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 무역과 외교전쟁의 역사 

서평; 정영록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요즘 부쩍 중국관련 인터뷰나, 투고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중국의 향배에 대해 관심이 높다는 반증일 것이다. 특히, 미.중간의 대립.갈등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부분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관심이 큰 만큼 중국전문가로 불려지는 인사들의 발언도 신중해 질 수밖에 없다. 자칫 친중이니, 친미니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본토 출신으로 미국에서 유학한 후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역사학자가 양국의 사료를 기반으로 미.중관계 250년을 조망하는 흥미로운 책을 집필하였다. 출간과 거의 동시에 국내의 대표적 중국근대사 전문가인 이화승 교수에 의해서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이 책은 부제가 얘기하듯이 미.중간 개방과 배척, 패권과 공존의 250년을 얘기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만큼 양국 관계에서 균형감각을 갖고 보자는 논지가 강하다. 사실, 서구의 시각은 문명 우월주의와 민주주의의 세뇌라는 독선에 빠지는 경향이 강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세기 말에는 백인의 의무, 황화론 등이 팽배하는 등 서구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우유부단성도 성행했었다. 중국을 현자의 국가라고 칭송하다가, 부패, 정체, 유약, 황제의 전횡국가라고 매도 했던 것이 그 증거이다. 볼테르, 몽테스퀴에 등 우리가 알만한 지식인 들이 표변한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오해가 현대의 미국인들이 중국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과 중국의 접촉은,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이후 꾸준히 이루어진 역사에서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1784년, 미국 상선이 최초로 중국으로 출항했던 것은 워싱턴 대통령 생일 축하선물을 사기위한 목적이 있었다. 중국의 풍족한 문화 자산은 신생국 미국의 동경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였다. 유명한 재벌가인 듀퐁가는 빈터투어 박물관을 만들어 중국 황실 등 수준 높은 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미국내에 중국풍(漢流)이 대단했다는 것을 옅 볼 수 있다.

양국교역은 시작부터 지금처럼 중국의 수지흑자였다. 미국산 인삼, 면화, 납, 후추, 가죽제품등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홍차, 녹차, 면포, 자기, 견직물, 계피에 대한 수요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미국도 영국등 다른 나라들처럼 아편거래를 통해서 그나마 무역수지를 되돌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러셀, 포브스, 워런 델라노 등 10여명의 중국발 거부(백만장자)를 탄생시켰고, 그들이 미국 근대화를 이끈 선구자들이 되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00년의 존 헤이의 문호개방정책도, 다른 열강들에 대해서 중국에 대한 이익과 기회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만큼, 미국은 중국의 엄청난 부와 무한대의 시장을 인식하고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했을 때, 미국 해병대가 맨 앞에서 자금성을 초토화시켰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많다. 결국 1784~1949년간 165년간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무역이익을 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다른 서방 열강들에 비해 중국에 보인 호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1865년, 중국이 해외에 파견한 첫 번째 외교 사절단을 이끈 사람은 다름아닌 미국 공사 출신 벌링게임이었다. 그는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최초로 미국 언론을 상대로 감동적인 연설을 통해 중국을 소개하여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1872년, 중국은 2092년(기원전 221년부터 1871년까지)만에 서양을 배우기 위해 최초로 유학생을 보낸 나라도 미국이었다. 미국을 부국강병을 위한 모델 국가로 삼고, 군사제도, 교육제도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1900년 서방 열강 국가들이 베이징을 초토화 시킨 후 엄청난 배상금을 챙겼는데 오직 미국만이 유일하게 일부를 상환하여 명문 칭화대학의 설립 기초를 마련하였다는 점 역시 역사의 또 다른 아이러니 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교수는 청나라가 팍스 시노카라는 산업화 이전의 농경사회의 성공에 취해, 외교적 자만, 비실용적인 교육과 관료 시스템, 현대과학의 무시로 아편전쟁 패전 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다고 자평했다. 그 과정에서 200여 년간의 중미 역사를 분석하고 양국이 현실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자는 제안은 모두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양국의 갈등 과정속에서 조선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의 존재는 중미 양국 모두에게 중요했고 그 동향에 따라 역사의 방향계가 바뀔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났지만 역사적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고 우리의 지혜를 기다리고 있다.

저자: 왕위안총(미국 델라웨어 대학교 교수)

역자: 이화승 서울디지털 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