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검찰과 공정위라는 ‘두 개의 칼날’에 상시 표적이 되다
기업, 검찰과 공정위라는 ‘두 개의 칼날’에 상시 표적이 되다
  • 김수정
  • 승인 2018.08.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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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전속고발권 38년 만에 폐지,'중대 담합' 檢 독자수사 가능



 경쟁 기업간 중대한 담합행위가 발생하면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수사를 개시하는 ‘전속고발권 제도’가 38년 만에 일부 폐지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시민단체, 소액주주 등의 고발 남발로 경영에 집중해야 할 기업인이 수시로 검찰에 불려가는 일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공정위와 법무부는 21일 가격담합, 공급제한,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 중대한 담합행위(경성담합)에 대해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단순 정보교환 같은 약한 수준의 담합은 전속고발권이 유지된다. 정부와 여당은 연내 처리를 목표로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전속고발권은 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고발 남용에 따른 기업활동 위축을 막자는 취지에서 1980년 도입됐다. 검찰은 기업 내부 비리조사를 이유로 줄곧 폐지를 주장해왔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시민단체, 소액주주 등도 고발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과징금 부과 등 공정위의 행정처분을 면제받더라도 사안에 따라 검찰의 형사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기업의 사법 리스크만 커졌다”고 했다.


공정위와 더불어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합 등의 과징금 최고 한도를 두 배로 늘리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도 넣기로 했다. 규제 대상 회사의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상장 30%, 비상장 20%에서 상장•비상장 모두 20%로 일원화한다. 이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현재 203개에서 441개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38년 만의 전속고발권 폐지로 기업들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외에 검찰까지 상대해야 할 처지가 됐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기업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을 표방한 별건수사가 공공연히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 검찰 수사도 리니언시 적용


공정위와 법무부가 21일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해 합의한 사안을 보면 가격담합, 생산량 조절,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 중대한 담합행위(경성담합)는 공정위 고발 없이도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 나머지 연성담합(공동 연구개발, 정보교환 등) 사건은 지금처럼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 수사가 가능하다. 그동안 공정위가 조사한 담합사건의 90% 이상이 경성담합이다.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기업결합 제한, 지주회사 행위 제한, 상호출자•순환출자 금지, 금융지주회사 의결권 제한,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등 담합사건 외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는 공정위가 계속 전속고발권을 갖는다.


현재는 공정위 행정처분(과징금 부과)에만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 제도를 적용했는데 앞으로는 형사처벌에도 리니언시를 도입한다. 공정위에 제일 먼저 담합을 자진신고한 기업은 과징금 전액 면제, 두 번째 신고 기업은 50%를 감면해준다. 이와 비슷하게 검찰에 담합을 제일 먼저 자진신고한 기업은 형을 면제하고, 두 번째 신고 기업은 형을 감경한다.


■ 과징금 감면의 사후 취소도 가능


공정위와 법무부는 “일반적인 자진신고 사건은 공정위가 우선 조사하되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자진신고 사건은 검찰이 우선 수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중요한 사건은 검찰이 조사한다는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며 “공정위와 검찰이 서로 조사하겠다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정위와 검찰 간 경쟁이 붙으면 기업인들이 양쪽 기관에 수시로 불려다닐 우려가 있다”고 했다. 대형 로펌을 선임할 형편이 안 되는 중소기업이 가장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가 자진신고자에 준 감면 혜택을 사후에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기업들은 ‘개악(改惡)’으로 꼽고 있다. 지금은 공정위가 감면 혜택을 주면 이를 취소할 수 없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편안에 ‘과징금을 감면받은 후 행정소송에 비협조하는 자는 행정면책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기로 했다.


