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인뱅’ 은산 분리 완화 추진, 특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 분리 규제를 국제적 수준에 맞춰 나가는 논의가 필요하다.”(7월 1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


“직진해서 (은산 분리 완화가) 국회에서 법제화되도록 뛰어보겠다.”(7월 11일,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현행 4%인 인터넷은행의 산업자본 지분 보유 한도를 34%까지 높이겠다.”(7월 17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


철옹성 같던 은산 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의 벽에 균열이 생기는 것일까.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두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에 한해 은산 분리 규제를 풀어주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아야 한다”며 은산 분리를 당론으로 고수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총대를 멘 모양새라 더욱 주목된다. 인터넷은행의 산파 역할을 한 금융위도 최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사안을 챙기고 있다.


낡은 규제가 새로운 금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최근 은산 분리 완화 찬성파의 핵심 논리다. ‘고용 쇼크’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도 규제 혁신 차원에서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인터넷은행의 은산 분리 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 2건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3건이 1년 넘게 계류돼있다.


KT나 카카오 등 비금융회사의 인터넷은행 지분 한도를 현행 10%(의결권 4%)에서 34~50%까지 허용하자는 게 골자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은산 분리 완화의 폐해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이게 금융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논리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분위기는 규제 완화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주최하며 이 문제 공론화에 앞장선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금융위를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정무위원장에 선출되고, 정 의원이 정무위 민주당 간사에 선임되면서 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미 지난해 인터넷은행의 은산 분리 완화를 당론으로 정했다.


완화 찬성파의 논리는 “인터넷 은행이 기존 은행들의 디지털 투자를 끌어내는 등 고인 물을 휘젓는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IT(정보기술) 기업 지분 제한으로 자본 조달 및 혁신적인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케이뱅크는 최근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섰지만, 주요 주주들의 불참으로 실패했다.


심성훈 케이뱅크 대표는 “20개에 달하는 주주사마다 자금 사정이 제각각이라 유상증자 등 자본 조달이 쉽지 않다”며 “과감한 의사 결정과 증자를 감당할 수 있는 대주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산 분리 규제를 풀어 지분율 10% 규정에 묶여 있는 KT가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을 살리자고 은산 분리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파는 케이뱅크의 자금난을 은산 분리 탓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카카오가 지분 10%(의결권 4%)를 보유한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7월 이후 두 차례 유상증자에 성공해 자본금을 출범 당시 3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늘렸다. 반대파는 이를 근거로 케이뱅크의 자금난은 은산 분리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자본 조달 능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책임론도 제기된다. 은행업을 하려면 은행법에서 규정한 인가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자본 조달의 적정성이다. 그런데 케이뱅크는 출범 이후 줄곧 자본을 추가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조대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케이뱅크의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한 (금융위의) 실질적인 심사가 부족하고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17일 성명을 내고 “은산 분리 규제 완화로 자신의 부실 행정 문제를 덮으려 하는 금융위의 후안무치한 모습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인터넷은행이 당초 기대와 달리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학과 교수는 “인터넷은행, 특히 케이뱅크가 기존 시중은행의 온라인 서비스와 비교해 혁신성과 차별성을 보여줬는지 의문”이라며 “이 정도로 인터넷은행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존 은행들도 ‘오프라인 점포를 모두 없애고 온라인 영업만 할 테니 인터넷은행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지난해 말 권고안에서 “케이뱅크 스스로 은산 분리 완화에 기대지 않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은행에 한정된 은산 분리 완화가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대형 입법조사관은 “은산 분리 규제 완화는 결국 은행에 주인(대주주)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배주주가 나타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주주 관점보다는 예금주 등 이해 관계자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은산 분리의 기본 이유, 즉 금융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인터넷은행의 주요 주주인 IT기업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며 “일반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은행도 대주주인 IT 회사가 망하면 동반 부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산 분리 완화 반대파인 여당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상호출자제한기업인 KT나 카카오가 은행을 소유하는 것과 삼성·LG가 은행 주인이 되는 것이 뭐가 다른가”라며 “이미 출범한 인터넷은행을 죽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살린다면 ‘대마불사’와 비슷한 ‘인뱅불사’(인터넷뱅크는 죽지 않는다) 논란이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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