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영 일 EU 중 등 선발국의 블록체인 보안성과 효율성 입증으로 우리정부도 뒤늦게 합류

정부 부처 등 공공기관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정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블록체인은 ‘가상화폐’의 원천기술로 크게 주목 받으면서 세계 각국들은 자국의 블록체인 현장 접목에 적극적이었으나 근혜정부가 마감된 뒤 출범한 한국정부 만큼은 유독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보안성과 효율성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문재인정부 역시 이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지난 주 블록체인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상용화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정통신기술진흥센터(IITP)에 따르면 한국의 블록체인 기술 수준은 미국의 76.4% 수준으로 시간으로는 2.4년의 격차를 보인다. 관련 규제도 여전하고, 블록체인을 암호화폐 기술이라고 치부하는 부정적인 인식도 팽배하다.
 

■ 민원행정에서 정책수립까지 블록체인 반영 시작


4일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 발표에 이어 올해 중 축산물 이력관리•개인통관•간편 부동산 거래•온라인 투표•국가간 전자문서 유통•해운물류 등에서 블록체인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업해 사육부터 도축•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의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공유, 문제발생 시 추적기간을 최대 6일에서 10분 이내로 단축하는 등 소고기 이력관리에 나선다. 또한 개인 통관과 관련해선 관세청과 협업해 주문부터 선적•배송•통관 전 과정을 블록체인에 기록, 실시간 수입 신고로 통관 시간을 단축하고 물류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저가 신고 사례를 예방하는 정책을 수립한다.


이와 함께 정부차원에서 국내 기업들의 블록체인 플랫폼 개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술개발 로드맵을 마련하고 세계 최고수준 국가 대비 기술을 현재(2017년 기준) 76.4%에서 2022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도록 지원한다. 이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 지원센터를 구축해 플랫폼•분산앱(dApp) 신뢰성•성능 평가 서비스와 개발 테스트베드도 제공한다.


과학기술과 다소 거리가 있는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도 블록체인 기반의 채용 정보제공 시스템 구축방안 (용역)연구를 시작했다. 구직자가 디지털ID(신원 정보)를 블록체인에 저장해 기업과 발급기관에 송신하고 디지털ID를 key로 기업과 발급기관 간 구직자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구직자는 각 기업의 채용 절차상 동일한 졸업증명서 등 증명자료를 각각 제출함에 따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증명서 발급기관이 직접 기업에게 공인된 증명자료를 전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인증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해당 정책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이 높은 보안성과 효율성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글로벌 IT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 역시 가상화폐와 관련지어 초창기 보였던 규제 일변도 정책을 벗어나 블록체인을 활용한 효율적 정책 수립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 같은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정부를 앞서가고 있는 현장…오늘 당신이 먹은 어묵, 어디서 잡힌 생선들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있다!


어묵 제품 포장지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제품 원산지 및 유통 과정이 화면에 나타난다. 삼성SDS가 부산광역시, 삼진어묵과 손잡고 시범 도입한 이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됐다.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소비자들은 조업지는 물론 제조 회사, 포장 날짜, 출고일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높아진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공포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기술적 근간으로 잘 알려진 블록체인이 점차 우리 생활에 다가오고 있다. 블록체인은 참여한 모든 구성원이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의 데이터를 검증하고 저장하기 때문에 데이터 위ㆍ변조 및 해킹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블록체인은 특성상 한번 등록된 내용은 변경할 수 없다. 언제나 원본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시장 참가자의 신뢰도가 높다. 불특정 다수 간의 거래나 정보 교환을 더 신속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서비스의 가격 하락과 품질 개선으로 이어진다.  



가장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원산지 증명이다. 삼성SDS는 최근 수입 명품에 근거리 무선통신(NFC) 태그를 부착한 국제 물류 플랫폼을 공개했다. 아직 수입 명품에 적용된 것은 아니다. 단말기를 NFC 태그에 갖다 대면 수출국, 수출ㆍ수입업체명, 유통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신우용 삼성SDS 블록체인사업담당 상무는 “중고차처럼 소비자가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없는 분야에 특히 요긴하다”며 “블록체인은 사물인터넷 등과 함께 발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지급결제 영역으로까지 뻗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권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 국내 주요 은행들은 해외 은행들과 함께 블록체인 기반 해외 송금 기술 개발에 나섰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으면 중개은행을 거치는 기존 방식보다 수수료와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교보생명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보험금 자동지급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100만원 미만 보험금에 대해 의료 소비자가 병원 수납 후 보험사에 따로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아도 보험금이 자동 지급되게 하는 서비스다. 병원과 보험사 간 블록체인 통합인증 체계를 활용했다. 은행연합회는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한 은행 공동 인증서비스 ‘뱅크사인’을 곧 출시하기로 했다. 주거래 은행의 인증서로 다른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인증서 유효기간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의료계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환자 입장에선 병원을 옮길 때마다 따로 촬영하거나 진료기록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양환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블록체인은 인터넷ㆍ스마트폰ㆍ인공지능의 뒤를 이어 디지털 혁신을 선도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 명품 신발에 부착된 근거리무선통신(NFC) 태그에 스마트폰을 갖다대면 수출국, 수출ㆍ수입 업체명, 유통이력 등의

                              정보를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위ㆍ변조를 할 수 없게 만든 국제 물류 플랫폼이다.

                                                                                               사진제공 삼성SDS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이런 장점 덕분에 블록체인의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억 달러에서 2025년 1760억 달러, 2030년 3조160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김형주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KBIPA) 이사장은 “새로운 제품ㆍ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시켜 줘야 블록체인 관련 사업 시도가 활발해질 것”이라며 “초창기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다가 중국 등 경쟁국의 추월을 지켜봐야만 했던 드론산업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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