■ 공정위가 기득권 놓은 이유는


1980년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이 생길 때부터 검찰은 이 제도에 반대해왔다. 공소권은 검찰만 갖는다는 ‘기소독점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공정위 간부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정거래법 개편 특별위원회가 지난 6월 “전속고발권 보완•유지 의견이 폐지 의견보다 많았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전속고발권은 유지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검찰이 6월 공정위를 압수수색하고 지난달 전•현직 간부들을 구속시키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검찰은 공정위가 16개 기업에 압력을 넣어 2012년부터 작년까지 18명의 퇴직 공무원을 재취업시켰다고 발표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공정위의 조직적 비리를 대대적으로 들춰낸 것이 전속고발권 폐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 38년 만에 폐지된 담합 관련 전속고발제


지난 5개월간 논의를 벌여온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30일 권고안을 최종 발표하면서 경성 담합 등 전속고발제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총 9명의 위원이 의견을 제시한 결과 기존 전속고발제를 보완•유지하자는 의견이 5명, 경성 담함 등 중대한 위반 행위만 선별 폐지하자는 의견이 4명이었다. 의견이 이처럼 첨예하게 엇갈린 데는 전속고발제의 폐지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특위 참여 위원은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공정위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폐지했다가는 기업들이 경제 사건으로 사사건건 검찰에 불려다닐 우려 역시 만만치 않았다는 데서 이견이 컸다”고 말했다. 치열한 논란에도 결국 공정위는 중대한 담합행위에 한해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으로 특위 논의 과정에서 나왔던 기업들의 부담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유지를 두고 법무부와 공정위가 오랜 기간 권한 다툼을 벌여왔지만 두 기관이 명시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한 것은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38년 만에 처음이다. 합의안에 따라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공정위의 고발이 없어도 검찰이 다른 고발이나 자체 인지•판단에 따라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다.


■ 기준 모호한 사건 배분•••자진신고 해놓고도 검찰 수사 받을 수도


정부는 기업이 검찰과 공정위 모두로부터 조사를 받는 부담을 받지 않도록 수사 우선순위를 정했다.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자진신고 사건은 검찰이 우선 수사에 착수한다. 문제는 어떤 사건을 검찰이 우선 수사하게 될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시급성은 리니언시 정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며 “상시 운영할 실무협의체에서 그때그때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의 조사를 예상하고 자진신고를 했다가 검찰의 압수수색에 직면할 가능성도 상당한 셈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리니언시제도를 활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만큼 정부도 담합 사건을 적발하기가 어려워진다. 국책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중대한 사건이 무엇인지 예측 가능하도록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판단하게 되면 제도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며 “기업인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이 올라가면 자진신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형사면책 판단은 검찰이 최종적으로 하기로 한 점도 기업들로서는 상당한 리스크다. 자진신고가 들어오면 공정위는 30일간 자료 보정기간을 거친 뒤 관련 자료와 해당 자진신고자를 면책할지 여부에 대한 공정위의 의견을 검찰에 전달한다. 검찰은 1순위 자진신고자는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2순위 자진신고자는 형사처벌을 임의적으로 감경하기로 했다. 다만 1순위 자진신고 기업의 경우에도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을 형 감면의 요건으로 추가하고 공정위의 의견도 ‘최대한 존중’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기업이 공정위의 과징금이나 시정조치 등 행정처분을 면제받더라도 향후 검찰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거나 법 위반 수준이 중대하다고 보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 기업들 “납득하기 어렵다•••고발 남발될 것”


재계에서는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에 대해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우선 각종 단체들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고발을 무더기로 할 경우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정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식의 가격담합과 입찰 ‘짬짜미’가 상당히 근절됐다”면서 “그런데도 누군가 고발할지 모른다는 리스크를 안고 경영을 해야 한다면 기업 활동 전반이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강제 조사 권한을 가지고 수사에 나서는 것도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커지게 된 점이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기업을 상대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하게 되면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들여다보게 된다”며 “검찰이 확보한 기업의 정보가 악용돼 기업들이 정치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전속고발권


담합 등 공정거래법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게 한 제도. 고발권을 남용해 기업의 경제활동을 어렵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80년 도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가 자유롭게 고발할 권리를 이 제도가 막고 있다며 대선 때 폐지를 공약했다.


■리니언시


담합행위를 한 기업이 자진신고할 경우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 어떤 기업이 자진신고했는지는 공정거래위원회만 알고 있는 게 원칙이다.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이 정보를 검찰과 공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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