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검찰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Upbit)를 압수수색했다. 업비트가 가상화폐를 실제 보유하지 않으면서 전산상으로 보유한 것처럼 조작, 소위 장부상 거래를 했다는 혐의다.


압수수색 소식이 전해지자 가상화폐 시장은 요동쳤다. 업비트는 국내 1위, 세계 5위의 가상화폐 거래량을 가진 대형 거래소다. 시장은 거래소의 혐의 자체만으로도 악재로 받아들였다. 한동안 매도물량은 쏟아졌고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했다.


지난 3월에도 검찰은 3곳의 가상화폐 거래소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후 한 달 만에 가상화폐 거래소 5위 업체인 코인네스트의 김익환 대표 등 임원이 횡령•사기 혐의로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이 고객의 자금을 거래소 대표자나 임원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으로 빼돌렸다고 밝혔다. 또 거래소가 가상화폐를 확보한 상태에서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해야 하는데, 가상화폐 없이 매개했다고 전했다. 업비트와 같은 정황이었다.


■ 다시 ‘가즈아’ 할 줄 알았는데...


이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찬물을 맞았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취임 소식에 다시 가상화폐 시장이 예전의 힘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던 시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이 논란이 될 당시에 윤석헌 원장(당시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은 “거래소 폐쇄는 성급했다고 본다”며 “강제로 (거래소를) 폐쇄하면 미충족 투자•투기 수요를 감당할 방법은 무엇이겠냐”고 지적한 바 있다.


게다가 윤석헌 신임 금감원장은 업무보고 시에 ICO 전면금지 규제와 관련하여 적정성 여부를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ICO가 허용되면 ‘증권형 ICO’ ‘코인형 ICO’를 통해 자본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가상화폐 시장 또한 활력을 찾을 수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 입장에서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은 분명 호재였다.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 도입을 통해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까지도 나아가리라 예상하기도 했다.


지난 5월 8일 취임한 윤석헌 제13대 금융감독원장 (사진=금융감독원)


■ 사고는 계속 터지고 정부는 안보이고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특히 가상화폐 거래소가 금융 제도권 안에 놓여있지 못한 상태에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번 빗썸 해킹에도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금융감독원이나 금융보안원이 아닌 인터넷진흥원(KISA)이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는 금융권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상화폐 거래소의 보안 실태를 점검한 곳도 금융당국이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였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금융 제도권 밖에 놓인 만큼 기존 금융권 회사들이 누리는 보안 체계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금융부문 통합관제를 운영하는 금융보안원은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 중 어떤 곳도 회원으로 두지 않고 있다.


금융보안원 관계자는 “거래소는 금융권으로 분류가 되지 않기 때문에 회원으로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만약 금융권으로 편입이 된다면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리 감독을 받고 금보원 회원으로도 가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범정부 차원에서 마련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국무조정실 주재로 기획재정부, 금융위우너회, 법무부, 과기정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범정부 차원에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가상화폐 관련 정책과 입법 마련 등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자들은 정부의 안일한 대책 마련이 해킹 피해를 늘린다고 토로한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사실상 사각지대 안에서 해킹의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는데도 아직 제도권 편입 여부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어서다.


빗썸 해킹 소식이 알려진 직후 가상화폐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내 돈이 오고가는데도 금융권 제도 안에 놓여있지 않다는게 말이 되느냐”, “해킹 피해자만 있지 범인을 잡았다는 뉴스는 아직도 못 봤다. 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특히 빗썸의 경우 최근 광고를 통해 높은 보안을 강조해온 터라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요즘 동영상 광고 보면 ‘당신의 자산을 지켜준다’고 하더니 믿을 수가 없다. 빗썸처럼 대형 거래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올해 들어 가상화폐 시장이 반등의 기미가 보이면 여러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또 다시 침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투기나 자금세탁, 가격 조작 등 여러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서 보다 투명한 시장 만들기에 앞장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그래도 정부는 여전히 고민 중


가상화폐 투자자에게 있어 지난 6개월간의 상황을 보면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그것도 정부에서 나온 호재와 악재였다.


