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형 로봇 개발경쟁 이끌었던 '아톰' 꿈꾼 아시모, 18년 만에 퇴장



2000년 11월 일본 자동차 회사 혼다가 신형 로봇을 공개했다. 아시모(ASIMO)라는 이름이 붙여진 키 120㎝, 무게 52㎏의 이 로봇은 등에 배낭(배터리팩)을 멘 모습 때문에 마치 등교하는 초등학생을 연상케 했다. 아시모는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두 발로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는 최초의 로봇이었다. 아시모는 당시 로봇이라면 생산 공장에서 제품을 조립하는 한팔 로봇이나 장난감 로봇만 떠올리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아시모의 탄생을 지켜본 전 세계 과학자들은 사람과 똑같은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휴보(HUBO),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아틀라스(ATLAS)를 만들었고, 도요타•소프트뱅크 등도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들었다.


휴머노이드 시대를 연 아시모가 18년 만에 은퇴했다. 일본 NHK는 지난달 28일 "혼다가 아시모 개발을 중단하고 관련 조직도 해산했다"고 보도했다. 혼다는 왜 아시모를 만들었고, 왜 개발을 중단했을까. 아시모의 뒤를 잇는 최강의 휴머노이드 자리는 누가 차지할까.


■ '현실의 아톰' 꿈꾼 아시모


아시모의 시작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만화의 신(神)으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영화 '철완 아톰'을 선보인 해이다.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하늘을 날며 지구를 지키는 아톰은 세계적인 인기 캐릭터가 됐다. 하지만 혼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회장은 아톰을 만화 속 캐릭터로 여기는 대신 1986년 혼다 로보틱스 연구소를 세워 아톰을 실제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 도전이 아시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첫 등장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시모는 마치 어린이가 성장하는 것처럼 놀라운 발전 속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1세대 아시모는 걷는 속도가 초당 0.44m, 시속 1.6㎞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5년 2세대 아시모는 시속 6㎞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고, 커피잔 같은 물건을 쥘 수도 있었다. 2011년 3세대 아시모는 달리기 속도가 시속 9㎞까지 빨라졌고 자유자재로 춤도 췄다. 수화(手話)나 가위바위보를 할 정도로 관절도 정교해졌다. 심지어 사람의 명령을 알아듣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음성 인식 기술도 탑재돼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아시모의 가장 큰 장애물은 시장성이었다. 혼다는 2000년 아시모를 처음으로 공개하며 "대당 10만달러(약 1억1200만원)에 100대의 아시모를 판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완성도 부족을 이유로 계획을 계속 미뤘고, 결국 일반 판매는 이뤄지지 않았다. 신기하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 별다른 쓰임새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혼다는 아시모에서 축적한 기술을 자동차 등 다양한 제품 개발에 활용할 방침이다. NHK는 "혼다가 아시모 관련 기술을 이용해 절대 쓰러지지 않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사람의 근력을 강화해주는 보행 보조용 외골격(外骨格) 로봇 등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 휴머노이드 개발 경쟁 더 치열해져


과학계에서는 아시모의 은퇴에도 불구하고 휴머노이드 개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 더 정밀한 동작이 가능해지고 배터리 사용 시간만 충분히 길어진다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다른 어떤 로봇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로봇업체 로보티즈의 김병수 대표는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은 사람의 신체 구조에 최적화돼 있다"면서 "문을 열고 물건을 집거나 길을 걸어가는 것 같은 대부분의 동작을 사람을 모방하는 것만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량을 운전하거나 유독가스 밸브를 잠그는 동작, 소화전을 열어 소방호스로 화재를 진압하는 동작도 정교한 휴머노이드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혼다는 아시모의 뒤를 이을 재난용 로봇을 이미 만들기 시작했다. 혼다의 신형 휴머노이드 'E2-DR'은 사다리를 오르거나 좁은 폭의 문을 통과하고 바닥의 잔해를 치우는 등 재난 현장에서 꼭 필요한 동작에 최적화돼 있다. 로봇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도 차세대 휴머노이드 대표 주자다. 전기 대신 유압 펌프로 작동하도록 해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고,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경사진 산길을 안정적으로 뛸 수도 있고 공중제비를 돌 정도로 제어 성능도 뛰어나다.


