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포비아, 현실로 나타났다
차이나포비아, 현실로 나타났다
  • 김수정
  • 승인 2018.08.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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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 스마트폰, AI, 바이오까지 한국 먹여살릴 산업 모두 중국에 추월당했다

중국 스마트폰 1위 업체인 화웨이의 리처드 위 소비자부문 대표는 지난 3일 “이르면 내년 4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를 꺾고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화웨이는 올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누르고 삼성전자를 바짝 따라붙었다. 달라진 화웨이의 위상 때문인지 위 대표 발언은 허풍이 아니라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다.


국내 산업계에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주요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산업에 이어 디스플레이 배터리 스마트폰 등 첨단산업까지 중국의 추월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는 배경에 중국 기업의 약진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기업들은 거대 내수시장과 자본력,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기업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기술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2017년 산업기술수준 조사’를 보면 바이오, 인공지능(AI), 시스템반도체 등 26개 분야 기술에서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평균 0.7년으로 좁혀졌다. 반면 한국 기업의 성장엔진은 식어가고 있다. 6월 산업활동동향에서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5.9% 감소해 4개월 연속 위축됐다. 산업생산도 0.7% 줄었다. 전 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17개월 만의 최저치인 75로 떨어졌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제조업은 곧 수출산업이고 수출산업은 대기업이 주축이라는 인식 때문에 제조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며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정책기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고용 유연성이 오히려 한국보다 더 높다”며 “노동개혁을 통해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커지는 차이나 포비아, 중국에 줄줄이 1위 자리 내줘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주력 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거대 시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 기업이 기술 경쟁력까지 높이면서 한국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먹여 살리는 최대 시장에서 한국을 위협하는 최대 라이벌(경쟁자)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6일 산업계에 따르면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산업은 물론 디스플레이,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잇달아 추월하고 있다. 2005년만 하더라도 중국의 디스플레이산업은 한국과 기술격차가 꽤 났다. 점유율도 미미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을 발판 삼아 BOE는 지난해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점유율 21.5%로 1위에 올랐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산 저가공세에 맥없이 무너지며 2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 오포, 샤오미 등 중국 3개사의 점유율은 다 합쳐도 삼성전자에 못 미쳤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이들 3개사의 점유율 합계는 33.2%로 세계 1위인 삼성전자(20.4%)를 뛰어넘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점유율을 크게 늘려가고 있다. 중국 CATL은 올 상반기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5713.6㎿h를 기록해 일본 파나소닉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까지 2위였던 LG화학은 중국 업체들에 밀려 4위로 처졌다.


올 상반기 한국 조선업은 3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수주실적 1위를 달성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상반기 세계 선박 발주량 1234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441척) 가운데 한국이 40%에 해당하는 496만CGT(115척)를 수주했다. 2위는 36%를 가져간 중국(439만CGT•203척)이었다. 하지만 6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중국이 2825만CGT(38%)로 가장 많고, 한국은 1748만CGT(23%)에 그쳐 ‘재역전’이 예상된다.


■ 주요 산업 1년 내 따라잡힌다


주요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뿐 아니라 주요 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도 1년 미만으로 좁혀졌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올해 초 발표한 ‘2017년 산업기술수준 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오,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시스템반도체, 스마트카 등 26개 산업 분야의 한•중 기술 격차는 평균 0.7년에 불과했다. 평가관리원이 총 26개 산업기술 분야의 407개 세부 기술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다.


2013년 조사에서 1.1년이던 격차는 2015년 조사에서 0.9년으로 줄었고, 이번에 다시 0.7년으로 좁혀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역전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1위 제품 수는 중국이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 상품•서비스 71개 분야의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중국 기업은 이동통신 인프라와 냉장고, 세탁기 등 9개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다. 한국 기업의 1위 품목은 스마트폰과 D램, 낸드플래시 등 7개에 그쳤다. 중국은 전년 대비 1위 품목이 2개 증가한 반면 한국은 2015년 8개에서 2016년 7개로 줄었고 지난해에도 답보 상태였다. 미국 기업은 일반의약품과 반도체 장비 등 24개 분야에서, 일본 기업은 이미지센서, 카메라 등 10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 4차 산업혁명 분야도 뒤처져


미래 먹거리인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에서도 중국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주요국 4차 산업혁명 기술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한국의 4차 산업혁명 12개 분야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중국은 108로 한국을 앞섰다. 중국에 비교 열위인 분야는 △블록체인 △인공지능(AI) △우주기술 △3D프린팅 △드론이었다. 경합하는 기술은 △첨단소재 △컴퓨팅기술로 나타났다. 한국이 비교 우위인 분야는 △바이오 △사물인터넷 △로봇 △증강현실 △신재생에너지에 불과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제조업 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고 있다”며 “한국도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신기술을 확보하고 디지털 분야의 인력을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중국의 첨단기술 大國 야심, 10대 산업 '제조 2025' 가속 …부품•소재 자급률 70% 목표 반도체•로봇 등 전략산업 육성, 338조원 쏟아부어


 첨단산업에서 세계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구체적인 전략은 ‘중국제조 2025’에 담겨 있다. 독일의 성장 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을 벤치마킹한 이 전략의 핵심은 ‘제조 대국’ 중국을 ‘제조 강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핵심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율을 2020년까지 40%로 끌어올리고 2025년에는 70% 수준까지 달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2035년엔 독일과 일본을 제친 뒤 2049년 미국까지 추월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도체•정보기술(IT), 로봇, 항공우주, 해양공학, 첨단철도, 친환경자동차 등 10대 전략 육성 산업을 선정했다.


중국 정부는 각종 보조금과 혜택을 주면서 관련 산업을 키우고 있다. 민간기업이 10대 산업에 투자할 때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이 최대 80%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이 10대 산업 분야에서 전략 제품을 개발하면 정부가 ‘최초 매출’도 보장해 준다. 지금까지 여기에 쏟아부은 돈만 3000억달러(약 33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제조 2025’ 전략이 탄생한 배경에는 ‘볼펜심 사건’이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2015년 “우주선도 발사하는 중국 기업이 볼펜심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고 한탄하면서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매년 볼펜 400억 개를 생산하며 세계 시장의 80%를 석권했다. 하지만 정작 볼펜심에 들어가는 볼은 만들지 못해 일본과 독일에서 90%를 수입했다. 크롬이나 스테인리스강으로 된 볼을 제조하기 위해선 첨단기술이 필요했다. 볼펜심은 덩치만 컸지 핵심 기술은 갖추지 못한 중국 제조업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리 총리는 그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업무보고 때 ‘중국제조 2025’를 처음 언급했고 중국 정부는 두 달 뒤인 5월 국가 전략으로 공식 선포했다. 볼펜심 사건 이후 중국 스테인리스강 제조업체 타이위안철강이 2016년 볼펜심용 2.3㎜ 두께의 고강도 스테인리스강을 개발했다. 볼펜 메이커 베이파그룹은 지난해 초 이 소재로 생산한 100% 중국산 볼펜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 정부는 더욱 공격적으로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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