그러나 단순히 돈을 향한 개인의 욕심이 이런 불안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자본은 움직이고 시장은 변한다. 그 안에서 정부는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안정성을 유지할 책임이 있다.


앞서 언급된 코인네스트의 임원들의 횡령한 액수는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투자자의 돈이다. 만약 업비트의 혐의가 입증된다면 그 피해액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가상화폐 거래소에는 돈이 모이고 투자자들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 주요 인사 가상화폐 관련 발언 일지>
“암호화폐는 화폐도 아니고 금융상품도 아니다”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 2017년 12월 13일)
“형태가 없는 비트코인은 버블이 확 빠질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 , 2017년 12월 28일)
“우리나라 가상화폐 거래의 경우 사실상 투기, 도박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까지도 목표로 하는 법무부 안을 마련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 , 2018년 1월 11일)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와 관련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이지만,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 2018년 1월 11일)
“전면폐쇄하거나 불법행위를 저지른 거래소만 폐쇄하는 두 가지 방안을 모두 검토” (최종구 금융위원장, 2018년 1월 18일)
"거래소를 강제로 폐쇄하면 미충족된 투자, 투기 수요를 감당할 방법은 무엇이겠냐"며 "현 정부는 가상통화가 화폐도 아니고 금융자산이 아니라는 입장인데 가격 급등락에 비춰 금융자산이 아니라는 입장은 동의하기 힘들다" (윤석헌 전 금융행정혁신위원장,현 금융감독원장, 2018년 1월 31일)
“암호화폐의 정상적인 거래를 지원하겠다”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 2018년 2월 20일)
“가상화폐와 관련한 금지 근거는 없다하더라도 발행 방식 등에 따라 사기나 다단계 판매 등 유사수신으로 간주될 수 있는 등 현행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보면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ICO에 대해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2018년 3월 14일)
“일차적으로 금융 감독에서 다룰 이슈는 아니다” “좀 더 공부를 하고 추후 입장을 밝히겠다” (윤석헌 현 금융감독원장, 2018년 5월 8일)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사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가상화폐가 무엇인지부터 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규제도 가능하며, 투자자 보호도 가능하다.


지난 1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법정 화폐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정부에선 (화폐 대신) 가상통화 용어를 쓴다.”라고 밝히긴 했으나, 장기적 정책을 수립하고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가상화폐와 관련 거래, 관련 행위 등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가상통화 관련 주요국의 정책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가상화폐에 대해 미국 과세 당국은 증권과 같은 자산(property)로 정의하고 관련 제도를 세웠으며, 일본 또한 자산이자 결제수단으로 정의하고 관련 행위자인 거래소, 전자지갑 업체 등에 대해서도 법적 정의를 수립했다.


■ 일본은 이미 법 • 제도를 완비


특히 일본의 경우, 세계 최대 규모의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의 파산 후 투자자 보호를 통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진 터라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당초 해킹으로 비트코인 분실로 파산했다고 알려진 마운트곡스는 수사결과 원인은 시스템 부정 조작에 의한 결과였다.


이후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공식 도입하고,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현재 ‘개정 자금결제법’을 제정하여 시행 중이다. 관련 법은 가상화폐를 정의하고, 이용자 보호를 위하여 가상화폐 교환업자에게는 등록의무와 설명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자금세탁 방지 등을 위하여 일정규모 이상의 거래이용자에 대하여 공적증명서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여전히 거래소 해킹의 위험은 존재하나, 가상화폐를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외), '가상화폐업에 관한 특별법안’(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 외), '암호통화 거래에 관한 법률안’(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 외) 등 3건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국민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명지대 빈기범 교수(경제학)는 현재 상황에 대해 “정부 어느 부처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며 비판한다. 우선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신뢰 구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 거래 시 필요한 예수금은 보관의 주체가 증권회사가 아닌 공기업인 한국증권금융이며, 최대 5000만 원까지 보호가 된다. 그러나 가상화폐 거래소의 예치금은 특별한 안전 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블록체인 자체가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 피해 사례가 쌓인다면 앞으로 아무리 좋은 블록체인 활용 사례가 나오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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