KAIST의 휴보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휴보는 환경에 맞춰 바퀴와 두 발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고, 정밀한 손동작도 척척 해낸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휴머노이드는 신소재, 제어 기술, 시각 소프트웨어 등 첨단 기술의 결정체"라며 "앞으로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상상 이상의 잠재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세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휴머노이드,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최신형 공개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5월10일 공개한 아틀라스의 최신 버전. 유튜브 갈무리


미국의 대표적인 로봇 제조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자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회사가 내세우는 문구처럼 아틀라스는 2013년 첫 선을 보인 지 5년 사이에 눈부시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공개됐을 당시엔 동력케이블에 의지한 채 한쪽 다리로 몸의 균형을 잡거나 천천히 걷는 정도에 불과했으나 요즘엔 공중제비돌기에서 조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현란한 동작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달 공개된 최신 동영상은 10여일만에 600만회가 훌쩍 넘는 조회수로 인기를 끌었다. 체구도 5년 전의 키 180㎝, 체중 150㎏ 거구에서 지금은 150cm, 75kg으로 아담하고 가벼워졌다. 관절도 28개로, 360개에 이르는 사람과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동작이 가능하다.


애초 아틀라스는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개발이 시작됐다. 이는 군사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에 들어갔다는 걸 뜻한다. 목표는 수색이나 구조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아틀라스의 모태는 2009년 이 회사가 미 육군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기 시작한 ‘펫맨’(PETMAN)이다. 펫맨은 화생방 공격에서 병사들을 보호할 방호복을 테스트하기 위해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동작하는 로봇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관건은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 걸음의 특징은 발뒤꿈치부터 땅에 착지해 발바닥으로 중심을 옮긴 뒤 발끝으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가는 ‘발꿈치-발끝 보행’이다. 반면 기존 휴머노이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아시모나 휴보는 발바닥을 수직으로 들어올리고 내리며 걷는 발바닥보행이다. 전자가 성큼성큼 걷는 것이라면 후자는 아장아장 걷는 모양새다. 그러나 발꿈치-발끝보행은 발바닥보행에 비해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어렵다. 대신 일단 성공하면 사람처럼 빠르고 자연스런 보행이 가능하다. 사람과 똑같은 동작을 구현하려면 이 ‘발꿈치-발끝’ 보행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펫맨을 “실제 사람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최초의 의인화 로봇”으로 규정하며 다른 휴머노이드와 차별화하고 있다. 그때까지 동물의 행동 방식을 모방한 4족보행 로봇 개발에 주력해온 보스턴 다이내믹스로선 최초의 2족보행 로봇 도전이기도 했다. 펫맨의 초기 동작 능력은 전원을 공급하는 줄을 매단 채 러닝머신 위에서 뒤뚱거리며 균형을 잡는 정도에 불과했다.


2013년에 선보인 아틀라스 첫 시제품 역시 외형상 크게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펫맨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동력케이블을 매달고 있었다. 걸음걸이 역시 조심스러웠다. 다만 옆에서 세게 밀쳐내도 한 다리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은 눈에 띄었다. 당시 다르파 프로그램 관리자 길 프랫(Gill Pratt)은 아틀라스 시제품을 1살짜리 어린아이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1살짜리 아이는 겨우 걸을 수 있다. 잘 넘어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아틀라스의 첫번째 목표는 2014년 다르파 주최로 열린 재난구조 로봇 경연대회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 우승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팀들 가운데 6개 팀이 아틀라스를 플랫폼으로 채택해 자동차 운전하기, 문 열기, 공구 사용하기 등과 같은 작업 동작 경연에 나섰다. 하지만 아틀라스를 사용한 팀에서 우승팀은 나오지 않았다. 아틀라스를 채택한 미 IHMC로보틱스의 로봇 ‘러닝맨’이 2015년 6월에 열린 결승전에서 8개의 임무를 모두 완수하기는 했으나 한국 카이스트팀의 휴보에 6분차로 뒤져 2위에 그치고 말았다.


