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중심→점유율 전쟁으로… 삼성전자發 메모리반도체 '치킨게임' 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내년 이후 중국의 시장 진입에 따른 공급과잉 및 업황 고점 우려, 미국 인텔의 차세대 메모리 확대 등으로 ‘시계(視界) 제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수출을 사실상 지탱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는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 등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스마트폰 성장세 둔화 등에 따른 단기적 업황 둔화 우려 속에서 첨단 신기술의 본격적 수요 확대 시기를 정확하게 예상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시장 예측 실패로 점유율을 잠식 당할 경우 중국 후발업체에게 빈틈을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로인해 세계 1위 삼성전자는 ‘치킨 게임’을 통한 점유율 확대로 선제적 대비에 나섰고, SK하이닉스도 올 연말 청주 M15공장과 중국 우시 공장 등의 조기 완공을 통한 메모리 캐파(CAPA•생산능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 삼성, 중국 차단할 ‘치킨게임’ 만지작…하이닉스 내상 우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이 그동안 지속해온 수익성 위주 전략을 수정, 메모리 가격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점유율을 높이려는 것은 중국 업체들의 시장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메모리 업체들은 우리 업체와의 기술 격차로 인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중저가 제품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물량 공세를 펼쳐 메모리 가격을 낮추면, 중저가 제품 위주의 중국업체가 시장에 쉽게 발붙이기 어렵다는 계산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오는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66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의 계열사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컴퍼니)를 비롯해 허페이창신, 푸젠진화반도체 등은 올 하반기부터 낸드플래시와 D램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특히 YMTC는 2세대 32단 3D낸드 시제품 생산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또 미•중 무역 분쟁 속에서 세계 3위 D램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이 자국 업체의 기술을 침해했다며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대해서도 반독점 규제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등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최소 2~3년인 기술 격차를 감안할 때 중국이 당장은 위협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진 메모리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메모리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이 과정에서 상당한 내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도 메모리 캐파를 늘리기 위해 애초 내년 상반기가 목표였던 청주 M15공장 신설과 중국 우시 공장 증설을 올해 4분기로 앞당긴 상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원하는 메모리 제품은 고성능•고사양 데이터센터 및 서버용 제품”이라며 “중국은 중저가 메모리를 자국 기업 제품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하겠지만 상위 제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상황이 지속되면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지 않는 이상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전통의 강자 美 인텔의 ‘차세대 메모리’ 위협


지난해 24년 만에 반도체 왕좌를 삼성전자에게 넘겨준 인텔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도 새로운 위협을 떠오르고 있다.


인텔이 마이크론과 공동 개발한 차세대 메모리 기술 ‘3D 크로스포인트(X Point)’를 적용한 노트북용 ‘옵테인(Optane) 메모리’는 지난 6월 세계 1위 PC업체인 레노버 노트북에 이어 8월 출시될 ‘삼성 노트북5’에도 탑재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자사 노트북에 인텔의 차세대 메모리인 옵테인 메모리를 넣기로 한 것은 업계에선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차세대 메모리는 속도가 빠르지만 전원을 끄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D램의 특성과 속도는 느리지만 데이터가 보존되는 낸드플래시의 특성을 결합한 것이다. 현재까지 시장 반응이나 수요는 미미하지만, 인텔은 자사 CPU(중앙처리장치)와 결합한 형태의 노트북용 라인업을 늘려 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옵테인 메모리를 탑재하기로 한 노트북도 인텔 CPU의 캐시 메모리 기능을 제공해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의 읽기 속도를 대폭 향상시켰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막강한 플랫폼 역량을 가진 인텔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중저가 메모리 시장을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앞세워 잠식하고 인텔이 차세대 메모리 영토를 넓히면 한국은 멀잖은 미래에 중국과 미국 사이 낀 ‘넛 크래커(Nut Cracker)’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스마트폰 성장 둔화로 단기 조정 국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AI나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 혁명 기술들이 만개하기 전까지 중국과 미국 등의 거센 도전이 예상된다”며 “반도체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중, 낸드플래시 양산 돌입에 이어 내년부터는 D램도 'Made in China'…자급률 향상 위해 166조원 투자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 국가다. 원유보다 반도체 수입량이 더 많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은 블랙홀처럼 반도체를 빨아들이는 중국 옆에서 최대 수혜를 누렸다. 한국 반도체 수출의 40%가 중국으로 향한다.



중국이 이 상황을 그래도 둘 리 없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 체제를 구축하겠다며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2025년까지 현재 15% 수준인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약 1조위안(166조원) 규모의 투자계획도 발표했다.


중국은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지난 2016년 중국 푸젠진화와 허페이창신은 D램 공장을 착공했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창장메모리(YMTC)는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들 중국 반도체 3사의 목표는 2년 후인 올해부터 양산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창장메모리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 막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대만의 IT전문매체인 디지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창장메모리는 최근 1만개 이상의 32단 3D 낸드플래시 첫 주문을 받았다. 8GB SD 메모리카드에 들어갈 물량이다. 창장메모리는 현재 월 5000개 정도의 32단 낸드플래시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D램과 비교하면 낸드플래시 생산이 상대적으로 조금 쉬운 편”이라며 “다만, 이미 한국 기업들은 64~72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생산 중이고, 삼성전자의 경우 96단 5세대 낸드플래시 양산도 곧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32단 낸드플래시와는 기술 격차가 크다”고 말했

다.


중국의 D램 생산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허페이창신이 최근 8Gb LPDDR4 D램의 시험생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본격적인 양산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푸젠진화 역시 “1세대 D램 생산을 준비중에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전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상반기는 되어야 중국에서 D램 생산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하반기 중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면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공급과잉으로 꺾이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계획보다 속도가 느리지만, 중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중국이 손을 대기 시작하면 해당 산업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지난 2003년 중국의 BOE가 한국의 하이디스를 인수하면서 LCD 기술을 인수했을 당시만 해도 기술 격차가 워낙 컸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BOE는 강격한 가격 경쟁력으로 9인치 인상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 1위로 올라섰다. LG디스플레이는 1분기에만 1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추락했다.


반도체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중국의 반도체는 이제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고, 한국의 반도체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라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면서도 “다만, 중국이 시장을 망가뜨려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올 경우 장기적으로 반도체 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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