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상장사 지분율 30%땐 80조~90조 막대한 비용 들어

대기업집단 규제 대상 기준이 현행 자산총액 10조원에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으로 바뀐다. 기업 결합 신고 기준은 강화돼 자산총액•매출액 기준(300억원)에 미달해도 거래 규모가 크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26일 이 같은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입법 예고했다고 밝혔다. 대기업 집단 기준을 GDP에 연동한 것은 고정된 자산총액 기준이 기업수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과잉규제’로 이어진다는 재계의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이 기준의 시행 시기는 GDP의 0.5%가 10조원을 넘어서는 해의 다음 해부터다 적용된다.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2023∼2024년으로 예상된다.


기업결합 신고기준에 거래규모를 도입한 것은 해외 정보기술(IT)기업을 겨냥한 것이다. 다국적 IT기업의 경우 M&A시 국내매출액이 작다는 이유로 기업결합 신고에서 제외돼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2014년 글로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 기업 왓츠앱을 24조원에 인수했지만, 국내 매출액이 작아 국내에서는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거래규모를 기업결합 신고 기준으로 설정하면 이런 사각지대가 일정 부분 해소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 법원의 판사 역할을 하는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 중 비상임위원 4명은 모두 상임으로 전환된다. 상임으로 전환되는 4명의 위원은 공무원이 아닌 대한변호사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소비자단체협의회가 각각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로 임명된다.


사건의 처분 시효도 최장 12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조사권한을 남용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다만, 사건조사 소요 시간이 긴 담합 사건은 12년으로 유지된다. 한편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태스크포스(TF)가 제안했던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기준을 시장점유율 50%에서 40%로 강화하는 방안은 개정안에 포함하지 않았다. 김상조 위원장은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을 조정하는 것은 이론적 근거뿐 아니라 실증적 판단 기준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 금융•보험사 계열사 합병 의결권 제한 '삼성 타깃 논란'…일감몰아주기 규제 607개로 늘어


정부가 38년 만에 내놓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 중 일감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기준 강화와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합병에 관한 의결권 제한 등은 앞으로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거래법 개선 특별위원회'가 권고한 법안과 비교했을 때 재벌개혁안이 대부분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일감몰아주기와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합병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권고안을 유지했다. 특히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합병은 삼성만 타깃으로 하는 법안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도 있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되는 회사의 총수 일가 지분기준을 상장 30%, 비상장 20%에서 상장•비상장 모두 20%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또 이들 기업이 지분을 50%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된다. 기준이 강화되면 규제대상 기업이 지금(231개)보다 2배 이상 늘어난 607개가 된다.


특히 총수 일가 지분이 30% 미만인 삼성생명(20.82%), 현대차 계열 이노션(29.99%)과 현대글로비스(29.99%) 등이 규제대상에 포함된다. 해당 기업들이 규제에서 벗어나려면 20%를 초과하는 총수 일가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기업이 50%를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한 회사 역시 규제대상에 편입되면 삼성물산의 급식사업체인 삼성웰스토리와 LG CNS, 서브원 등도 규제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 일감몰아주기 규제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경영계의 문제 제기다. 일감몰아주기로

총수 일가가 부당한 이익을 챙겼을 때만 처벌이 되는데 이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한진그룹의 일감몰아주기와 관련, 제재를 내렸지만 법원 판결에서 공정위가 패소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공정위는 또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와 무관한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간 합병은 예외적 의결권 행사 사유에서 제외했다. 원칙적으로 금융•보험사는 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지만 임원 선임, 합병양도 등 예외적인 경우는 특수관계인과 합쳐 15%까지 의결권을 가능하게 했다. 개정안에 계열사 합병을 제외하면서 삼성만 겨냥한 조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몇 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보험 계열사가 의결권을 행사한 경험이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금산분리 규제의 합리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공정거래법뿐 아니라 금융 관련법 등의 여러 법률들의 합리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이제 시장과 주주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그룹•조직의 변화, 계열사 분할•합병 등의 과정은 점점 추진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 전속고발권 폐지, 과징금 상한 2배 상향


이미 발표한 가격담합, 입찰담합 등 담합사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경성담합의 전속고발권 폐지안도 담겼다. 또 피해자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위법행위의 중지를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 청구제'도 도입해 민사적 구제수단을 확충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1년에 4000건의 신고사건, 5만건의 민원, 시정명령 이상의 조치가 이뤄진 사건 500건을 공정위가 1년에 처리한다"며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그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위에 집중된 사건처리 부담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행정적 실효성 제고를 위해 과징금 상한을 일률적으로 2배 상향했다.


