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적용 '실시간 감시'로 진화...국내기업은 아직 시도도 못해, 착한 유통 착한 소비만


콩고 콜웨지의 코발트 광산에서 지난해 2월 광부들이 조업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콜웨지=블룸버그통신


전 세계적인 착한 소비 열풍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했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소비자가 생산•유통 과정에 대해 얻는 정보가 많아지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쉬워진 환경이 글로벌 기업들의 ‘착한 생산’을 늘리는 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최근 기업들이 착한 생산을 위해 집중하는 신기술은 블록체인이다. 생산부터 최종 소비처까지 모든 유통 과정을 저장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제품이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윤리적 과정을 거쳐왔는지 소비자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착한 소비•생산도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하는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erism), 이른바 착한 소비는 해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의 윤리적 소비 시장은 지난해 2,674억달러(약 297조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올해도 전년 대비 2%의 추가 성장이 예상된다.


윤리적 소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식료품 시장은 전년 대비 5% 팽창할 것으로 유로모니터는 내다봤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관련 소비 시장 규모는 813억파운드(약 119조원)로 지난 2008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세계적으로 착한 소비 팽창의 상당 부분은 IT 발전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넷을 통해 제품의 원산지와 유통 과정을 소비자가 상세하게 알 수 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문제가 있는 상품을 고발하거나 비판 여론을 형성하기도 쉬워졌기 때문이다.


또 전자상거래가 일상화하면서 윤리적 기준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스타트업의 창업도 쉬워졌다.


네슬레•스타벅스•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윤리적 측면을 의식해 2000년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생산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것도 과거에는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던 불공정무역•노동착취 등이 인터넷을 통해 지적받게 되면서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의 대두는 앞으로 착한 소비와 생산의 발전을 이끌 모멘텀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내역을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사용자 컴퓨터에 분산 저장하는 기술로 데이터가 담긴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chain)한 모음이라는 뜻이다.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생산•분배•운송 전 분야에서 데이터를 실시간 등록•감시할 수 있어 납품받는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도 모든 유통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전기차와 휴대폰의 배터리에 사용되는 코발트는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윤리적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는 대표적 분야다.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면서 코발트 가격은 2016년 말과 비교해 약 150%나 뛰었다. 코발트 값 상승으로 주 생산국인 콩고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콩고 반군이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없는 아동 인력을 코발트 광산으로 내몰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권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독일 BMW•폭스바겐 등 전기차를 개발하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IT 업체와 협업해 코발트 무역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발트 생산 기록을 모두 블록체인 망에 보고하도록 해 아동 노동 착취가 있는지 실시간 감시가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코카콜라도 미 국무부와 협력해 블록체인을 활용한 노동자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콜라의 주원료인 사탕수수 재배지에서 강제 노동이 자행되고 있다는 소비자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코카콜라 라벨 등에 블록체인 망에 접속할 수 있는 태그를 달아두면 원료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돼 윤리적 소비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기업들은 블록체인 활용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착한 소비’가 자리를 잡으면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내놓는 것은 물론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 등에 신경 쓰고 있다.


국내에서 착한 소비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파트는 소비재 업종에서 두드러진다. 대부분 패션·뷰티·식품 등 사람의 몸에 직접 닿는 제품이다. 유통업체들 중에서는 특정한 상품을 구매하면 일정 비율을 후원금으로 적립 후 여러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쓰기도 한다.


그림 블록체인밸리


블랙야크가 3년 전 인수한 ‘나우’가 대표적이다. 나우는 미국 포틀랜드의 지속 가능 라이프웨어 브랜드로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은 “지속 가능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공정무역, 재활용 원단, 환경 보호, 다양성 존중 등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 경영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르면 내년 말에 제주에 나우의 한국사무소 겸 플래그십 멀티스토어도 만들 계획이다.


재고로 쌓인 옷들을 전면 해체해 새 디자인으로 선보이거나 부분적으로 포인트로 활용하는 ‘업사이클링’도 트렌드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주요 패션 기업 중에서는 코오롱FnC가 2012년 론칭한 ‘래;코드’가 꼽힌다. 3년 이상 재고로 쌓여 소각될 물량을 활용해 상품을 만든다. 애초 재고 물량이 많지 않은 탓에 동일한 디자인의 아이템이 최대 10개를 넘지 않지만 찾는 손길이 꾸준하다. 덕분에 론칭 후 지난해 말까지 매출이 네 배 늘었고 올 3월부터는 렌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뷰티업체들 중에서는 천연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모든 제품에 유해 의심 화학성분을 첨가하지 않는다. 화장품 전 성분을 확인하는 ‘No 마크 캠페인’, 화장품 고를 때 꼭 알아야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착한 화장품 캠페인’ 등을 꾸준히 진행했다. 100% 유기농 제품만 고집해 입점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프리미엄 유기농 마켓 ‘홀푸드’에도 입점했다. 대표적 제품인 ‘불가리안 로즈 인텐시브 에너자이징 크림’은 미국 환경 시민단체 EWG에서 국내 최초로 인증 마크를 획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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