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통해 상품 골라주는 '큐레이션' 강화, 간편결제 시스템 '11페이'도 대대적 확대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11번가가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으로부터 약 50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는 국민연금, 새마을금고와 11번가 지분의 15∼20%를 인수하는 방안을 SK플래닛과 협상 중이다. H&Q가 약 1000억 원,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가 약 4000억 원을 투자할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는 11번가가 새로 발행하는 상환전환우선주(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금을 상환받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를 투자자들이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11번가는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 인공지능(AI)과 온라인 쇼핑의 결합 등 기술 혁신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롯데•신세계•현대 등 국내 유통 ‘빅3’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작년 6월께 일제히 투자 제안서를 받아들었다. SK텔레콤의 자회사 SK플래닛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e커머스 쇼핑몰인 11번가의 지분을 매각할 의사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온라인 사업 확장을 추진하던 유통 대기업엔 솔깃한 제안이었다. 롯데와 신세계가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곧 접었다. ‘경영권 없는 지분 50% 투자’를 SK플래닛이 고수한 탓이었다. 롯데와 신세계는 “경영권 없이 1조원 이상 투자할 순 없다”며 협상 종결을 선언했다. SK플래닛은 방향을 틀었다. 경영권이 필요 없는 기관투자가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로 했다. 사모펀드 H&Q코리아에 ‘투자 기회’가 오게 된 배경이다.


█ AI 등 기술 혁신에 투자금 투입


SK플래닛은 투자금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 확대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판 아마존이 되는 게 목표다.

먼저 혁신 기술 투자에 나선다. SK텔레콤이 보유한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을 e커머스와 결합하는 게 우선 과제다. 신선식품, 패션 등의 분야에서 e커머스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11번가의 패션 부문을 전략적으로 키우기로 했다. AI를 통해 상품을 골라주는 ‘큐레이션’ 기능을 통해서다. 11번가는 소비자의 구매 이력과 나이, 성별, 거주 지역, 날씨 등을 바탕으로 최적의 상품 추천을 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e커머스 분야에서 앞으로 큐레이션 기능이 차별화 요인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일정 금액을 내면 빨리 배송받고, 상품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유료 멤버십’ 모델을 도입한다. 아마존이 운영 중인 ‘아마존 프라임’과 비슷한 프리미엄 서비스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 아마존 TV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SK그룹 내 통신과 방송 콘텐츠를 호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 간편결제 시스템 ‘11페이’를 대대적으로 확대해 SK그룹 계열사뿐 아니라 편의점, 치킨집 등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보유한 프랜차이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결제 시스템을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보다 정교한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 국민연금, 왜 투자하나...e커머스 시장 폭발적 성장, 수익성 급속 개선 가능성


 국내 큰손인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가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를 통해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오픈마켓 11번가에 투자하는 건 국내 전자상거래(e커머스)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란 평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91조3000억원으로 2016년 64조9130억원에 비해 41% 늘어났다. 올해는 100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2016년 거래액이 2015년(53조8880억원)에 비해 2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가팔라지는 추세다.


11번가는 이처럼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G마켓과 1위 자리를 다투는 선두 업체다. 지난해 총거래액(GMV)은 9조원으로 추정된다. 최근 급성장하는 모바일 쇼핑에 투자를 집중해 지난해 모바일 순방문자 수(UV•1323만 명) 1위를 차지했다.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 수익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프트뱅크(쿠팡), KKR(티켓몬스터) 등 해외 투자자의 지원을 등에 업은 소셜커머스 업체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국민연금, 새마을금고를 비롯한 토종 자본이 11번가가 향후 e커머스 시장에서 차별화된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SK텔레콤이 보유한 첨단 기술과의 시너지 효과가 큰 데다 국내 1위 편의점 사업자 BGF리테일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과의 협업도 확대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H&Q코리아는 국민연금(3500억원)과 새마을금고(500억원)로부터 4000억원을 모집해 펀드를 만든다. 나머지 1000억원은 2013년 조성한 블라인드 펀드(투자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은 펀드)를 활용한다. 이 역시 국민연금이 주요 출자자로 참여한 펀드다.


