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세계 3위 스마트폰 업체인 중국 화웨이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인 '메이트10'을 출시해 세계 IT(정보기술)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메이트10에 탑재된 AI 반도체를 화웨이가 직접 설계•개발했다는 것이다. 화웨이의 AI 반도체 '기린970'은 스마트폰에서 이미지•음성 인식, 검색은 물론이고 AI 비서, 카메라 화질 최적화 등 다양한 첨단 기능을 동시에 쓸 수 있도록 만든 첫 반도체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 담당 리처드 위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메이트10은 일상생활에서 AI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만든 첫 제품"이라고 자랑했다. 화웨이는 메이트10 외에도 올해 선보인 'P20' 'P20 프로' '메이트RS' 등 최신 스마트폰에도 모두 AI 반도체를 탑재했다.


                                                         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화웨이의 AI 반도체 스마트폰은 중국이 세계 스마트폰 업계에서 '최초' 타이틀을 달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올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세계 최초의 트리플(렌즈가 3개) 카메라 스마트폰, 테두리가 없는 '무(無)베젤' 스마트폰, 지문 인식 센서를 디스플레이에 내장한 스마트폰 등 세계 최초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반면 지난 3월 출시된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9에는 세계 최초로 탑재한 기능이 없다. 한국 스마트폰 업계의 기술 경쟁력이 거꾸로 중국에 뒤처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 스마트폰 업체 관계자는 "중국 스마트폰은 더 이상 한국 스마트폰을 베끼는 '카피캣'이 아니다"며 "우리가 중국의 기술을 보고 배워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 세계 최초 타이틀 가져가는 中스마트폰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 비보는 12일 테두리가 아예 없는 무베젤 스마트폰인 '넥스(Nex)'를 선보인다. 이 제품은 스마트폰 크기 대비 화면 비율이 99%에 달한다. 양 측면의 테두리는 없고, 상•하단 테두리 역시 1.8㎜, 4.3㎜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비보는 전면(前面) 카메라도 디스플레이에 내장해 카메라 기능을 쓸 때만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레노버 역시 화면 비율이 95%가 넘는 '레노버 Z5'를 오는 14일 공식 발표하고, 샤오미도 테두리를 대폭 줄인 '미8'을 곧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레노버와 샤오미 모두 지문 인식 센서를 스마트폰 화면에 내장하는 방식으로 화면 크기를 키웠다.

현재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9은 화면 비율이 84% 수준이고, 지문 인식 센서 역시 스마트폰 후면에 장착해 전작(前作)과 같은 모습이다. 스마트폰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 선보일 갤럭시S10에 지문 인식 내장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화면 비율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과 비교해보면 약 1년 가까이 늦는 것이다


지문 인식을 내장한 디스플레이 기술도 중국 기업들이 선도하고 있다. 중국 샤오미는 곧 신작 스마트폰 '미8'에 지문 인식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술은 전면 화면만 터치하면 사용자의 지문을 인식해 잠금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삼성전자는 이 기술을 내년 공개할 갤럭시S10에서야 탑재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보다 약 1년 이상 기술 수준이 늦은 셈이다.


후면 카메라에 렌즈를 3개 장착한 트리플 카메라 역시 중국의 화웨이가 세계 최초로 내놨다. 화웨이는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신제품 공개 행사를 열고 트리플 카메라를 장착한 P20 프로와 메이트RS를 선보였다. 트리플 카메라는 4000만•2000만 화소급 카메라와 800만 화소급 망원렌즈가 동시에 장착돼 초고화질 사진•동영상을 기존 제품들보다 훨씬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면 특허 침해, 디자인 도용 문제로 줄지어 소송을 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중국 화웨이•샤오미 등이 해외에 진출하는 과정에 우려했던 소송은 없었다. 오히려 화웨이가 2016년 5월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통신 관련 특허 11건을 침해했다고 미•중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 중국이 우리 쫓아온다는 생각 버려야


전문가들은 중국의 급부상에 대해 "그동안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중국 업체들이 기술 경쟁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 중국의 대표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이기도 하다. 통신 장비를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스마트폰으로 옮기고 R&D에만 작년 매출의 15%인 897억위안(약 15조1000억원)을 투자해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샤오미도 다음 달 홍콩 증시에 상장하고 최소 100억달러(약 10조7400억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해 R&D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스마트폰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최초' 타이틀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본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 스마트폰 기술 경쟁이 화면 비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화면 비율 100%의 완전 무베젤 스마트폰 최초 제조사 타이틀을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중국은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대부분 한국을 기술력 측면에서 따라잡았거나 앞서나가고 있다"며 "이제는 중국이 우리를 쫓아온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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