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 동시에 될 수 있는 큐비트 속성 때문에 특정 문제 빨리 풀어

█ 기획시리즈 ' 4차산업혁명의 미래, 양자컴퓨팅과 블록체인'


 양자 컴퓨팅, 양자 통신, 양자 암호화 등 최근 ICT 업계를 중심으로 '양자' 기반 기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실험실 수준에 불과하던 연구 개발 성과도 어느덧 실용화 단계를 논의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AI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머신러닝용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으로도 양자 컴퓨팅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경쟁 또는 보완 사이에서의 관계 설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양자 관련 기술이 왜 중요한지, 현재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정리하고, 장차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시리즈를 통해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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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양자컴퓨팅, 도덕과 윤리 논의배제된 기술발전은 경계해야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술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프로세서들은 빨라졌고 메모리와 저장 용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세대에나 컴퓨터는 항상 ‘느렸다.’ 아니,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빠른 차세대 제품과 기술들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이 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양자 컴퓨팅이 받고 있다. 속도에 한계를 갖고 있는 블록체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확실히 양자 컴퓨터들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존 컴퓨터들보다 빠르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렇기에 기존 컴퓨터들로는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기존 컴퓨터들로는 하기가 어려웠거나 너무 느려서 문제 해결의 의미가 없거나 이론상으로만 가능했던 모든 것들이 양자 컴퓨터로 해결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인텔에서 양자 하드웨어를 책임지고 있는 짐 클라크(Jim Clarke)는 미국의 저널 컴퓨터사이언스와의 인터뷰(6월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양자 컴퓨팅은 물리의 가장 근본적인 법칙들까지도 도전을 해가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정 질병이 어떤 식으로 생겨나고 퍼지는가, 어떤 성분의 약이 있어야 그 질병을 고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같은 문제들 말이죠.”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런 문제를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해결해볼 수 있는 게 양자 컴퓨팅입니다. 양자 시스템이 상용화되기 시작한다면 화학 분야에서는 자연을 그대로 시뮬레이션 해서 여태까지 우리가 몰랐던 재료나 물질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물성 물리학과 분자 모델링에도 혁신적인 발전이 있을 겁니다. 이산화탄소를 격리시키기 위한 새로운 촉매제라든가 어떠한 경우에도 실온을 유지하는 초전도체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사업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운영과 업무 프로세스의 최적화를 한 단계 올리고, 인공지능과 머신 러닝과 같은 기술들의 향상에 추진제를 달게 할 것이며, 암호학은 지금 기술이 원시적으로 보일 만큼 혁신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딜로이트(Deloitte)의 데이비드 슈앗스키(David Schatsky) 상무도 역시 컴퓨터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기대치를 한 번에 모아 요악하자면 ‘최적화된 문제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우리가 가진 문제들에는 다양한 답들이 가능하고,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게 어려운 일이죠. 투자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리스크는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통신 시스템과 운송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등이 바로 이런 ‘문제들’입니다. 물류 전문가들은 운송 문제에 대한 최적의 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국방 산업은 통신의 최적화를 항상 고민하죠.”


양자 컴퓨팅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리학 분야에서만 진행되는 실험의 일환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 ‘제한된 선입견’이 해소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슈앗스키는 “불과 지난 3개월 동안만 해도 엔지니어링 기술에 큰 변화가 있었고, 그에 따른 양자 컴퓨팅 상품화 전략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밀접하게 이 환상의 기술을 접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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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BM과 양자 컴퓨터 시승해보기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 건 “양자 컴퓨터를 책상 위에 일반 PC처럼 놓고 쓰는 시대가 당장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 컴퓨터를 직접 접해보고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다만 평범한 인터넷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맛보기가 가능하다. 클라우드를 통해 IBM의 5 퀀텀비트(큐비트라고 한다) 컴퓨터와 16 큐비트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IBM은 양자 컴퓨팅 시스템을 상용화한다는 목적으로 IBM Q를 발표했다. 두 개의 양자 컴퓨팅 프로세서들을 구축하고 실험했으며, 일반 대중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는 내용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IBM은 16 큐비트 시스템은 일반 대중들을 위해서, 17 큐비트 컴퓨터는 IBM 고객들을 위해서 마련했다. 그리고 IBM은 네이처지를 통해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과학자들이 7 큐비트 프로세스를 사용해 베릴륨 수소화물(BeH2)의 분자 구조 문제를 풀어냈다는 것이었다. 이는 현재까지 양자 컴퓨터를 사용해 시뮬레이션에 성공한 가장 큰 분자다.


“양자 컴퓨팅은 지금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합니다.”

IBM의 양자 컴퓨팅 기술 전략 부문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CTO인 스캇 크라우더(Scott Crowder)의 설명이다. “수백 혹은 낮은 범위에서의 수천 퀀텀비트 프로세서를 갖출 수 있다면 기존 컴퓨터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사업 가치 관련 문제들을 탐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양자 화학 등 특정 분야의 최적화 문제를 말합니다. 무엇보다 ‘기하급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얻으리라 기대합니다.”


‘기하급수적인 문제’란 문제와 관련된 변수나 요소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문제 자체의 규모가 굉장한 속도와 규모로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50개의 지역을 순회한다고 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짜는 것은 복잡한 문제가 된다. 순회의 목적, 경로의 특성, 장애물 유무 등 수백~수천 개의 요소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문제 같지만 1000조 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기존 컴퓨터로는 계산하기가 힘듭니다.” 크라우더의 설명이다.