혁신성장을 위해 벤처지주회사 제도도 도입된다. 벤처지주회사의 자산총액 요건인 5000억원을 시행령 개정으로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또 벤처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요건은 현행 20%를 유지하되 기존 지주회사가 벤처지주회사를 자•손자회사 단계에서 설립하는 경우 자회사 지분보유 특례를 적용하기로 했다. 자회사 단계에서 설립할 때는 상장•비상장 모두 20%이고 손자회사 단계에서는 상장•비상장 50%의 지분을 보유하면 된다.


법집행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 사건의 처분 시효를 현행 최장 12년에서 7년으로 단축한다. 다만 담합사건인 경우에는 사건 처리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7년, 사건조사 개시일로부터 5년인 현행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 현대차, 글로비스 등 지분 줄여야… 공익재단, 지분율≠의결권


공정거래위원회가 38년 만에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각 대기업별 대응책 마련이 불가피해졌다. 공정위가 발표한 이번 개정안은 앞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논의결과에 비해 완화된 안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각 사안과 기업에 따라 직격탄을 맞은 곳들도 적지 않다.


26일 공정위가 발표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공익법인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상장사에 한해 특수관계인 합산 15%까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다만 공정위는 규제준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2년의 유예기간 부여 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행사한도를 축소하기로 했다.


현재 삼성, 현대차, SK 등 국내 대기업집단 소속 165개 공익법인의 자산구성 중 주식 비중(평균 21.8%)은 일반 공익법인(5.5%)의 4배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그룹의 주력회사, 상장사, 총수 2세 주식 보유 회사, 자산규모 1조원 이상 회사 등과 관련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면서 찬성 의결권을 행사해왔다. 총수일가의 '거수기' 역할을 대행해줬던 공익법인이 더는 제 몫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삼성 소속 공익법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삼성물산 200만주를 매입하면서 총 주식의 1.05%를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향후 해당 주식의 의결권이 사라지게 된다. 지난해 10월 기준 각 그룹 공익재단의 주요 상장사 주식소유현황을 보면 삼성그룹 삼성문화재단(삼성생명 4.69%, 삼성화재 2.87%), 현대차그룹 현대차정몽구재단(이노션 9.00%, 현대글로비스 4.46%), SK그룹 한국고등교육재단(SK케미칼 1.08%), LG그룹 엘지연암학원(㈜LG 2.13%) 등이다.


또 상장•비상장 구분없이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이면 일감몰아주기 대상기업으로 일원화하기로 결정하면서 현대차그룹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광고와 물류를 담당하는 이노션과 현대글로비스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현재 각 29.99%씩이다.


두 회사의 특성상 내부거래가 불가피했던 탓에 현대차그룹은 2014년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총수일가 지분율이 규제기준(30%)보다 높던 이노션(80%)과 글로비스(43.4%)의 지분을 30% 아래까지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또다시 20% 밑으로 낮춰야 하게 됐다. 특히 지금까지 대기업들은 내부거래 대상 기업에 대한 총수일가 지분율을 낮추는 방법으로 공익재단을 활용해왔다. 매각 대신 공익재단에 지분을 기부하는 방식을 써서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피하면서 지배력은 유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익법인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앞으로는 이 방법조차 어렵게 됐다.


■ 지주사, 자회사 지분율 두고 한숨 돌린 SK•롯데


다만 지주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은 앞서 특별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새로 설립되는 지주회사(기준 지주회사가 새로 편입하는 자회사•손자회사 포함)에 한해 상향하기로 했다.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50%다. 공정위는 기존 지주사는 세법상 규율을 통해 자발적인 상향을 유도할 계획이다.


덕분에 SK가 한숨을 돌렸다. SK텔레콤에 대한 SK(주)의 지분율이 25.22%, SK하이닉스에 대한 SK텔레콤의 지분율이 20.07%이기 때문이다. 만약 공정위가 기존 지주회사까지 모두 지분율을 30%(비상장사는 50%)까지 맞추라고 했다면 SK는 7조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롯데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롯데지주는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 롯데지주의 롯데푸드(상장사)와 롯데상사(비상장사) 지분율도 각각 22.1%, 41.4%다. 지주사 규제가 강화됐다면 롯데지주는 두 회사 지분을 추가 취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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