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공유, 금융 혁신...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블록체인은 금융거래 등의 정보를 중앙 서버에 기록하고 보관하는 중앙 집중형 네트워크 방식과 달리, 개인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거래정보를 분산해 보관하고 거래 참가자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는 분산형 디지털 장부를 뜻한다. 데이터 공유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금융을 혁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 활성화를 통해 자본시장의 성장과 발전을 충분히 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블록체인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 장벽이 이런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


 특히가상통화 투자 논란에 우왕좌왕하며 블록체인에 대한 원칙을 미처 세우지 못한 사이, 다양한 사업 모델이 기존 규제와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 육성’과 ‘가상통화 거래 규제’로 정책 방향의 가닥을 잡았지만, 이를 별개로 떼어내 추진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의 변화와 ICO(가상통화 공개) 허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블록체인 활용에 맞지 않는 개인정보보호법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각 개인정보를 다룰 때 그 정보를 정보이용자들이 “식별할 수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해시값’이 정부에 의해 ‘식별가능한 정보’로 해석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의도치 않게 어길 소지가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시값’은 개인정보를 비롯한 데이터를 수학적 함수를 통해 다른 값으로 변환해 새롭게 얻은 값으로, 업계에서는 임의적인 조작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에서 말하는 ‘식별 가능한 정보’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입된 정보가 해시화를 거쳐 분산 저장되면 해당 정보가 개인정보일지라도 알아보기 힘들뿐 아니라 식별되기 어렵다”며 “개인정보보호법에선 이러한 특수성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가명정보’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해시값 사용을 통한 블록체인 활성화 가능성은 커졌다. ‘가명정보’란 본명과 같은 개인정보를 ‘1번’과 같이 식별가능하지 않은 형태로 표현하는 정보를 뜻하는데, 이것이 허용될 경우 블록체인상 해시값 역시 허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선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다른 정보와 결합해 식별가능한 가명정보의 범위를 얼마나 폭넓게 규정해 주느냐가 정부 방침의 실효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취업, 마케팅 등 해당목적을 달성한 정보를 반드시 파기하도록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개인정보를 파기하지 않을 수 있어야 블록체인 기술 활성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록을 서로 연결하는 블록체인에서는, 외부 세력에 의한 시스템 위변조를 막기 위해 중간 블록의 내용이 변경되면 그 이후의 블록의 내용이 모두 변경되도록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개인정보라 할지라도 정보 삭제가 불가능해야 다른 정보와의 연결성을 통해 정보의 위•변조가 차단될 수 있는 것이다.


신용우 국회 입법조사관은 “완전 삭제가 안 되더라도 내용 확인이 불가능하면 법적인 파기로 간주하는 방안 등으로 정보보호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ICO, 정부가 손놓은 사이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


IPO(Initial PublicOffering)가 ‘기업공개’라면 ICO(Initial Coin Offering)는 ‘코인공개’를 뜻한다. 사업자가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 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현재 정부는 블록체인과 가상통화의 발전은 별개라는 논리하에 ‘ICO 금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을 제외한 미국, 스위스, 홍콩 등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기본적으로 ICO를 허용하되 현재 존재하는 규제의 틀안에서 문제되는 업체만 걸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ICO를 증권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제이 클레이튼 SEC 위원장은 “누군가가 나의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해서 수익을 돌려준다고 말하는 경우 이는 증권에 해당한다”며 “ICO 대부분은 여기 해당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와 홍콩 역시 ICO에 대해 자본시장 규제를 적용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ICO 금지 방침이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발전하기 때문에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그 인센티브 제공 수단이 바로 가상통화”라면서 “토큰을 발행하는 ICO를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국내에서 ICO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로 비즈니스를 하려는 한국인들이 예외없이 해외로 나가 ICO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 BS&C는 스위스에 블록체인 법인을 설립하고 가상화폐 ‘에이치닥’을 발행했으며, 한빛소프트는 홍콩법인 ‘브릴라이트’를 통해 ICO를 진행하고 있다. 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9월 원칙적인 ICO 금지 방침을 밝히고 후속대책을 논의하지 않은 사이 국내에서 막대한 자금과 일자리를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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