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망치는 유지, 일은 상향


                                                     리카르도 IMF 총재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8%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6%로 각각 낮췄다. 내년 전망치 2.6%는 2012년(2.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 내린 2.7%로 제시한 바 있다. 반면 IMF는 세계 경제 양대 대국인 미국(2.9%), 중국(6.6%)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그대로 유지했고, 우리나라의 주요 경쟁국인 일본에 대해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0%에서 1.1%로 상향 조정했다.


IMF는 9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이같이 수정 전망했다.


IMF의 한국 성장률 전망은 올해 2월 한국 정부와 연례협의보고서에서 발표한 이후 8개월 만이다. 올해 7월 IMF가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는 한국이 포함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런 내용을 담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등이 세계경제의 위험 요인"이라고 했다. IMF는 이날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이유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성장의 대부분을 수출에 의존하고 금융시장 개방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글로벌 무역 분쟁과 금융 불안의 타격을 크게 받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펀더멘털이 취약한 신흥국 중심으로 가시화하는 자본 유출 우려도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IMF는 보고서에 한국에 대한 개별적인 정책 권고는 담지 않았다.


다만 개별국가에 국가별 경기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재정 여력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상품•노동시장의 구조 개혁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자 정책으로는 규칙에 기반한 다자 무역 시스템 수립, 금융 규제개혁의 공조, 사이버 안보 강화 등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IMF는 올해와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을 각각 7월(3.9%)보다 0.2%포인트 낮은 3.7%로 전망했다.
성장률 전망치는 낮췄지만 전반적인 경기 호조세는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고서는 또 "2016년 중반부터 시작된 경기 확장세가 지속하고 있으며 2018∼2019년 성장률도 2010∼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지역별로 호조세는 불균등(less balanced)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중기 성장률도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선진국 성장률 전망은 7월과 같은 2.4%를 유지했고 내년 전망은 2.2%에서 2.1%로 내려 잡았다.


미국 올해 성장률은 2.9%를 유지했지만 유로존은 상반기 실적 저조로 2.2%에서 2.0%로 하향 조정됐다.


신흥개도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은 4.9%에서 4.7%로 하향 조정됐다. 내년 전망은 긴축적 금융여건 등으로 5.1%에서 4.7%로 다소 큰 폭으로 내려 잡았다


이처럼 국내외 주요 기관이 한국에 대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하향 조정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3%대의 성장을 예상했다.
   
국내 전망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오는 18일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8%로 내릴 게 유력하다. 지난 7월 당시 전망치를 3.0%에서 2.9%로 낮춘 데 이어 3개월 만에 다시 내리는 것이다. 정부가 내심 기대하던 3% 경제성장률은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위험요인과 대외 불안요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시적으로는 한국 주력 산업의 부진이 심각하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철강•중공업•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 대표 기업들의 상반기 이익은 전년에 비해 줄었다. 수출 역시 반도체를 빼면 증가세가 미미하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주력 산업들이 고령화하며 투자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미래성장사업 발굴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시적으로는 최악의 고용 상황과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내수 부진에서 벗어날 방도가 마땅찮다. 여기에 국제유가 등 상품 가격은 오르면서 교역 조건이 나빠지고 금리 상승, 미•중 통상전쟁으로 무역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점도 한국 경제에 짐을 지우고 있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하강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같은 비용 충격을 가하다 보니 지표가 좋게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며 “소비가 그나마 괜찮아 보이지만 상당 부분이 해외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소비를 중심으로 늘고 있어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경기 선행지표인 설비투자는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긴 감소세다. 세계 경기의 확장세가 주춤하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증가세가 꺾이고, 그 여파로 설비투자가 감소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주요 기관들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펴낸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우리 경제는 수출과 소비 중심의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부터 10개월 연속으로 ‘회복세’라는 진단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이는 민간 경제연구소와 경제학계의 우려와는 다른 목소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3.1% 성장했던 한국 경제가 내년부터 2%대 저성장 흐름이 굳어지면서 구조적인 장기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홍준표•정민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는 투자 위축, 소비 부진의 장기화가 예상되며 노동 투입 축소, 노동생산성 정체 등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관련해 모 교수는 “설비투자는 반도체 설비투자가 대부분 끝나서 여력이 없고, 건설투자는 마이너스가 이어지고 있다”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장률을 끌어올린다고 단기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기업의 투자를 북돋우고, 해외로 나가는 돈을 국내에 쓰게 만드는 식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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