투자는 11번가가 신규 발행하는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RCPS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금을 상환받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다. 11번가가 발행하는 RCPS는 SK텔레콤이 5~6년 후 상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환 시점에 회사의 공정가치를 평가해 상환하되 최소 연 3%의 수익률을 보장했다는 전언이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 주도로 제3자에 회사를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도 포함됐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평가된 11번가의 기업 가치(2조5000억~3조원)는 GMV의 0.3배 수준으로 1.25배(GMV 4조원, 기업가치 5조원)의 평가를 받았던 쿠팡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수준”이라며 “콜옵션과 드래그얼롱 조항 등으로 손실 위험은 거의 없고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업사이드)은 커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 e커머스 생존경쟁 당분간 이어질 듯


‘한국판 아마존’은 국내 모든 e커머스 기업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아직 국내 온라인 시장에는 아마존, 알리바바 같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e커머스 기업들은 그동안 혁신보다 ‘치킨게임’에 몰두해왔다.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 외형을 키워왔다. 출혈경쟁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인수합병(M&A)을 거쳐 사업자 수가 줄어들고, 최종 승자가 된 뒤 이익을 내면 된다고 판단했다.

물건을 팔수록 손해를 볼 정도로 마진이 박한 온라인 시장에서 출혈경쟁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다. 소비자들에게 할인 쿠폰을 수시로 뿌리는 게 대표적이다.


국내 1호 e커머스 인터파크의 창업 멤버인 이상규 인터파크홀딩스 사장이 지난해 온라인쇼핑협회 회의에 참석해 “혁신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돈만 뿌리고 있다”며 “이런 식의 경쟁은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출혈경쟁의 결과는 적자로 이어졌다. 지난해 쿠팡(6388억원), 티몬(1152억원), 위메프(417억원) 등은 대규모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SK플래닛도 지난해 2497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SK플래닛은 혁신과 비용절감 등을 통해 올해 손실 규모를 500억원 안팎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업계에선 출혈을 감수한 온라인 시장의 생존경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SK플래닛뿐 아니라 다른 e커머스 기업도 최근 잇따라 투자를 유치하고 있어서다.


쿠팡은 지난 4월 블랙록 등 글로벌 투자사로부터 42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마켓컬리도 해외 투자사로부터 500억원 안팎의 자금을 유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 오프라인 강자들, IT+온라인사업 통합 활발


SK플래닛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은 오프라인 유통회사들의 온라인 시장 확대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강자들이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온라인 부문을 강화하면서 e커머스 시장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어서다.


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신세계다. 정용진 부회장은 연내 글로벌 투자회사에서 1조원 이상의 투자를 받아 다른 e커머스 기업을 인수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신세계는 이를 위해 연내 백화점, 이마트 등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온라인 사업부를 별도로 떼어내는 물적 분할도 한다. 현재 ‘쓱닷컴’이란 이름으로 각 계열사 온라인 사업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운영하고 있다. 신설법인을 만들어 사업부까지 통합하면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설법인은 투자회사 BRV캐피털, 어피니티 등에서 1조원 이상을 투자받는다. 신세계는 2023년까지 온라인에서만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작년 신세계그룹 온라인 사업 매출은 2조원 정도다.



그림 블록체인밸리


오프라인 1위 롯데도 지난달 ‘3조원 투자’ 계획과 온라인몰 통합을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롯데는 3800만 명의 롯데멤버스 회원, 1만1000여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O4O(Online for Offline) 전략’을 세우고 온라인몰과 오프라인 점포를 넘나드는 새로운 유형의 옴니채널을 구축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롯데가 막강한 자금력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4월 별도 정보기술(IT) 법인인 현대 IT&E를 신설하는 등 IT와 유통을 결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증강현실(AR)을 활용해 집에서 메이크업을 체험해보거나,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상품을 추천해주는 등의 서비스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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