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통사들, 삼성의 건재에도 가격경쟁력의 화웨이에 미련

미국과 호주에 이어 일본 정부가 정부 차원의 정보 시스템을 도입할 때 중국 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나 ZTE(중신통신)를 입찰에서 제외키로 했다고 26일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산케이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입찰 제외 방식이나 대상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며 “입찰 참가자격의 정보보안 기준을 엄격하게 바꿔 중국 업체들의 참가를 막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산케이는 “정부의 정보보안 기준에 중국이나 이들 업체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보안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규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국 회사들을) 공적 조달에서 제외한다면 민간 부문도 이런 지침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3월 5G의 상용화를 앞두고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5세대(G) 통신장비 업체 선정이 다음달로 다가왔다.




■ 국제 공조에 역행하는 한국 이통사들


현재 통신사마다 5G 장비업체들의 성능을 검증하고 있으며 최종 장비 선택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그동안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화웨이 등 4개 업체가 경쟁을 펼쳐 왔다. 특히 이번 5G는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상징성 때문에 글로벌 장비업체들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다. 국내 LTE(4G) 장비 점유율은 삼성전자(40%)가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노키아(20%), 에릭슨(20%), 화웨이(10%)가 뒤를 잇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이전 LTE에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 만큼 이번 5G에서도 같은 장비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유플러스는 LTE를 구축할 때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서울•수도권 북부•강원 지역에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했다. 또한 삼성전자(충청•전라), 에릭슨(충청•전라•강원), 노키아(경상•수도권 남부) 등 4개 장비업체를 모두 선정했다.


SK텔레콤과 KT는 권역별로 삼성, 에릭슨, 노키아 등 3개사 LTE 장비를 사용했다. 당초 이번 5G 장비에선 화웨이 장비를 일부 사용할 것으로 점쳐졌다. LTE 후발 주자였던 것과 달리 5G에선 화웨이가 가격과 품질 모두 세계 최고라는 평가 때문이다. 그동안 '가성비'만을 앞세웠던 화웨이는 이제 품질 면에서도 경쟁사보다 우월하다는 평가가 업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글로벌 1위를 달리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경쟁사 장비 대비 가격이 20~30% 싼 것은 물론이고 품질과 효율성 면에서도 월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5G 상용화 초기에는 통신망이 LTE•5G 복합표준 NSA 형태로 구축되기 때문에 기존 LTE망 구축 당시 선정됐던 장비업체를 대거 교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5G 초기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LTE와 연동하는 방식을 쓸 수밖에 없어 업체가 바뀌면 구축 비용과 시간이 늘어난다.


■ 호주는 왜 중국 제품들을 거부했나?


하지만 통신사들 입장에서 볼 때 가격과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외교적 부담이다. 호주 정부는 최근 중국산 5G 장비 도입을 원천 봉쇄하기로 했다. 호주는 "외국 정부 지시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공급업체는 5G 통신망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겠다"며 사실상 중국 화웨이와 ZTE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미 미국에선 중국 기업 제품이 정부 조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기술력, 가격, 품질 등은 물론 정치, 외교, 안보적 배경까지 작용하면서 국내 5G 장비 선정도 풀기 힘든 고차원 방정식이 되고 있다. 과거 LG유플러스가 서울에 화웨이 LTE망을 구축할 때도 미군 부대가 위치한 지역은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업체를 선정할 때 뒤따를 여론의 비난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도 한국이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따놓고도 화웨이 배만 불릴 것이란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KT 고위 관계자는 "가격만 따져서 화웨이 장비를 선택하기에는 따라올 부담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이라며 "KT는 물론 SK텔레콤도 화웨이 장비를 채택하기 쉽지 않은 상태"라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 중국에 뒤지지 않는 삼성 기술력


 삼성은 지난달 국내 5G 주파수인 3.5㎓와 28㎓ 대역을 지원하는 장비를 처음으로 공개하며 기술력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5G는 저주파수 3.5㎓와 고주파 28㎓ 대역으로 서비스되는데 주력망은 3.5㎓다. 삼성은 그동안 28㎓ 대역에 집중 투자해 오면서 3.5㎓에선 화웨이에 밀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김영기 삼성 네트워크사업부장(사장)은 "3.5㎓보다 28㎓ 장비가 더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이라며 기술력에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IHS마킷에 따르면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1위는 화웨이다. 에릭슨, 노키아가 뒤를 잇고 삼성은 ZTE에 이어 세계 5위 업체다. 5G 장비 선정은 삼성으로서도 크게 뒤처진 점유율을 역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최근 삼성은 세계 최초로 5G 기술을 활용한 고정형 초고속 인터넷(FWA) 서비스 통신장비를 미국 버라이즌에 공급했으며 연내 상용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화웨이는 여전히 우월한 성능과 매력적인 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이 제기하는 장비 보안 문제도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는 것이 화웨이 측 주장이다. 실제 LG유플러스 LTE망에 장착된 화웨이 장비에서 보안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정책위원은 "확인되지 않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품질 좋은 제품을 외면한다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며 "중국산이라고 무조건 배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호주 이어 일본이 동참한 이유는?


일본 정부가 중국 업체에 대한 입찰참여를 원천 봉쇄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정보유출 우려다. 미국과 호주 등에서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에 대해 정보유출 우려로 도입 거부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를 간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산케이도 미국과 호주 등 우방국이 안보를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며 이들 기업의 제품 사용과 사업 참여를 막는 조처를 실행하는 만큼 일본도 동참해 보조를 맞추려는 의도로 이 같은 방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모든 정부기관에 화웨이와 ZTE의 제품 사용을 금지했고 호주 정부도 5세대(5G) 이동통신사업에 이들 업체의 참가를 못하게 한 바 있다.


다만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정부 부처 내부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 분위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중일 평화우호조약’ 발효 4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말 중국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회사들을 입찰에서 제외하는 것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내외 무차별 원칙’에 저촉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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