█ 인텔도 뛰어들다


인텔의 경우 2015년 네덜란드의 큐텍(QuTech)이란 학술 기관과 손을 잡았다. 그로부터 여러 가지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통합 극저온 CMOS 통세 시스템을 위한 주요 서킷 블록 개발, 인텔의 300mm 프로세스 기술에 장착될 스핀 큐비트(spin qubit) 제작, 초전도 큐비트를 위한 고유 패키징 솔루션 개발(이는 올해 10월 10일 17 큐비트 초전도 테스트 칩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10월 17일 라구나에서 열린 월스트리트저널 D.Live 컨퍼런스에서 인텔의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Brian Krzanich)는 “2017년 말까지 49 큐비트 양자 칩을 출시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용화 된 양자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도구이면서 인텔의 최종 목표를 이뤄낼 그런 기계 말입니다.”


그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인텔과 큐텍은 큐비트 단위의 기기들로부터 전체 하드웨어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애플리케이션, 양자 컴퓨터용 주변 기기에 이르기까지 그야 말로 양자 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생산 라인 및 제품군을 차곡차곡 쌓아갈 계획이다. “양자 컴퓨팅은 본질적으로 ‘병렬 컴퓨팅’의 궁극적인 형태입니다. 또한 기존 컴퓨터로는 풀 수 없었던 모든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까지 가지고 있죠.”


하지만 핑크빛 희망만 가득한 건 아니다. “그러한 단계까지 가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뛰어난 과학 기술, 고급 엔지니어링 기술, 전통적인 컴퓨팅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텔도 이걸 전부 혼자 할 수 없어 여러 단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R&D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 암호화 및 기타 위협들


‘양자 컴퓨터가 현대의 암호화 기술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예를 들어 브루트포스 공격이라면 어떨까? 브루트포스 공격이란 해커들이 맞는 비밀번호가 나올 때까지 무작위로 아무 번호나 대입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를 사람이 손으로 하지는 않는다. 컴퓨터를 써서 자동으로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수 시간에서 수일 걸리는 일이다. 그런데 양자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브루트포스 공격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IEEE 산하 양자표준워킹그룹(Quantum Standards Working Group)의 의장 윌리엄 헐리(William Hurley)는 “사실상 현대의 우리가 정립해 구축 및 사용하고 있는 모든 보안 프로토콜들이 양자 컴퓨터를 이용한 공격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요한 게 양자 정보 과학(quantum information)입니다. 양자 컴퓨터를 활용한 공격에도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연구 분야죠. 이론상으로는 양자 컴퓨터 공격이 절대로 뚫거나 부술 수 없는 게 양자 정보입니다.”


또한 양자역학을 활용하지 않고도 양자 컴퓨터 공격으로부터 시스템과 네트워크,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보안 프로토콜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헐리는 “이 부류의 연구자들은 양자 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힌트를 준다. “이를 ‘양자 ibm세이프 암호학(Quantum-ibmSafe Cryptography)’ 혹은 ‘후기 양자 암호학(Post-Quantum Cryptography)’라고 부릅니다.”


IEEE의 양자표준워킹그룹은 암호학 외에도 양자 기술이 응용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연구 중에 있다. 양자 센서, 양자 물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리학자, 화학자, 엔지니어,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이 모두 이 조직에 속해 있어 이 분야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양자 암호학과 같은 새로운 이론의 등장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딜로이트의 슈앗스키는 합성생물학과 유전자 편집 분야도 잠재적으로 위험하다고 짚는다. 해당 분야의 발전이 양자 컴퓨터의 등장으로 지나치게 빨라져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일지 판단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 분야의 사정이 다 비슷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철학적 사고나 윤리적 판단보다 앞서가게 되었거든요.”


█ 양자 컴퓨터 과학, 항상 염두에 두어야


아직은 SF의 영역처럼 느껴지는 양자 컴퓨터 과학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 중에 있다. 그러니 양자 컴퓨터가 업체에 하나 둘 들어올 때를 지금부터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헐리는 말한다. “물론 양자 컴퓨터가 우리의 실생활에 들어선다고 해도 어느 분야에 활용될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더 부담 없이, 남들과 다른 방법을 지금부터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가 어느 날 우리가 사용하는 보통의 컴퓨터들을 대체할까?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왔던 기술적 발전의 경로를 양자 컴퓨터도 답습할까? 아니면 현대의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가 공존할까? 슈앗스키는 “당분간은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바이너리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는 다른 문제들을 푸는 데 능하거든요. 바이너리 컴퓨터가 양자 컴퓨터보다 더 뛰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MIT 테크롤로지 리뷰(MIT Technology Review)는 최근 양자 컴퓨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의했다. “양자 컴퓨터의 중심에는 양자 비트 혹은 큐비트가 있다. 이는 현대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0과 1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큐비트가 두 가지 고유 속성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다. 큐비트 하나가 0이면서 동시에 1도 될 수 있고, 얽힘이라는 현상을 통해 다른 큐비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속성 때문에 특정 계산식에서 양자 컴퓨터는 지름길을 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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