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자금관리 시스템이 화근.... P2P 대출 관련 법규 미비, 투자금-운영자금 구분 안해

P2P금융시장의 누적대출액이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올해 4조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6일 크라우드연구소에 따르면 P2P금융시장은 지난 5월 기준 2693억원을 취급하며 총 3조5037억원의 누적대출액을 기록했다. 현 성장세를 지속한다면 올해 연말 4조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수익률은 5월 말 기준 14.59%로, 지난 달 대비 0.17%포인트 하락했다. P2P금융의 각 분야별 누적대출액 비중은 신용이 14.83%, 담보가 85.17%로 나타났다.

신용P2P대출은 5월 244억원을 취급하며 총 5198억원의 누적대출액을 기록했으며 평균 수익률은 14.08%로 나타났다. 신용 세부 분야 별로는 개인신용 2854억원, 개인사업자신용 1542억원, 법인사업자신용 802억원의 누적대출액을 기록했다. 담보P2P대출은 5월 2449억원을 취급하며 총 2조 9840억원의 누적대출액과 14.68%의 평균수익률을 기록했다. 담보 세부 분야 별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1조 5479억원, 건물·토지담보 7081억원, 동산담보 7280억원의 누적대출액을 기록했다. 한편 5월 말 기준 2P금융업체는 213개사이며, 홈페이지 접속이 불가한 업체는 57개사로 집계됐다.


그러나 개인간(P2P) 금융회사가 난립하면서 투자금 횡령, 사기 대출 등 투자자와 대출자를 울리는 사건 사고가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P2P금융이란 주로 개인 자금을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받은 뒤 개인, 자영업자, 부동산 개발 등에 대출해 주고 수익금을 되돌려주는 핀테크(금융기술)의 하나다. 금융계에선 시중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하반기에는 P2P업체 부실이 심해져 피해자가 급격히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부경찰서는 6일 P2P업체 오리펀드 사기사건 피해자들의 고소장을 접수하고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오리펀드 경영진이 월 15%의 고수익을 제시하며 130억원대 투자금을 모은 뒤 이를 챙겨 해외로 도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리펀드 모회사인 더하이원펀딩의 대표 역시 110억원을 챙겨 해외로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P2P업체에 물린 피해자만 2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앞서 부동산 P2P업체 2시펀딩의 대표도 700억원대 투자금을 챙겨 일본으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2시펀딩이 투자를 받기 위해 올린 현장 부동산 관련 사진은 상당수 허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P2P금융 관련 피해가 커지자 정부가 뒤늦게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P2P업체의 부실경영에 따른 부도와 사기성 상품 판매로 많은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종합적인 관리감독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검찰과 경찰은 금융당국과 협조해 불법 영업행위를 엄정히 단속해 달라”고 주문했다.


█ 위기의 개인간 금융


핀테크(금융기술)의 하나로 여겨지며 급속히 덩치를 키워 온 개인 간(P2P) 금융이 위기에 처했다. 업체들의 연쇄 부도와 사기 대출 등이 연일 터지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어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P2P업체들의 사기 대출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P2P업체들의 역량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P2P대출 피해 호소 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P2P 투자자들 사이에선 최근 업체 경영진이 투자금을 들고 해외로 도주하는 ‘먹튀’ 공포감이 퍼지고 있다. 오리펀드, 하이원펀딩, 펀듀 등 부동산 P2P업체 대표들의 먹튀가 줄 잇고 있어서다. P2P 투자자 온라인 카페 ‘크사모’의 이도현 대표는 “연이은 대출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자신이 투자한 상품 등이 안전한지에 대한 문의가 하루에도 수백 건씩 발생하고 있다”며 “구조적으로 투자금과 운영자금을 구분하고 있지 않은 업체들이 상당수라 먹튀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P2P업체들이 투자금과 운영자금을 분리하지 않아도 규제할 수단이 없다. 관련 법규가 미비해서다. 업체들이 투자금을 ‘쌈짓돈’으로 쓴다 해도 막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금융감독원도 지난달 P2P업계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실태를 점검한 75개 P2P업체 가운데 5곳은 관계사 및 대주주 등에 특혜 대출을 했다”며 “건설사들이 업체를 세워 자체 자금을 조달하는 등 P2P업체가 사금고화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 P2P업체 대표는 “투자금과 운영자금을 은행이나 신탁회사가 관리하는 별도 계좌에 맡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그렇게 하는 P2P업체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 대출 돌려막기로 덩치 키워


