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운명이 달린 나노, 한국은 꿈에서 깨어나지도 못해



해방 이후 연일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으로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더울 땐 시원하게, 추울 땐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해주는 스마트웨어 덕분에 땀이 흐르지 않는다. 옷 속에는 자유롭게 휘어지는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하는데 폭발 위험이 전혀 없어 안심하고 입을 수 있다. 이번 여름에는 바빠서 휴가를 가지 못할 것 같다. 대신 스마트폰과 가상현실(VR) 기기로 가고 싶은 여행지에 가서 현지 음식을 가상으로 맛볼 수 있어 아쉽지 않다.


얼마 전 이사 온 신도시에는 발전소가 없다. 대신 집집마다 창문에 태양전지가 있어 낮 시간 동안 자가발전을 하는 에너지자립형 주택이 들어서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각 집에는 정수 시설도 있어서 쓰고 난 물을 다시 사용한다. 유해물질을 걸러주는 공기청정기 성능도 크게 좋아져 미세먼지 걱정 없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 수 있게 됐다. 택배는 모두 무인드론이 배달하는데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해 요즘 드론은 충전도 필요 없다고 한다.


이제 100세 시대는 기본이다. 질병을 예방하는 나노백신과 나노이미징 치료가 보편화됐다. 얼마 전 어머니는 신장이 좋지 않으셔서 인공장기 이식 수술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혈압이 높고 당뇨가 있으신데 몸에 부착된 센서가 각종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경고를 주기 때문에 예전처럼 매일 혈압을 재고 채혈을 하지 않아도 된다.


TV를 켜니 우주여행 상품 광고가 나온다. 우주에서는 나노캡슐 한 알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태풍 때문에 홍수가 난 지역에 초경량 나노센서를 탑재한 마이크로봇이 조난자를 신속하게 찾아내 화제가 됐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2028년에 구현될 것으로 전망되는 사회의 모습이다. 공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모두 현재의 나노기술(NT)을 기반으로 10년 후 구현할 수 있을 만한 기술 수준의 제품과 서비스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10-9)미터 크기를 얘기한다. 머리카락 굵기 10만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다. 기술적인 의미에서 나노기술이란 나노미터 크기 작은 단위에서 물질을 분석하고 조작하고 제어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나노기술이 가지는 의미는 더 크다. 나노 물질은 큰 단위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강도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도 하고 색이 변하기도 하며 내열성이 강해지고 항균 특성을 갖기도 한다. 이 때문에 특별한 기능을 가지는 신소재와 첨단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기본적으로는 극소형화 기술이기 때문에 고집적화, 고속화, 경량화 추구가 가능하다.


또 유기화학, 의학, 전자공학, 생물학, 물리학, 생명공학부터 제조, 바이오•의료, 환경•에너지, 항공•우주, 국방, 소비자 제품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융합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과학기술로 꼽힌다.


■ 나노기술이 바꾸는 미래


일상생활을 더욱 편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AI와 로봇 기술이 대중화 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나노소재와 나노소자 기술이 뒷받침 돼야한다.


개인화된 AI 비서 서비스를 위해서는 기존 반도체 칩 기반 인공지능에 비해 획기적으로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연산능력이 월등이 뛰어난 뉴로모픽 칩 같은 미래 나노소자 구현이 필요하다.


나노소자 기술은 기존 반도체 소재와 소자 원리에서 탈피한 신개념 소자로 나노 소재•공정•집적기술 기반 고속, 저전력, 비휘발성, 고집적, 융복합 전자공학 기술이 요구된다.


로봇이 인간처럼 움직이고 주변 환경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노소재 기술 개발과 함께 전자코 나노센서, 나노촉각센서, 고성능 저전력 이미지 센서 개발이 필요하다. 재난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은 무게를 더욱 줄이기 위해 초경량 나노센서를 탑재해야 한다. 또 날숨, 체온, 맥박 등 생명력을 탑지하기 위해 후각과 촉각 등 생체모사 기술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산업구조 재편에도 신기능, 저전력, 초고속, 대용량화 등을 실현할 수 있는 나노 기술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나노융합 소재가 전자, 자동차, 정보통신, 디스플레이, 에너지, 인공지능 컴퓨터, 바이오, 3D 프린팅, 로봇 등 유망 산업과 접목되면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3D 프린팅용 특수소재처럼 소비자가 요구하는 기능의 제품을 저가로 제조할 수 있는 맞춤형 제조환경을 만드는데 나노소재와 공정 기술이 기여할 수 있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디스플레이, 옷처럼 입을 수 있는 배터리, 패치형 나노바이오 기기 생산을 위해서는 유연한 소재나 생체 적합 재료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10㎚ 이하 공정에서 나노패턴과 구조체를 고속, 고밀도, 대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공정 기술도 필요하다.



