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스브티닷컴


기술의 발전을 법률이 따라가지 못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는 어떻게 해야할까. 기존의 법과 윤리를 내세우면 ‘규제가 기술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이를 내버려두면 ‘정부가 위험한 기술을 방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8일 서울 서린동 서울글로벌센터에서 개최한 ‘제2회 국가생명윤리포럼’에서 김현철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2년 생명윤리법이 전면 개정됐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행법에서는 윤리적 쟁점을 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를 다룰 수조차 없고 많은 사회적 비용만 소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생명윤리법 개정을 통해 여러 분야에서 규제가 사라졌으나 여전히 미흡하다는 설명이다.


보건복지부는 ‘4차 산업혁명과 생명윤리’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9차례에 걸쳐 유전자편집, 인공지능 등 미래기술의 윤리적 문제를 검토해왔다.


생명윤리법의 큰 틀을 규제와 제한에서 지원과 육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연수 충남대 신약전문대학원 교수는 “생명윤리법은 장기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뀌어야 한다”며 “생명윤리법 개정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되 업계가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으로 제한된 유전자정보 접근권과 의료정보 활용권을 학계과 산업계로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는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우리나라 생명윤리법도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며 “질병 진단과 치료를 위한 유전자검사의 권한을 기존 의료기관에서 바이오제약기업으로 확대하는 것 역시 의료복지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명과학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개방성을 강화하되 제도적 장치로 부작용을 차단하면 된다는 얘기다. 


반면 의료계와 종교계는 생명윤리법 개정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생명윤리법의 특성을 고려할 때 섣부른 개정은 심각한 사회적 논란과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재우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은 “생명과학 분야를 인간의 생명과 인격을 도외시한 채 산업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공동체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며 “‘맞춤형 아기’ 같은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논쟁 중인 만큼 생명윤리법 개정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신중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은 “현행 생명윤리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생명과학 기술의 활용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마련하려면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규제의 필요성이 논의돼야 한다”며 “올바르게 개인의 생명과학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지침과 함께 유전자정보 활용에 따른 피해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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