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법원, 92조원 합병승인...미디어 빅뱅 신호탄 쐈다


                                                  그림 블록체인밸리


미국 연방법원이 미국 2위 통신 업체 AT&T의 미국 3위 미디어 업체 타임워너 인수를 승인했다. 두 회사는 지난 2016년 10월 인수•합병(M&A)에 합의했지만 미국 법무부가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하면서 절차가 지연돼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걸림돌이 사라지면서 통신 미디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854억달러(약 92조원)의 빅 딜이 곧 마무리될 전망이다.


두 회사의 인수•합병은 거대 통신 자본과 거대 미디어 기업의 결합으로 향후 미디어 시장 재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합친 두 회사는 시가총액(약 2800억달러)과 매출액(1900억달러)에서 확고한 미국 1위의 통신 미디어 기업으로 올라선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판결로 통신과 미디어, 미디어와 미디어 간 결합이 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통신•콘텐츠 업체들도 이 글로벌 기업들에 맞서기 위해 적극적인 M&A로 덩치 키우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M&A는 또 ‘통신과 미디어의 결합’이라는 새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았다. 아마존,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최근 동영상 콘텐츠 사업에 열을 올리지만 이들 산하에는 콘텐츠 데이터 이송에 필수적인 통신망이 없다. 특히 동영상 콘텐츠는 텍스트•음악보다 용량이 커 초고속 통신망이 필요하다.


통신기업인 AT&T가 롱텀에볼루션(LTE) 통신망보다 약 20배 빠른 5G망을 상용화해 타임워너가 소유한 콘텐츠를 보급하는 모델은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각광받아왔다. 더구나 콘텐츠 사용 플랫폼이 기존의 PC•TV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는 추세에도 AT&T는 직접 대응할 수 있다.


 타임워너 산하에는 ‘해리 포터’ 등 유명한 영화의 저작권을 다수 소유한 워너브러더스뿐 아니라 24시간 보도채널 CNN, ‘왕자의 게임’ 등 드라마로 유명한 케이블 채널 HBO 등이 있어 콘텐츠의 양과 질 모두 보장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통신 미디어 시장 재편 이끌 거대 공룡


미국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은 12일(현지 시각) 미국 법무부가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막아달라며 청구한 소송을 기각했다. AP통신은 "법무부가 두 기업의 합병이 유료 TV 채널 고객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이용료가 인상될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다"면서 "법원은 합병을 아무런 조건 없이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AT&T는 판결 직후 "20일 이전에 합병이 완료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1억2000만명의 유•무선 통신 이용자를 보유한 AT&T와 뉴스 채널 CNN, 미국 최대 유료 케이블 영화 채널 HBO, 영화 제작•배급 업체 워너브라더스 등을 갖고 있는 타임워너의 합병은 통신 미디어 시장 전체를 뒤흔들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AT&T는 타임워너가 보유한 왕좌의 게임, 해리포터 시리즈, 배트맨 같은 인기 콘텐츠를 자사 가입자들에게 모바일과 위성방송으로 독점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AT&T는 이 콘텐츠들을 무기로 미국 1위 통신 업체인 버라이즌을 넘어서는 한편 유료 TV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넷플릭스•아마존 같은 인터넷 기반 콘텐츠 업체들과 경쟁하겠다는 전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5G(5세대) 통신망 구축과 콘텐츠 생산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느냐에 새 회사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WSJ 등 외신들은 AT&T와 타임워너 간 M&A 이후 통신업체와 콘텐츠 회사의 도미노 합병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러브콜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콘텐츠 회사는 21세기폭스사다. 미국 인터넷통신 기업 컴캐스트는 AT&T와 타임워너가 M&A에 성공할 경우 21세기폭스사에 월트디즈니에서 제안한 524억달러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를 타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조만간 정식 제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2011년 NBC유니버설을 합병한 컴캐스트가 더 다양한 콘텐츠 확보에 나서는 셈이다. AT&T와 라이벌 관계인 미 1위 통신사 버라이즌도 CBS방송의 콘텐츠 분야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M&A를 발표한 미국 3•4위 통신사 T모바일과 스프린트도 합병을 마무리하면 미디어 기업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실제 경쟁사들도 대응책 마련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최대 케이블 방송 배급사인 컴캐스트는 대형 미디어 그룹 21세기 폭스 인수를 위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X맨 시리즈,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가족 등을 보유한 폭스의 인수 금액은 700억달러(약 75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버라이즌도 글로벌 미디어 기업 CBS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들은 넷플릭스•아마존처럼 엄청난 투자를 단행하는 테크 기업의 급성장에 압박을 느끼고 있다"면서 "자체 제작 콘텐츠와 유통망을 모두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한국 시장도 시장 재편 빨라질 듯


                                                 자료 취합 블록체인밸리


글로벌 통신 미디어 업체들의 공격적인 움직임은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공룡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덩치를 키우는 것 이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이달 말 유료 방송 최대 사업자인 KT 인터넷 TV의 시장 점유율을 33.3%로 제한하는 '유료 방송 합산 규제'가 풀리면 하반기에는 시장 재편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합산 규제가 없어지면 KT가 적극적으로 점유율 늘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이에 맞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케이블 TV 인수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불허로 실패한 CJ헬로비전 인수를 재추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고 LG유플러스도 여러 케이블 TV 업체를 대상으로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넷플릭스처럼 콘텐츠와 플랫폼을 모두 가진 글로벌 기업들에 비하면 한국 통신 미디어 업체들은 구멍가게 수준"이라며 "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사업 구조를 과감하게 개혁하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