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사기 등으로 신뢰도 추락, 운영방안 개선 알리는 등 투자자 모으기에 안간힘

잇따른 부도와 사기행각으로 신규펀딩도 부진해지면서 P2P(개인간) 금융업계가 꽁꽁 얼어붙고있다.


특히 일부업체의 경우 새로운 펀딩에 차질을 빚자 이자지급에 문제가 생겨 연체가 발생하면서 향후 유사사례가 확대될 지 업계가 긴장하고있다. 이에 따라 일부 업체들은 투자자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거나 운영방안을 개선하는 등 투자자 모으기에 안간힘을 쓰고있다.


한국P2P금융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말 누적대출액 기준 시장 규모가 2조3000억원에 달한다.


■신규펀딩 차질 연체사태 발생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P2P업계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신규펀딩에 차질을 빚으면서 연체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부 상품의 연체를 빚고 있는 H업체는 공지문을 통해 "해당 펀딩은 차주와의 대출계약은 1년이지만 업계의 출혈경쟁에 대응하기위해 기간을 2~3개월로 분할해 플랫폼에서 선펀딩의 만기가 되면 대환펀딩을 모집하며 차주가 상환할때까지 대환을 하는 구조였다"면서 "그러던 중 몇몇 타펀딩의 불미스런 사태가 벌어졌고 신규펀딩투자는 정체가 됐으며, 신규대환펀딩은 모집이 안되는 상황으로 연체등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그림 : 블록체인밸리


결국 대출자에겐 12개월 이상 장기대출을 내보내지만, 투자자에겐 2~3개월 단위로 단기투자를 받아 직전 투자자에게 원금하는 방식이라는 것. 신규펀딩이 안되면 연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P2P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출혈경쟁으로 이같은 돌려막기가 성행하는데 투자자들에게 이 사실을 미리 고지하지 않았다면 불완전판매인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최근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신규펀딩이 부진할 수밖에 없어 이같은 사태가 업계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 투자자는 "예전에는 신규펀딩이 시작되면 2~3분만에 마감됐는데, 최근에 나오는 상품들은 판매완료까지 24시간 정도가 걸렸다"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생태계가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K펀딩은 최근 "P2P업계 내 이슈 등으로 펀딩일정에 변경이 생겨 대출금액이 10억원에서 5억 2900만원으로 변경됐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 투자자 신뢰얻기 위해 안간힘


이에 따라 P2P업체들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내놓고 있다.


B펀드의 경우 공지문을 통해 "공정관리 및 채권관리 진행상황을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공정관리현황' 페이지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있다"면서 "6월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 투자상품의 공정과 채권 관리 내역을 보다 투명하게 공시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또 다른 업체도 "투자자로서 알아야할 권리를 위해 △모든 투자상품의 대출실행 전후 증빙자료 등록 △투자자초청회 상시운영 △라이브tv운영 등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미등록업체에 대한 감독 규제가 없어 위법 사실을 확인해 검찰, 경찰 등에 관련 내용을 전달하는 수준의 조치밖에 할 수 없다"면서 "이들을 관리.감독하기 위해선 P2P 업체 규제에 대한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P2P업계도 관리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P2P업체 관계자는 "현재 가이드라인이 설정돼 있지만 준수하지 없는 업체들이 많다"면서 "가이드라인 자체가 투자자 보호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P2P 금융이 더 성장하기 위해선 법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 실제는 어떻길래?


블록체인밸리팀의 취재결과 상황은 참으로 어이없게 진행됐다. 아울러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정리해봤다.


지난 1일 오후 불안해하는 글이 하나둘 올라왔다. P2P(피투피) 투자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였다. 이날 P2P 투자자들이 불안해진 건 ‘오리펀드’라는 업체 때문이었다. ‘오늘 돈이 들어올 땐데 상환이 안 된다’ ‘갑자기 오리펀드 사무실에 연락이 안 된다’…. 점점 글들이 많아졌다. ‘사장이 휴대폰을 꺼놨다’ ‘등기부등본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위조인 것 같다’, 퍼즐 조각이 모이듯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결론이 하나로 모아졌다. ‘사기가 의심된다’.