■ 나노가 지구를 살린다


4차 산업혁명은 세계적인 에너지 수요량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또 기후 변화에 따라 지속가능한 신재생 에너지 개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심화에 따른 청정 대기환경 조성과 수생태계 회복에 관심이 쏠리면서 환경 산업도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두 나노기술이 활용되는 분야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는 화력발전보다 우수한 효율을 내는 차세대 태양광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양자점 태양전지 기술과 탠덤 태양전지 기술, 태양광-열전 하이브리드 기술 등 초고효율 광전변환 소재와 소자 기술이 주목받는다.


친환경차의 대표 주자인 전기차 주행거리를 현재보다 획기적으로 늘리면서도 충전시간을 크게 단축시키려면 나노 양•음극 소재와 촉매 기술이 필요하다. 차세대 친환경차인 수소차 상용화를 위해서도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수송하기 위한 나노기술과 고성능 나노 분리판, 저가 나노촉매 등 제반 기술이 필요하다.


전기 공급이 필요 없는 에너지 자립형 주택에는 창문을 대신해 창호형 나노박막 태양전지 기술 등이 쓰일 수 있다. 나노기술을 활용한 다양항 형태의 에너지 생산과 더불어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지속가능한 신재생 에너지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버려진 물을 재사용하거나 공기를 정화시키는데도 나노 기술을 활용한다. 기존 수처리 공정과 접목 가능한 초고성능 흡착 나노 기공소재 기술, 수질 측정용 나노 바이오 센서 등을 통해 비화학적 방식으로 환경 정화와 안전한 물 공급 관리를 할 수 있다. 공기를 맑게 하는 공기청정기에는 유해물질을 신속하게 분해하는 나노촉매와 대기오염 물질을 흡착하는 필터용 나노 바이오 소재 개발이 필요하다.


■ 나노가 건강도 지킨다


미래 사회에는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건강 위해 요인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기술 발전으로 생활패턴과 의료정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맞춤형 의료서비스가 대중화되고 암, 바이러스 질환, 난치성 질환에 대한 진단•치료 기술도 발전할 전망이다. 나노기술이 의료•바이오와 결합돼 나노 백신, 동반진단 센서, 디지털 뷰티, 스마트팜처럼 건강한 100세 시대 구현을 앞당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내 몸 상태를 체크할 수 있으려면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생체 신호를 자연스럽게 수집할 수 있도록 웨어러블 기기처럼 인체에 착용하거나 삽입할 수 있는 나노바이오 센서 기술이 필요하다. 정확한 센싱이 가능하면서도 인체에 유해하지 않고 유연한 생체적합 나노바이오센서 기술과 유연 나노바이오소자 기술 발전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몸 안을 자유롭게 살펴보고 치료할 수 있는 기기 상용화를 위해서는 나노입자 기반 나노로봇 부품 기술과 정밀한 제어가 가능한 나노 액추에이터가 개발돼야 한다. 질병을 검출할 수 있는 고감도 나노바이오물질 식별기술도 필요하다.


향후에는 인체 거부 반응이 없는 인공장기도 나노 기술을 기반으로 상용화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체 적합도가 99% 이상인 나노바이오 소재와 이를 제작하는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이 필요하다. 환자의 손상된 장기를 체외배양 후 나노소재 기반 조직재생 기술로 재생시켜 이식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밖에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나노약물이나 흡수율을 높인 약물, 고해상도 영상•진단기기 기술 개발에 나노기술이 활용된다.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국내 화장품 산업에도 적용돼 나노 입자를 적용해 흡수율을 높인 화장품이나 피부 진단 나노바이오 센서, 피부세포 재생 촉진 나노 소재 등이 개발될 수 있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체뿐만 아니라 환경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정밀하게 인지해서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하고 이를 활용해 질병 진단, 치료, 대기질 모니터링을 통한 자연환경 보존 등을 할 수 있는 나노•바이오•ICT 융복합 기술, 나노 기반 전지 기술이나 인체 적합 바이오와 결합된 표적치료용 나노 로봇 기술처럼 친환경과 인체 건강 등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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