P2P업계가 덩치를 키우기 위해 써먹던 대출 돌려막기 관행도 위기의 뇌관으로 꼽힌다. P2P업계는 누적 대출액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모아왔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업계의 누적 대출액은 2조3292억원인 반면 대출잔액은 1조261억원에 불과하다. 협회는 누적 대출액을 기준으로 부실률을 산정해왔다. 누적 대출액이 늘어나면 부실률이 과소평가되는 구조다.


업체들은 12개월 만기의 장기 대출을 3개월 등 단기로 끊어 집행하며 누적 대출액을 키웠다. 1억원짜리 대출이 4억원 대출로 둔갑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5월 말부터 잔액 기준으로 부실률을 산정할 것을 지시했다. 금감원은 “장기대출을 단기투자로 돌려막기하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며 “투자와 대출의 만기 불일치가 발생해 투자금이 물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P2P업계 관계자는 “5월 공시부터 P2P 업체들의 부실률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 이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인력 부족으로 전문성 결여


P2P업체들은 전통적 신용 대출에서 부동산 부실채권(NPL) 등으로 분야를 넓히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여전히 위험 요소로 지적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NPL, 개인•법인 신용대출 등 7개 영역을 취급하는 대형 P2P 회사의 직원은 60명가량이다. 금감원은 “P2P업체들은 대출심사에 필요한 적정인력 및 경험 등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심사와 담보평가가 부실해져 부적격 차주에게 투자금이 나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등 1금융권 대출 심사에서 탈락한 차주들을 인력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P2P업체들이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며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업체별로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평가했다.


전통적 금융기관과 협력해 보험·대출 상품 등 내놔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방은행과 P2P 업체들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경남은행은 올초부터 P2P금융 기업인 슈펙스펀드와 업무협약을 맺고 투자자금 예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슈펙스펀드의 P2P금융 플랫폼을 통해 맡긴 투자금을 경남은행이 가상계좌에 대신 보관했다가 대출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경남은행이 투자금을 직접 보관·관리하면서 안전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또 부동산 P2P 대출플랫폼 테라펀딩과 손잡고 부동산 P2P 대출상품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을 출시하기도했다. 고객의 투자금을 모아 P2P 업체인 테라펀딩을 통해 중소형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부동산담보대출을 내준 뒤 원리금을 수취하는 구조다.


전북은행과 피플펀드는 통합시스템을 구축했다. '피플펀드 은행 통합시스템'을 통해 대출 서류 제출, 심사, 정산 등 모든 업무를 다루는 것으로, 피플펀드 대출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제1금융권 대출로 기록된다. 이런 협업을 바탕으로 이달 누적투자액 2000억원을 23개월만에 달성하기도 했다.


보험업계에서도 협력사례가 나오고있다. 어니스트펀드는 롯데손해보험과 손잡고 'P2P 케어 보험'을 도입했다. 자사 상품 중 보험 결합을 통해 투자원금에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손실 금액의 최대 90%까지 보험사가 보전해주는 구조다.


렌딧도 KB손해보험과 업무 협약을 맺고 '렌딧 대출고객 든든보험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 서비스는 렌딧 대출고객이 대출 기간 중 사망 또는 80% 이상 장해로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고객 대신 보험사가 대출금액을 상환하는 방식이다.


8퍼센트는 현대카드의 핀테크 기업 육성 공간인 핀베타(Finß)에 입주해 본격 협력이 기대된다. 핀베타는 현대카드와 협업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핀테크 스타트업을 초청해 육성하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다. 현대카드측은 핀베타를 통해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가 포함된 새로운 투자 생태계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P2P업체와 전통금융권과의 업무 제휴가 많아지는 것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P2P업체는 신뢰도가 낮다는 것이 가장 단점인데, 금융기관과 협력을 통해 신뢰도를 높이고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전통적인 금융기관들 역시 P2P업체들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영역의 사업을 시도하면서 영업을 다각화할 수있고, 고객접점도 넓어지는 효과를 노리고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