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 평양공동선언 환영...대북제재와 상관없는 도로 철도 등에서 각자 건설부터


                                                        공동사진취재단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경협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완화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가운데 양국정상이 공개적으로 적극적인 경제협력을 천명,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첫 문을 여느냐도 중요하지만 일단 사전정지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물론 도로 철도 건설 등 주로 인프라에 비중을 두고 있음에도 확산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돼 관련 기업들도 향후 진전 상황에 예의 주시하는 모습니다.


이와 관련해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을 발표에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한반도의 평화 시대를 위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 남북 경협을 위한 논의가 있었던 것에 의의가 있으며 향후 북미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진전들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계는 경협의 조건이 조기에 성숙되기를 기대하며 이에 대비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계는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인 '9월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며 "이번 선언이 남과 북의 상호호혜 및 교류와 협력을 증진해 나가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어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정부의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을 실현하는 역사적 이정표이자 한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면서 "앞으로 '전경련 남북경제교류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우리 정부의 한반도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경제계의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해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한반도 평화와 새로운 남북 경제협력 시대로 도약을 알리는 평양공동선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경총은 "이번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 간 경제교류 인프라가 구축되고 개성공단 재가동, 서해경제공동특구 조성 등을 통해 기대되는 남북 경제 발전과 공동번영에 경총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 역시 "남북 정상이 군사적 긴장 완화 및 비핵화를 위한 진일보한 조치를 마련하고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드는 데 합의한 것에 큰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무역협회는 "특히 이번에 북측의 구체적인 비핵화 계획이 제시된 만큼 교착 상태에 빠져있는 북미 관계가 이른 시일 내 개선되기를 희망하며, 아울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해제돼 남북 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교류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역협회는 앞으로 평양공동선언 합의 내용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무역업계 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남북 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경제협력(경협) 구상인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해제하기 이전에도 각자가 경협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후 제재 해제 수준에 발맞춰 진행이 가능한 경협 사업부터 속도를 낸다는 게 핵심이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미•북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19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공동선언에 포함한 남북경협 구상은 철저히 북한 비핵화에 따른 국제사회 대북 제재 해제 수준과 연동된다"며 "제재 해제 단계별로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우리 정부가 완성했다"고 밝혔다.


남북경협 1단계는 대북 제재와 상관없이 진행할 수 있는 모든 사업을 담았다. 핵심은 경협에 필요한 사전 연구를 진행하고, 철도•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를 남북한이 따로 건설하는 것이다.


연구사업은 이미 시작됐다. 철도는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이 남•북•중•러 철도 물류 인프라 구축과 운영 방안 연구를, 전력 분야는 한국전력이 남북 간 서로 다른 송전선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이번 평양공동선언은 철도•도로 연결과 관련해 '연내 착공'이라고 시점을 명시했다. 국토교통부는 동해선 철도 단절 구간인 강릉~제진(104.6㎞) 구간 건설(총사업비 2조3490억원 추산)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의선 철도는 남측이 이미 2007년 개성까지 연결했지만 북측 선로 현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도로 연결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북측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는 도로를 현대화하고 이를 이미 차량이 통행하고 있는 남측 문산에서 개성 구간과 연결하는 사업을 연내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묘장 현대화, 임농 복합경영, 산불방지 공동 대응 사업 등 남북 산림협력도 속도를 낸다. 다만 단순히 공동 연구 차원이 아니라 남측 묘목과 장비가 올라가는 본격적인 조림사업은 관련 대북 제재 해제 이후 추진될 전망이다. 경협 2단계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도입한 북한산 제품•농수산물 수입 금지,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대북 금융거래 금지 등이 해제되면 진행한다.


이 경우 평양공동선언에서 '서해경제공동특구'로 표현한 서해 공동 어로사업을 우선 추진한다. 1991년부터 수협중앙회가 추진했던 이 사업은 서해5도 인근에 '평화수역'을 만들어 우리 측에서는 어선과 자재를, 북측에서는 선원을 제공해 공동 조업으로 이익을 창출하자는 구상이다. 북한 수산물 수출을 금지한 유엔 제재 등이 풀려야 가능하지만 이미 실무 논의를 시작한 상태다.


