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막힌 은산분리 완화법, 일부 의원들 “은행이 재벌 사금고”

8월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이었던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은산분리 규제 완화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 처리가 30일 결국 무산됐다. 당초 8월 임시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규제프리존 및 지역특구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을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날 본회의를 열어 37개의 비쟁점 법안만을 처리한 여야는 규제개혁 법안의 9월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추가 협상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원만히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상임위별로 법안들에 대한 충분한 협의가 뒷받침되지 못해 부득이 본회의 처리가 어렵다”면서 추가 협상을 통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규제개혁 관련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전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께 면목이 없다”며 “오늘 꼭 통과시키고 싶었는데 결국은 못해서 국민들께 대단히 송구하다”고 말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들과 정책위의장은 이날 회동을 갖고 합의 도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가장 큰 쟁점인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의 경우 지분보유 완화 대상 등을 놓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홍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의견 수렴과 당론 결정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후 정책 의원총회를) 필요하면 하겠다”고 했다.


규제개혁 법안들도 산업융합촉진법과 정보통신융합법만 소관 상임위 소위를 통과했을 뿐 행정규제기본법•지역특구법•금융혁신지원특별법은 여야 대립으로 진척이 없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규제프리존 및 지역특구법은 상임위에서 협의 중인데 커다란 쟁점이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각 당 지도부는 큰 공감대를 이뤘지만 상임위 차원에서 공감이 부족했다. 시간만 주어지면 충분히 합의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핵심 쟁점이었던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기한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데 여야가 합의했으나 9월 정기국회에서 다른 규제개혁 관련 법안과 ‘패키지 처리’될 예정이다.


 홍 원내대표는 “대표적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경우 늦어지면 하루하루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면서 “기촉법도 중소기업들이 기다리는 법안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감안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7일 19세기 영국의 규제 법안인 ‘붉은 깃발법’을 언급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며 국회 처리를 요청했다. 이후 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는 16일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등의 8월 국회 처리에 합의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29일 의원총회에서 강경파가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반발하면서 당론 채택에 실패했다. 당 원내지도부는 물론이고 청와대 참모들까지 나서 법안 처리 협조를 당부했지만 강경파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규제 개혁 패키지로 묶어 함께 처리하기로 했던 임대차보호법 등 다른 법안도 본회의 통과가 연기됐다. 처리 불발 후 홍 원내대표는 “면목이 없다”며 “야당과 협의해야 할 부분도 있고 당내 이견을 조정할 시간도 필요하다. 의원총회를 열고 당론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8월 임시국회에서 민생•개혁 입법이 전부 무산된 배경의 핵심에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둘러싼 여당 내 갈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뒤집어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부터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발했다.


 20일 열린 국회에서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의총)에서 박용진•제윤경 의원 등은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될 것”이라며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박영선 의원은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25%로 하는 법안을 따로 발의했다. 29일 열린 정책 의총에서도 반대 목소리는 여전했다.

대통령의 ‘규제혁신 1호 법안’이 여당 내 갈등으로 흔들리자 다른 민생•개혁 법안의 대(對) 야당 협상력도 떨어졌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심사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재호 의원은 30일 “오늘 여야 원내대표 협상때까지도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야당과 협상할 여당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산업융합촉진법•정보통신융합법은 해당 상임위에서 이미 합의를 끝냈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여야가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여야가 8월 임시국회 전에 “패키지로 일괄 처리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전부 처리되지 않았다. 이로써 8월 임시국회의 민생•개혁 입법 성적은 ‘0점’이 됐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민생•개혁 법안 처리를 당부했는데 여당 내 이견 때문에 법안 처리가 실패했기 때문에 후폭풍은 클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3축 중 하나인 혁신 성장이 시작부터 발목 잡힌 꼴이 됐다. 또 이번 당내 갈등이 계파 갈등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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