아틀라스는 2015년부터 한 단계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2015년 8월에 공개된 영상에선 자갈밭과 산길을 걷는 모습을, 2016년 1월 영상에선 짐을 들어올리거나 종이를 집어올리고 서툴기는 하지만 빗자루, 진공청소기 등 작업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아틀라스는 2016년 2월 비로소 비교적 세련되고 안정된 동작 기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선반에 짐을 부리는 것은 물론 눈길을 걷고, 앞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가 하면, 닫힌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 등 다양한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해엔 발판 건너뛰기 점프에 이어 제자리서 180도 방향 틀기, 공중제비돌기 등 현란한 개인기까지 선보였다. 아틀라스는 최근 또 하나의 진화를 이뤄냈다. 지난 10일 공개된 동영상에서 조깅하는 장면은 마치 사람을 보는 듯하다. 경사진 지형에서도 가볍게 뛰어 다녔다. 양팔까지 앞뒤로 흔들며 달리는 동작이 사람의 동작을 쏙 빼닮았다. 통나무 장애물 앞에선 두발을 모은 뒤 폴짝 뛰어넘기도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동물을 모방한 4족보행 로봇에 비해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족보행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고 위험한 곳에서 사람을 대신해 사람처럼 능숙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해서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넘어야 할 다음 과제는 손 동작이다. 사람처럼 손가락을 활용한 정밀한 조작 능력을 갖추게 되면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해 일본의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에 인수됐다. 손 회장은 2030년대엔 인공지능과 로봇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로봇 상품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내년엔 우선 로봇개 ‘스팟미니’를 출시할 예정이다. 현재의 개발 속도로 보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도 스팟미니의 뒤를 따라 시장에 등장할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 금융가로 간 휴머노이드


디지털트렌즈가 5일(현지 시간)  소매 금융 업계에 도입되고 있는 로봇 추세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 맨해튼의 5번가 HSBC의 본사에는 페퍼라는 로봇이 있다. 페퍼는 일본 소프트뱅크 및 프랑스 로봇 업체 알데바란 SAS(Aldebaran SAS)의 작품이다. 4피트(120cm) 높이의 로봇은 얼굴과 감정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통해 혹은 몸체의 태블릿에 메시지를 표시해 응답할 수 있다. 작업장에 따라 데이터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자와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에게 특정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HSBC는 페퍼가 고객에게 ‘미래의 지점’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말한다. 은행에서 페퍼는 방문객에게 HSBC의 금융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HSBC의 모바일 뱅킹 앱과 같은 기술에 대해 고객을 교육하며 고객 지원 옵션을 설명하는 등 다양한 기본 작업을 수행한다. 또한 방문객들에게 질문을 던져 좀 더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원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HSBC는 페퍼가 셀카를 위해 기꺼이 포즈를 취하고, 인간 직원이 즉시 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농담을 하고 약간의 춤을 추기도 한다고 전했다. 방문객에게는 재미있게 들리지만 HSBC의 주된 도전은 로봇 직원을 신기하게 느낀 이상으로 고객이 페퍼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가게에서 페퍼를 처음 봤을 때는 신기해했지만 두 번째 발견했을 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최근 스코틀랜드의 한 식료품점에 페퍼가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쇼핑객들은 이를 무시했으며 가게 주인은 ‘보행 표지판’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기술이 향상되면서 페퍼와 같은 로봇이 다양한 환경에서 더 유용한 작업을 수행하면 이같은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HSBC의 파블로 산체스(Pablo Sanchez)는 “페퍼의 한계에 당황하지 않고 로봇이 5번가 지점에 들어선 방문객에게 전에 없는 소매 금융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미래의 지점'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페퍼를 사용하면 지점 운영을 간소화하고 고객을 기쁘게 할 수 있어 은행 직원이 더 가치있는 고객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페퍼는 2015년에 출시된 이래 다양한 작업장에 등장했다. 백화점과 공항에서 환영하는 역할을 하며 피자헛에서 업무를 도우며 심지어 불교 사제로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HSBC는 로봇을 소매 금융에 도입하는 미국 최초의 금융기관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몇 달 안에 전국적으로 더 많은 페퍼를 확대할 방침이다.


※ 휴머노이드(영어: humanoid, 인간형 로봇)란, 인간의 형태를 모습으로 한 로봇을 의미한다. 형태뿐 아니라, 인간과 같은 인식기능, 운동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로봇기술의 총체적 발전이 궁극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고난도의 지능형 로봇이라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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