반나절 만에 결론이 모아진 이유는 요즘 P2P 업계 분위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위기감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연체가 이어지다 폐업을 하는 건 그나마 양호한 경우다. 상품 모집 자체는 그나마 사실이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자상품 자체가 허위인 경우다. 최근 사고를 낸 ‘펀듀’와 ‘2시펀딩’이 그랬다. 투자상품부터 거짓이었다. 투자자들의 돈을 차곡차곡 모아 임원이 외국으로 도주해버렸다. ‘2시펀딩’ 임원의 경우 일본으로 도주했다. 수사를 맡은 강남경찰서는 출국금지를 하긴 했다. 하지만 동명이인을 출국금지했다. 이름만 같고 나머지는 전혀 다른 이였다. 주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친 셈이다.


‘오리펀드’ 투자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한시바삐 출국금지를 해야 한다’ ‘당장 경찰서에 신고하자’ ‘어느 경찰서로 가면 되냐’. 문제는 금요일 밤이라는 사실이었다. ‘당직 담당자에게 고소장을 냈는데 출국금지는 시간이 걸린단다 어떡하냐?’


‘오리펀드’는 신생사였다. 올 1월 문을 열었다. 6개월 만에 2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모았다. 정확히는 204억원이다. 이 중 78억원은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투자자들이 받지 못한 미상환금은 127억원이다. 새로 생긴 회사가 반년 만에 200억원을 모은 이유가 있었다. 업계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더하이원펀딩(이하 더하이원)’과의 합병이 신생 오리펀드를 밀어올렸다.


‘더하이원’ 역시 P2P 회사다.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주로 동산 담보 상품을 취급했다. 예를 들면 유류, 즉 자동차에 넣는 기름을 담보로 주유소에 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담보는 다양했다. 식자재, 다이아몬드, 가구, 건축 중인 창고를 담보로 투자금을 모은 경우도 있었다. 하나같이 짧은 대출 기간에 이율도 높았다. ‘대형 마트에 납품하는 식자재를 담보로 3억원을 두 달 동안 18%에 빌려준다’는 식이었다. ‘설마 한두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까’ 하며 투자가 이어졌다.


‘더하이원’은 이른바 ‘칼상환’으로 신뢰를 쌓았다. 대출금을 공지한 날짜에 칼같이 상환해줬단 얘기다. 순조로운 투자와 상환이 이어졌다. P2P 관련 네이버 카페 중 가장 가입자 수가 많은 A카페에는 ‘더하이원’의 이모 대표를 찬양하는 글이 이어졌다.


지난 3월 ‘더하이원’은 잠시 상품 출시를 멈췄다. 영업에 차질이 생겨서다. 금융감독원 때문이었다. 금감원은 모든 P2P 업체를 대상으로 금감원에 등록하라는 공고를 냈다. 자기자본금 3억원을 갖춘 후 ‘온라인대출정보연계대부업’으로 등록하라는 주문이었다. 데드라인은 2월 말이었다. 무슨 일인지 ‘더하이원’은 금감원 등록을 쉽게 하지 못하는 듯했다. ‘회사 대표가 전과가 있다’는 소위 ‘카더라’ 소문이 돌기도 했다. 4월 26일 ‘더하이원’은 금감원 등록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그 사이 법인 대표는 이모씨에서 황모씨로 바뀌어 있었다. 홈페이지엔 황모씨가 대표, 이모씨가 CEO라고 표기해놨다.


‘더하이원’은 금감원 등록 직후부터 줄줄이 상품을 출시했다. 5주 동안 36개 상품을 내놨다. 족족 마감이었다. 이전에 쌓은 명성 때문이었다. 투자자들은 경쟁에 밀려 투자하지 못할까봐 조바심까지 냈다. A카페엔 ‘더하이원’ 방문 후기도 올라왔다. 담보상품을 보관해놨다고 주장하는 창고를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했다는 글이었다. ‘더하이원’은 장애인 시설에 기부를 한다며 ‘기부펀딩’이란 것도 내놨다. 누적대출액은 420억원을 넘어섰다. 상환액을 제하고 어느덧 미상환 금액이 100억원을 넘어섰다. 정확히는 112억원이었다.


