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이 규제를 푸느니 차라리 새판을 짜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22일 서울 학여울역 세텍(SETEC)에서 열린 ‘2018 블록페스타’에서

                      '금융규제 혁신'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블록미디어


 파이낸셜뉴스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22일 서울 학여울역 세텍(SETEC)에서 열린 '2018 블록페스타' 기조연설을 통해 "핀테크의 핵심은 빅데이터 활용"이라며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는 법제를 하나로 통합해 비식별 개인정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전 위원장은 또 금융당국의 소통을 거듭 당부했다. 그는 "핀테크 데모데이(사업발표회)에도 가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접하고 창업가들과 만나야 한다"며 "정부는 핀테크 업체들이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통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자금지원 체계 등 인프라 조성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금융정책 수장에서 물러난 임 전 위원장은 당시 임기동안 '절절포(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를 기치로 내걸고 금융규제 개혁을 독려했었다.


■기존 규제가 혁신 가로막아


그는 "불특정 다수의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은 규제산업으로 자리매김해왔다"며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핀테크가 급성장하면서 규제혁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고 진단했다. 즉 금융 서비스에 빅데이터와 머신러닝(기계학습) 등 인공지능(AI), 블록체인이 접목되면서 기존 규제와 법·제도를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 하지만 여전히 금융 산업은 거미줄처럼 규제가 얽혀 있다. 이와 관련 임 전 위원장은 "2013년 카드정보 유출과 같은 금융권 사고를 비롯해 기존 은행, 증권, 보험업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로 인해 금융 규제혁신이 어려운 것"이며 "특히 금융을 산업이 아닌 공공재로 보는 당국의 인식이 시장에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AI와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 서비스 경쟁력을 좌우하는 '테크핀(첨단 기술 기반 금융) 시대'가 다가왔다. 앞서 지난 3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전 세계는 전통적인 경제의 종말을 인지해야 한다"며 "블록체인·암호화폐 금지가 아닌 규제 절차를 통해 우리 사회에 도입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당국은 '심판'이 아닌 '코치'가 돼야


게다가 테크핀 혁신 속도는 날로 빨라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임 전 위원장은 "매번 작고 작은 규제들을 건건이 풀고자 하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복잡하다"며 "새로운 틀과 프레임에서 핀테크 규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강조한 핵심 키워드는 △핀테크 업체의 금융시장 진입 장벽 완화 △국회에 상정돼 있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통과 △금융 테스트베드(시험대) 구축이다.


임 전 위원장은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테스트를 실시한 뒤, 검증된 서비스는 시장안착을 적극 지원하는 내용의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이 하루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새로운 핀테크 업체들이 준비하는 서비스에 대해 금융당국이 사전에 면허와 승인을 할 수 있는 '비조치 의견서' 발급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금융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이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중간에 덜컥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갑자기 '승인 불허' 등으로 넘어뜨리지 말고, 창업 초기 아이디어를 사전에 검토한 뒤 승인을 내주는 '비조치 의견서' 발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금융당국은 '심판'이 아니라 '코치' 역할을 해야 하는 셈이다.


임 전 위원장은 특히 블록체인이 일으킬 '테크핀 혁신'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분산장부 등을 통해 보안과 투명성 등을 갖춘 블록체인은 결제·송금, 증권거래, 무역금융 전반에 핀테크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며 "금융사,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 업체, 정부 간 협의 기능 등을 활성화해 금융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혁신 리스크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블록체인은 요술 방망이가 아니다"라며 "기술 한계와 관련 리스크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개선하면서 시장과 수요자 신뢰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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