노동자•금융거래와 관련한 유엔•미국 제재가 해제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재개할 수 있다. 2016년 중단 당시 1단계 개발 수준에 머물렀던 개성공단이 확장되면 미국과 중국 등 국제 자본 유치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 금강산관광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새롭게 등장한 표현인 '동해관광공동특구' 사업의 일환으로 재개할 전망이다. 이미 강원도 등은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북측 원산 갈마지구를 비롯해 기존 금강산특구를 남측 설악산과 연계하는 관광상품을 속초항•양양국제공항 등을 통해 오갈 수 있는 경협 구상을 선보인 바 있다.


이 밖에도 남측 접경지역에 북한 근로자들이 내려와 일할 수 있는 산업단지를 만드는 '통일경제특구' 구상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경협 3단계는 미•북 수교 단계에 이르러 국제사회가 거의 모든 대북 제재를 풀 때를 상정한 것이다. 현재 바세나르협정 등 국제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는 컴퓨터나 공작기계 같은 첨단 장비의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미•북 수교 단계에 이르러 미국이 국내법상 모든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국제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도 풀리면 평양ICT 특구, 단천자원개발 특구에 국내 기업이 투자하는 게 가능해질 전망이다. 북한이 미국 승인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면 세계은행(WB)과 같은 국제투자은행의 대북 투자도 가능해진다.


정부도 곧바로 경제협력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전북 군산 고용위기종합지원센터를 방문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 경제협력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남북 경협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협력도 필요하고 북한 제재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해 말 발간한 '남북한 경제통합 분석모형 구축과 성장 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추진 또는 검토해온 남북경협 사업을 통해 30년간 남측에 170조원, 북측에 250조원 규모 경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추산했다. 분야별로 남측은 개성공단사업 경제 효과가 159조2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금강산사업•단천 지하자원개발(각각 4조1000억원), 조선협력단지(2조6000억원), 철도•도로연결(1조6000억원) 순으로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북측은 사회간접자본(SOC)인 철도•도로 연결 효과가 92조6000억원으로 가장 크게 나타났다.


남북 간 전쟁 위협 종식 선언으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양 날개가 달릴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접경 및 해상지역의 남북 간 협력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평양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금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하였다”며 연내로 시한을 못박았다. 또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른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우선 정상화 및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협의”를 담았다. 철도•도로 연결 시한을 확정한 것은 정부가 ‘대륙 진출’을 위한 철도•도로 연결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그리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한반도 서해안 축과 동해안 축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로 진출하고, 휴전선 부근에서 두 축을 연결해 경제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이다. 철도•도로 연결은 정부가 3•1절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 기차를 이용해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서두르는 측면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6년),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2008년)으로 중단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문제를 이번 정상 선언에 담은 점도 주요한 결과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그동안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다. 하지만 이번 평양선언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경협의 우선 과제로 꼽아 향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논의를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을 당장 재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도 “이번 합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북은 2032년 여름 올림픽의 공동 유치를 위해 노력하기로 명시했다.


남북이 이날 진전된 경협 합의를 내놓았지만 넘어야 할 과제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대북제재의 벽을 넘어야 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와 2094호는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벌크 캐시(bulk cash•대량 현금)의 대북 유입을 금지하고 있다. 안보리 결의 2397호는 철도•궤도용 기관차, 신호 설비, 차량 등 품목의 대북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없이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경우 철도•도로 연결 공사에 나서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게 된다.


정부는 지난달 하순 남측의 철도 기관차와 차량을 이용해 북한 지역의 철도와 도로 환경을 조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엔군사령부가 휴전선 통과를 불허해 연기됐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때(착공식)까지 (대북제재를)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기보다는 현재 시점에서 일을 끌어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현한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켜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하거나, 예외조항으로 인정받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내 착공식을 못박은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그때까지 풀리지 않으면 정부는 제재를 위반하지 말라는 미국과, 정상 간의 약속을 지키라는 북한 사이에 끼이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또 북한이 북한 지역 내 철도•도로 현대화를 요구할 경우 대북제재 위반 논란을 떠나 조사와 설계 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술적으로 앞으로 3달여 남은 기간 동안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물론 북한의 철도•도로 현대화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대규모 남북 경협사업이라 국내 여론의 설득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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