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더라도 ICT(정보통신기술)가 주력인 기업집단을 예외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데 이어 여당 내에서도 여전히 은산분리 지분보유 한도와 적용제외범위 등 세부사항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법안통과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 여당내 자중지란


문재인 대통령의 규제혁신 대표작인 인터넷전문은행 지분규제 완화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자중지란에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24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법안심사1소위를 열어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하자 당내에서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율을 놓고도 정무위원•비정무위원 할 것 없이 논쟁이 오가고 있다. 이외에도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는 등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여당과 한마음으로 의욕적으로 밀어붙이는 규제혁신마저 자중지란에 빠지자 과연 여당이 경제 살리기 등을 위한 정책을 실행할 만한 내부 역량이 있느냐는 의문마저 나온다.


23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날 당 의원 120여 명이 속해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선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한 의원은 "박근혜 정권 때 카카오뱅크와 케이(K)뱅크를 허가해준 것을 왜 우리가 욕먹어 가며 뒤치다꺼리를 하느냐"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홍영표 원내 대표가 의원총회 때 '정무위에서 법안을 마련해 의총을 다시 열고 당 총의를 모은다'고 했는데, 지금 법안 소위를 통해 강행시키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말이 바뀐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자유한국당 편을 드느냐" "굳이 지금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통과시킬 만큼 시급한 상황이 아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날에는 당 4선 의원들이 홍 원내대표와 오찬을 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신중히 추진할 것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이를 지지층에 설명한 뒤에 추진해도 늦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인터넷은행 출범 때부터 관여해 왔고 산업자본 허용 지분 완화에 강경 반대하는 박영선 의원은 전날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국회에서 따로 만나 인터넷전문은행 추진에 대해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사안상 정무위원들의 찬반이 있었을 뿐 당 전체에선 이슈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 추진을 규제혁신의 대표작으로 지목해 전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당 지도부와 정무위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정무위 소속 이학영•제윤경 의원은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당내에서 "너무 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강경하게 반대하는 쪽에선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금산분리 강화'라는 민주당 강령에 대치되지 않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정무위원들은 '은산분리 완화가 아니다'고 하고 반대쪽은 '댐에 금이 가면 금방 무너질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완화 지분율에 대해서도 25%와 34%를 놓고 격론이 오간다. 박영선 의원은 금융지주사법 등과의 형평성을 들어 25%를 제시하고 있고, 찬성파 정무위원들은 실효성 측면에서 34%를 설득하는 형국이다.



 일부에선 홍 원내대표의 리더십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원내대표가 사안을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해 이해를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번에 통과되더라도 홍 원내대표가 잘했다는 얘기는 못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우려하는 사태는 지난 5월 말 통과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넓히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다. 당시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에 속한 이용득 의원이 반대했다. 당은 이 의견을 배제한 채 통과시켰다. 홍 원내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정책의총을 열긴 했지만 의견을 듣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 인터넷전문은행법에 대한 상황도 흡사하다. 법안 통과의 키를 쥔 정무위 법안1소위에는 여당 위원 총 5명 중 1명(이학영)만이 반대파지만 나머지 4명은 모두 찬성파에 해당한다. 이들은 24일 법안 통과를 강행해 정무위 전체회의에 부쳐버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 원내대표 측은 "중진그룹뿐만 아니라 초•재선 의원들을 만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다. 의원들의 불만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조만간 의원총회를 열어 총의를 모으는 절차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반대하는 이학영 의원이 '조건부 동의'를 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이 의원 측은 지난 17일 금융위에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주택담보대출 영업 금지 및 기업대출 제한 등 부대 조건을 달면 이를 수락하겠다고 했다. 다만 함께 논의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 대상을 중소기업에 한정하자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 의원은 두 사안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대기업 특혜'라는 측면에서 조건부 수락 의견을 일단 낸 것이다. 다만 금융위와 대다수의 정무위원은 기촉법 대상 기업을 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의 제안이 오히려 법안 통과 논의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 자산 10조원 이상 ICT기업도 예외허용


23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과 관련, 이 같은 예외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앞서 금융위가 국회에 제출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에 관한 은행법상 규제(4%, 의결권 없으면 10%)를 34%나 50%로 완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또 자산 10조원이 넘는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대상 대기업 집단에 대해선 개인 총수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지분 보유한도 상향 특례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재벌그룹의 인터넷전문은행 참여를 제한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번에 금융위는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더라도 ICT가 주력인 기업집단을 예외로 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렇게 되면 자산 5조원 이상 ICT 전업 기업인 카카오(8조5000억원), 네이버(7조1000억원), 넥슨(6조7000억), 넷마블(5조7000억원)은 은산분리 완화 수혜 대상이 된다. 현재 자산 10조원을 이미 넘는 ICT 기업인 KT도 예외 적용을 받아 은산분리 완화 대상이 된다. 다만 KT는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때문에 지분율 10%를 넘기는데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카카오에게 은행을 주기 위해 꼼수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측은 "당초 재벌은 안 된다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총수있는 재벌만 안된다고 말을 바꾸더니, 이제는 총수있는 재벌은 안 되지만, ICT 기업이라면 괜찮다고 말을 또 바꾼 것"이라며 "어떤 분류를 'ICT 기업'의 정의로 채택하는가에 따라 허용되는 업종이 상당히 변화한다"고 지적했다.


■ "핀테크육성 위해 은산분리 완화돼야"


이날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주관으로 'IT산업 종사자의 눈으로보는 인터넷전문은행과 은행업 경영촉진'을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김대윤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은 IT기업이 주축이된 새로운 형태의 금융기관들을 키우는 것은 핀테크 산업육성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현재 카카오페이는 사업한 지 1년이 안됐지만 벌써 2100만 계좌가 개설된 가운데 10대•20대 결제정보를 모으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한 씬파일러 대출 및 소액대출 시장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며 "이에따른 핀테크 업체들의 협업기회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핀테크연합회 홍준영 의장은 "이번 규제 완화로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된 네이버, 넥슨, 넷마블 등의 기업은 이미 성장한 기업들이다"며 "당국이 잠재적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대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2의 카카오뱅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네이버나 넥슨 등이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 고객정보를 공유해주는 등 후발 유니콘을 집중 육성할 수 있는 정책이 추진돼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여야는 24일 법안소위, 27일 정무위 전체회의, 30일 국회 본회의를 거쳐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