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실명거래제가 시행된 지 10일이 넘었지만 기존 가상화폐 투자자의 실명 계좌 전환율은 한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기존 투자자는 실명 계좌로 전환하지 않아도 기존 예치금 등으로 가상화폐를 매매하고 출금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1일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9만2000명이 실명계좌로 전환했다. 지난달 30일 실명거래제 첫 날 2만여명을 감안하면 실명전환 속도가 더뎌진 것이다. 업비트 거래소 전체 가입자 수인 220만명을 감안하면 전체 가입자의 4%정도만 실명계좌로 가상화폐를 거래하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 거래소의 상황도 비슷하다. 농협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과 코인원에 가상계좌를 제공하고 있다. 두 거래소에서 실명확인 후 가상계좌가 발급된 계정은 각각 6만4000개, 1만9000개다. 빗썸 가입자(약 300만명) 중 2% 정도만 실명 전환했고 코인원의 경우도 전체 이용자의 3% 정도만 실명 인증을 받았다.


빗썸과 코빗, 아야랩스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던 신한은행은 최근 빗썸과 아야랩스에 대한 가상계좌 제공을 중단하고 코빗 거래소에 제공한 가상계좌만 실명 전환해주고 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코빗 거래소에 제공된 가상계좌 중 2만2000좌가 실명전환 절차를 마쳤다. 코빗은 가입자 수를 따로 밝히지 않고 있어 전체 가입자 중 실명거래 가입자 비율은 알려지지 않았다.


은행 관계자는 “20~30대 가상화폐 투자자가 많은 지역의 영업점은 실명 계좌를 발급 받으려는 사람들이 일부 몰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실명 전환 속도가 더딘 편”이라고 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실명거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실명 전환 없이도 기존 예치금으로 가상화폐를 사고 팔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 출금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거래실명제를 시행하면서 신규로 가상화폐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겠다고 했지만, 기존에 투입된 자금에 대해서는 명확한 방침을 내린 바 없다. 이 때문에 기존 계정에 예치금이 있는 투자자들은 신규 자금 투입만 하지 못할 뿐 가상화폐 거래는 계속 할 수 있다.


정부 규제 이후 가상화폐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것도 투자자들이 거래실명제를 외면하는 이유다. 대부분의 가상화폐 가격이 전고점 대비 60%이상 하락해 투자자들의 투자금 대부분은 가상화폐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또 기업은행은 업비트 거래소 기존 회원의 실명 계좌 전환 작업을 우선 진행하기로 하면서 업비트 거래소를 새로 이용하려는 투자자들의 신규 투자는 막혀있다. 업비트 거래소에는 알트코인 종류가 많아 업비트 거래소에서 거래를 원하는 투자자들이 많은 편이다.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당분간은 실명거래에 참여할 유인이 없을 것 같다”며 “신규 가입이 가능해져야 실명거래제 참여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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