악(6.6%), 출판(3.2%) 등의 순서다. 우리가 평소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앱 대부분이 콘텐츠인 셈이다. 콘텐츠 산업 매출액은 출판을 제외한 전 산업 부문에서 증가했다. 특히 게임(12.4%), 지식정보(9.2%), 음악(8.1%) 산업이 높은 증가율을 보여 국내 산업 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외 IT 기업들도 잇따라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는 온라인의 관문인 포털, 메신저 등을 통해 게임, 웹툰, 방송,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구글은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동영상 콘텐츠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레드’를 선보이며 유료화 실험에도 성공했다. 시장조사업체 센소타워에 따르면 유튜브 앱은 미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 누적 매출 앱에서 1위를 기록했다. 아마존도 영상 콘텐츠 사업에 지난해 50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올해는 60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관측된다.


■ IT 기업들이 콘텐츠 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콘텐츠의 트래픽 유발 효과가 뛰어난 데다 유료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비용 지불 의사가 검증됐고, 기존 아날로그 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데 자사 강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가령 만화는 웹툰으로 즐기는 비중이 73.6%로 기존 종이책 만화(26.4%)보다 3배 가까이 커졌다(지난해 말 기준). 2015년까지만 해도 이 비중은 63%에 불과했다. 웹툰 이용자의 97.1%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한다. 신재욱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ICT 산업 내 많은 유망 주제들의 경우 아직 손에 잡히는 시장 규모를 형성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반면 방송, 영화, 게임 등 콘텐츠는 이미 거대 시장이 형성돼 있고 향후 성장성도 높다”고 진단했다.

콘텐츠 산업이 지속 성장하는 만큼 사업 환경 선진화를 위한 대책들도 요구된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장은 “국내 콘텐츠 산업은 게임에 너무 치우쳐 있고 그마저도 일부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들을 육성해 성장의 과실을 나눌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유료방송업계에는 재앙?


넷플릭스가 LG유플러스, CJ헬로, 딜라이브와 잇따라 제휴를 맺으며 국내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넷플릭스의 이 같은 움직임이 유료방송 업계의 재앙이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2500만명 가입자를 거느릴 정도로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타 유료방송 업체들도 넷플릭스를 유치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경우 국내 콘텐츠 제작 질 저하는 물론 캐시서버 무상 사용 등 굴욕적인 조건을 국내 업체들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올 하반기 U+tv에 넷플릭스 콘텐츠 도입을 위해 넷플릭스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LG유플러스는 속도•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 가입자 대상 '넷플릭스 콘텐츠 3개월 이용권'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넷플릭스와 스킨십을 이어나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 케이블TV 업계 3위 사업자인 딜라이브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으며, 올 초엔 CJ헬로가 자사 셋톱박스 '헬로tv UHD Red(헬로tv Red)'를 통해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 업계 대부분은 "SK텔레콤과 KT는 물론 여타 케이블 업체들도 조만간 넷플릭스를 유치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넷플릭스는 '옥자', '하우스 오브 카드' 등 막강한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가입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모바일•초고속인터넷 등 다양한 결합상품 효과를 보기위해 넷플릭스와 손잡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SK텔레콤도 모바일 IPTV '옥수수'와 SK브로드밴드의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넷플릭스와 콘텐츠 제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 측은 "미디어 사업의 기본 방향은 옥수수 등 미디어 플랫폼을 글로벌 Top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라며 "넷플릭스와의 제휴 추진도 고객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업계는 국내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넷플릭스와 국내 콘텐츠 사업자의 3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수수료로 서비스를 계약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미디어산업 생태계 파괴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입장이다.

통상 넷플릭스는 세계적으로 콘텐츠 매출의 수익 배분을 자사가 90%를 갖고 나머지 10%를 사업자에게 제공하고 있어, 국내 방송콘텐츠 사업자의 수익성 악화와 투자 감소, 질 낮은 콘텐츠 양산이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아울러 국내 최대 트래픽 유발자인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망 이용대가를 거의 내지 않고 있음을 고려해 볼때, 넷플릭스 역시 국내 시장 장악 후 이통사들의 캐시서버(인터넷 사용자와 비교적 가까이 있는 서버) 공짜 사용 등 무리한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드라마•영화 등이 모두 장편인 데다 고화질이라, 이러한 품질 보장을 위해선 넷플릭스가 통신망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도 LG유플러스에 이어 SK브로드밴드, KT가 넷플릭스를 도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넷플릭스-유튜브'가 국내 유•무선 트래픽 70%를 장악할 것이라는 극단적 예측마저 제기된다"며 "국내 유료방송 업체들이 넷플릭스와 공동 사업을 하기 전 적절한 망 사용료 및 수익분배 이슈가 선제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최근 페이스북과의 망 이용대가 협상을 잘 마무리해, 더이상 유료방송 업계가 외국 콘텐츠 자본에 '울며 겨자먹기'식 굴욕적 조건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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