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빅데이터 확보, 은행 서비스 바꿔놓을 AI 중요성 커지지만..데이터 축적없인 무용지물




"매일 제발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더욱이 모바일 뱅킹은 시스템이 24시간 열려있다보니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시중은행들이 올해 핵심전략 중 하나로 디지털 강화를 내세웠지만 잦은 오류와 불안정한 전산, 차가운 소비자의 반응 등 역풍을 맞고 있다.

안정성이 최우선인 금융업이 혁신적 정보기술(IT)을 만나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당장은 불협화음이 더 도드라진다. 어쩔 수 없이 겪는 조정기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금융거래 특성상 소비자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힘들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의 디지털전략을 빗대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했다. 그는 "안정성이 최우선인 은행업이 시대적 조류에 맞춰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과 결합했지만 적응기가 상당히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챗봇(ChatBot)'이 기본적인 역할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을 비롯해 보험사와 저축은행, 증권사 등 전 금융권에서 앞다퉈 챗봇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기본적인 말귀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이 때문에 금융권 내에서는 챗봇서비스에 대한 의견이 나뉘고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서라도 도입을 빨리해야 한다는 입장과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서비스를 하는 것은 오히려 고객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 시중은행 챗봇, 아직은 설익은 서비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금융사들이 앞다퉈 자사의 모바일뱅킹 등에 챗봇서비스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NH농협은행이 '금융봇'을 출시한 데 이어 우리은행은 '위비봇', KEB하나은행(핀크)은 '핀고' 등을 선보였으며 최근 신한은행도 통합 앱 '신한쏠'에 챗봇을 탑재했다.



                                                  그림 블록체인밸리


A은행의 챗봇서비스를 이용해 보니 만족할 만한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챗봇서비스 초기화면에 활용 예시로 제시한 영역의 질문을 던져봤다.

 "100만원을 유로로 환전하면 몇 유로입니까"라고 묻자 질문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객님 혹시 다음에 대해서 궁금하신 건가요"라고 되물으며 "6000엔을 한국돈으로 환전하려고 하는데 어디서 환전하나"라는 것을 묻고싶은 것이냐고 답했다. 다시 질문을 바꿔 "100만원을 유로화로 환전하면 얼마입니까"라고 묻자 그제서야 질문을 인식하고 환율계산기로 가는 링크를 연결해줬다.


계좌조회나 대출조회에서도 "전세자금대출 잔액 알려줘"라고 묻는 질문에는 대출금액이 아닌 일반 전세자금대출 상품들을 죽 소개해주는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가까운 해당 은행 지점을 묻는 질문에 "머리를 맞대고 찾아봤지만 답변을 찾지 못했어요. 다음에는 답변할 수 있도록 계속 공부할게요"라고 답했으며 특정지점 전화번호 같은 간단한 질문 역시 질문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나온 챗봇서비스들은 단순명령을 알아듣지만 자연어 인식 등에서 아직 미흡해 직접 대화하듯이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서비스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라면서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어 고도화를 위한 일정 시간이 소요되기에 그때까지는 단순상담과 보조적인 역할에만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 말귀 못 알아듣는 챗봇 나오는 까닭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챗봇'을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것은 '빅데이터 확보'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금융권이 선보인 챗봇서비스들은 모두 인공지능(AI)을 탑재하고 있는데 AI의 경우 빅데이터가 많이 쌓일수록 딥러닝을 통해 더 똑똑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 관계자는 "향후 AI가 은행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란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많은 사용 데이터를 쌓는 것이 중요하며, 현재는 서비스가 불완전하더라도 점차 데이터가 쌓일수록 정교한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챗봇서비스에 실망한 고객들이 다시 챗봇서비스를 이용할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직까지 챗봇서비스를 서비스하지 않고 있는 한 금융사의 디지털 담당 임원은 "누가 먼저 서비스를 냈다는 것보다 고객들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서비스를 내놓는다는 것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면서 "제한된 영역에서 서비스하거나, 제한된 분야라도 완벽한 서비스가 안된 상황에서 섣불리 고객에게 내놔서 실망감을 일으키거나 하는 것에 주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 3명중 2명이 쓰는 모바일뱅킹도 앱 멈추고, 인증 안되고


시중은행들의 모바일 전략은 뱅킹 앱이 핵심이다. 스마트폰에서 편리하게 계좌 이체와 환전, 상품 가입을 할 수 있어 이용객은 나날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인터넷뱅킹 등록고객수 1억3504만명 중 모바일 뱅킹서비스 등록고객수는 9089만명이다. 이는 전체 인터넷뱅킹 등록고객수의 67.3%에 달한다. 모바일뱅킹을 이용한 조회서비스, 자금이체 건수 및 금액도 전년 대비 각각 10.6%, 26.2% 증가했다.



뱅킹 앱을 통한 모바일 거래는 갈수록 일반화되지만 불만도 따라 급증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마켓을 기준으로 볼 때 5개 은행 주거래 앱의 평점은 대부분 3점대다. 별점 5개 중 절반을 넘는 수준이긴 하지만 평점과 함께 수록된 수천개의 리뷰는 격앙된 반응으로 가득차 있다. 대부분이 앱이 멈추거나 인증이 안될 때, 오류로 거래가 중지됐을 때 분노를 느낀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이 같은 현상은 시중 5개 주요은행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례로 한 소비자는 금요일 자정께 모바일뱅킹으로 계좌이체를 시도했지만 잦은 오류로 날짜를 넘기게 됐고 이로 인해 연체 등 불이익을 받게 됐다고 불만을 호소한 적이 있다"면서 "평소라면 작은 오류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어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이해받기 힘든 오류가 된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노후화, 아파트 청약 등 제3의 플랫폼이 연동됐을 때 서버 오류 등 장애 원인은 다양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은행 앱에 집중되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달 말 우리은행의 온라인거래 시스템이 멈춘 것도 아파트 청약이 몰리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고객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

 앞서 차세대 시스템 교체 때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결국 모바일뱅킹은 은행 혼자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전산, 기술 등 전방위적인 관리가 필요한 일이 됐다.


모바일뱅킹에 대한 불만은 오프라인 창구거래에 대한 불만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 은행관계자는 "이전에는 특정 직원의 응대 태도, 업무 실수를 개인적으로 항의하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전부 다 볼 수 있는 장소에 실시간으로 리뷰가 올라오고 이것이 여론이 되는 상황"이라면서 "내부적으로 이런 반응과 불만에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 실시간으로, 또 공개적으로 불만이 모이면서 해당 은행의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라는 설명이다.


통합 앱 쏠을 도입하면서 앱 오류를 겪은 신한은행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고객센터로 접수된 내용이 바로 해당 부서로 전달되게 시스템을 정비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도 이런 시스템으로 업무를 하긴 했지만 최근에는 불만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한 차례 더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역시 모바일과 인터넷뱅킹 민원에 더 신속하게 대응하기로 내부적으로 대책을 세웠다. 고객센터 내 인터넷 전담팀을 강화하고 온라인뱅킹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접수된 고객 불편사항 및 요청사항을 관련 부서에 바로 전달한다. 또 1년 전부터 운영해온 SNS홍보팀은 온라인상의 댓글과 게시글을 모두 분석해 고객들의 반응과 만족도를 파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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