오리펀드는 금감원 등록엔 문제가 없었다. 2017년에 이미 등록한 상태였다. 문제는 영업력이었다. 1억원을 모으려했던 1호 상품의 경우, 중간에 펀딩을 취소했다. 3월 초부터 다시 상품을 연이어 내놨다. 부동산 담보였다. 태양광발전소 건설목적 대출도 있었다. 예를 들면 1억5000만원을 2개월 동안 15%에 빌려주는 형태다. ‘칼상환’이 이어졌다. 모든 게 ‘더하이원’과 같은 양상이었다.


4월 6일 두 회사는 깜짝 뉴스를 발표했다. 합병 소식이었다. 몇몇 매체는 이들의 발표를 그대로 기사화했다. 문제없이 상환이 이어진 데다 그 명성 높은 ‘더하이원’과 합병까지 했다니 ‘오리펀드’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올라갔다. 합병 직후부터 ‘오리펀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출상품을 쏟아냈다. 주로 두세 달짜리 고이율 상품이었다. ‘더하이원’처럼 동산 담보도 내놓았다. ‘합병했으니 취급상품도 비슷해지는구나’, 의심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오리펀드’와 ‘더하이원’은 투자자들에게 리워드, 즉 투자에 대한 일종의 보상도 줬다. 투자금액의 2%를 리워드로 준다. 500만원을 투자하면 이자와는 별개로 10만원을 백화점 상품권으로 보내주겠다고 내거는 식이었다. 한 달 만에 투자금 120억원이 모였다. 그리고 6월 1일 금요일. 두 회사 임원들은 여느 때와 조금 다른 행동을 했다.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엔 고객전화를 응대하는 직원만 남았다.


이들의 도주가 확실해지자 업계가 술렁였다. 급기야 거래회사까지 나섰다. 이들의 투자금 송금을 대행하는 ‘페이게이트’라는 회사였다. 경찰서에 자료를 가져가 두 회사 임원의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나름 발 빠른 대응이었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진 않았다. ‘모기지펀드’라는 한 P2P 업체가 피해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변호사와 함께 고소장 접수를 돕기 위해서였다. 한순간에 투자자에서 피해자로 처지가 바뀐 이들의 숫자는 총 1351명. ‘오리펀드’ 투자자만 따진 수치다. 사연 없는 돈이 있겠냐마는,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이었다. ‘투자 기간이 짧길래 아기 심장병 수술비를 조금이라도 불려보려고 투자했는데 이렇게 됐다’ ‘아파트 중도금을 두 달만 넣어두려 투자했는데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다’ ‘결혼비용이 몽땅 날아갔다’….

대부분이 은행 이자보다 조금 더 이자를 받으려고 한 일반 서민이다.


P2P 상품에는 원래 한 사람이 한 업체에 동산 기준 최고 2000만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동산•부동산 가리지 않고 ‘더하이원’과 ‘오리펀드’ 둘 다 투자해 4000만원 이상을 날릴 위기에 처한 사람도 많다. 가족 명의까지 동원해 1억원 이상 투자한 이도 있다. 자살이란 글자가 투자자들 단체 채팅방이나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서 보였다.


6월 4일 월요일이 됐다. 이제나저제나 경찰의 대응을 기다리는 투자자들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오리펀드’ 대표 조모씨가 6월 2일, 그러니까 토요일 아침 이미 베트남으로 출국했단 사실이다. 베트남으로 도주하지 않았을까 투자자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조 대표가 베트남 출신 여성과 결혼해 자식을 세 명 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자체 ‘수사’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첫째, 두 업체는 사기를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두 업체의 합병도 사실이 아니었다. 등기상으로 두 회사는 합병은커녕 아무 관련 없는 회사였다. 둘째, 실제 사장과 서류상 사장, 소위 ‘바지사장’이 서로 다른 P2P 업체들이 여러 군데 있어왔다. ‘2시펀딩’의 경우 도주한 채권팀장이 실질적인 사장이었고 서류상 사장은 그의 운전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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