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혁명, 안경 이어폰 로봇 드론 등 한국은 구경꾼 전락···구글 등 CES서 화려한 비상

세계 최대 가전쇼 'CES 2018'가 열리고 있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항의 택시 승강장. 공항 벽면에 두 개의 광고판이 돌아간다. 하나는 구글 인공지능(AI) 어시스턴트 광고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불렀던 그 노래가 뭐였지"라고 물으면 구글 AI가 노래를 알아서 틀어준다고 너스레를 떤다. 또 하나는 140년 된 욕실·주방용품 제조업체 콜러(KOHLER)의 광고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욕조에 '안녕'이라고 말을 걸어보세요."
이처럼 CES 참가 기업 간 인공지능 전쟁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

올해 CES의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가 쏜살처럼 현실로 벌써 닥쳤다. 인공지능에 기반해 길찾기를 증강현실(AR)로 보여주는 알렉사 안경, 동시통역 이어폰, 인간화된 로봇, 사람이 탈 수 있는 드론 등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기술 혁명이 주춤해지기는커녕 속도가 붙으면서 미래가 더 빨라지고 있다. 구글은 그동안 글로벌 정보기술(IT) 전시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태도를 싹 바꿨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를 순환하는 모노레일에는 '헤이 구글(Hey Google)'이라고 큼지막한 로고가, 컨벤션센터 주차장에는 4층 크기 구글 전시관이 들어섰다. CES에 구글이 올해 처음 입성한 목적은 단 하나다. 인공지능 플랫폼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49달러짜리 구글 AI 스피커 홈미니는 출시 두 달 만에 640만대가 팔리는 등 구글 AI 스피커는 미국을 중심으로 벌써 수천만 대가 팔렸다. 구글이 글로벌 시장의 60%를 넘게 장악한 아마존 알렉사를 뒤쫓는 모양새다. 이는 결국 미국에선 AI 스피커와 대화하고, 상품 결제를 하고, 원격 진료를 하고, 우버 택시를 부르는 게 혁신이 아니라 이젠 누구나의 일상이 돼버렸다는 얘기다. 구글의 목표는 모바일 세상을 넘어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일반 가전기기에도 구글의 영혼을 불어넣는 것, 다시 말해 포스트 모바일 시장까지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8일 키노트 스피치에서 "우리는 바야흐로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AI, 5G 연결성, 자율주행 등의 기술 진보가 가속화하면서 인류의 일상생활과 경험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신산업이 아닌 기존 전통기업들도 AI를 적극 채택하고 있다. 콜러는 이번 CES 행사에 맞춰 인공지능 기술인 콜러 커넥트를 선보였다. 목소리만으로 샤워기 수압과 온도를 조절하고, 욕실등 밝기를 바꾸고, 욕조에 물을 받고, 비데를 작동시킨다. 주방가전에 일부 시험적으로 도입해보는 수준에서 벗어나 사업 부문 전반으로 확대하고 있다. AI는 이제 기업이 채택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이자 생존 화두로 바짝 올라섰다. 개인용 PC가 한때 주된 사업이었던 IBM은 이제 AI와 빅데이터로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올린다.  중국도 인공지능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중국 IT 기업 바이두는 이번 CES 쇼를 통해 오픈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와 대화형 인공지능 플랫폼 듀어 운영체제(OS) 출시 발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알리바바도 인공지능 스피커와 모바일 페이먼트 등에 대해 선보인다.  CES 현장에 참석한 삼성전자 관계자와 기자들간의 즉석 일문일답. "삼성 스마트홈의 미래는 TV인가, 아니면 삼성 인공지능 빅스비인가?". 삼성이 전략적 우위를 가진 가전기기를 중심으로 시장을 끌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경쟁에서 뒤처졌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개척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둘 다 아니다. 삼성은 사람을 향한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 수년간 삼성은 사물인터넷(IoT) 등 각종 기술을 접목해 냉장고 TV 에어컨 스피커 등 가전 일체를 표준화하며 연결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면서 "이른바 '원삼성'의 시작이 2018년"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빅스비만을 고집하지 않고 오픈 플랫폼을 지향하겠다는 것이었다.  LG전자는 CES 전시 주제로 독자 개발한 AI 브랜드 '씽큐'를 낙점했다. 전체 부스 중 3분의 1을 'LG 씽큐존'에 할애했을 정도다. 구글 플랫폼을 적용한 제품도 내놓는다.  또 한 가지, 이번 CES의 공식 슬로건은 스마트시티다. 느닷없이 왜 가전쇼가 스마트시티를 들고나왔을까. 그것은 스마트시티의 본질이 넓은 땅에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을 올리고, 광통신망과 모노레일을 깔면 완성되는 신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의 기반은 땅이 아니라 센서(sensor)다. 가전제품들과 IT 기기들이 집 안에서 연결되면 스마트홈이다. 짐 해킷 포드자동차 CEO는 9일 연설에서 "도시가 더 똑똑해지고 안전해지기 위해선 모빌리티 관련 솔루션이 발전해야 한다"며 "포드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받는 모빌리티 회사가 될 것"이라고 선언할 예정이다. 사막 한복판에 놓인 신도시가 아니라 바르셀로나, 코펜하겐 같은 오래된 대도시들이 스마트시티로 각광받는 세상이다.  CES 행사에 매년 참가하는 한국인 숫자만 3000명이 된다고 한다. 미국·캐나다·중국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CES 현장에서 혁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이 고작이다. 한컴그룹은 올해 첫 참가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CES 참관은 해도 '수박 겉핥기식'에 그친다. SF 작가 윌리엄 깁슨은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다만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CES에는 이미 도착한 미래가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 몰아닥칠까. 변화에 속도가 붙은 시대, 실패가 두려워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눈알만 굴린다면 10년, 아니 5년 뒤 버텨서 살아남을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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