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ICO(Initial Coin Offering)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관심이폭발적이다.

최근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업체 텔레그램이 ICO를통해 무려 8억5천만 달러(9,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사전 판매(Pre-sale)가 이 정도이고 향후 예정된 공개 판매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2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 글로벌 ICO규모는 2년 전만 해도 3천~4천만 달러에 그쳤으나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급기야 57억 달러를 넘어섰다.

ICO란특정 주체가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를 개발하고, 이를 주식 시장 상장(IPO,initial public offering)과 비슷한 방식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들은 이 암호화폐를 사업자가 만든 인터넷 생태계에서 거래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만약 해당 암호화폐가 거래소에 상장되면 이를 판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ICO자체가 금지돼 있어 블록체인 기업들 하나 둘씩 해외로 눈을 돌리고있다.
이에 따라 ICO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양성화해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형훈 블록미디어 연구소장은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선택적으로ICO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ICO가 갖는 의미와세계적 추세, 관련 규제 개선 등에 대해 기획시리즈로 알아본다.



1회 -


텔레그램이 지난 달 19일 8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그런데 투자유치 방식이 독특했다. 일반적인 채권이나 주식 발행이아니었다. 바로 ICO(Initial Coin Offering·신규코인 발행)다. ‘그램(Gram)’이라는암호화폐를 발행했다. 전 세계 10억명이 이용하지만 텔레그램은아직 수익 창출 모델이 없다. 이번 ICO에서 ‘TON(텔레그램 오픈 네트워크)’이라 불리는 3세대 블록체인을 기획하며 투자자 마음을 샀다.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인세쿼이아캐피털과 벤치마크 등이 81개 공인 투자기관으로 참여하며 화제를 모았다. 코인 발행 성공에 고무된 텔레그램은 두 번째 ICO를 예고했다. 두 번째까지 성공하면 텔레그램은 17억 달러를 조달하게 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ICO로 코인판이 또 한 번 들썩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 美 IPO 4분의 1 수준 자금 쏠려, 암호화폐 거래소 대형 M&A도 성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 가격은 최고가 대비 반 토막 수준이다. 주요 국가가 각종 규제책을 밝히며 거래가 지지부진하다. 이런 가운데신규 코인을 발행하는 ICO 시장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분석기관마다통계는 다소 다르지만 ICO가 급증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코인데스크에따르면 2015년 말 4000만달러(약 500억원)에도 못미쳤던 전 세계 누적 ICO 규모는 불과 2년 뒤인 2017년 말 57억달러(약 6조원)를 돌파했다. 올해도뜨겁다. 최근 온라인 투자 플랫폼 뱅크투더퓨처가 3300만달러를조달하는 등 연초 이후 ICO 자금 조달액은 16억6000만달러(약 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ICO 조달액 3분의 1을 두 달 만에 넘어선 셈이다. 텔레그램, 블록닷원 등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거래까지 포함하면 ICO 조달액은 더 늘어난다. 코인스케줄닷컴은 지난해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IC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 37억달러(약 4조원)라고 했다. 미국 뉴욕 증시의 지난해 IPO(Initial Public Offering·기업공개) 규모(356억달러)의 10분의 1 수준이다. 특히전통 대기업이 뛰어들며 판을 키웠다. 코닥이 그 사례다. 필름의대명사였던 코닥은 디지털 시대 그 위상을 잃어갔다. 잊혀갔던 코닥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암호화폐 덕이다.


코닥은 지난 1월 블록체인기반 이미지 저작권 관리 플랫폼 ‘코닥원(KodakOne)’을 만들고 이곳에서 사용할 암호화폐 코닥을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코닥은 ICO에 관심을 가진 잠재적인투자자를 4만명 확보했다고 밝혔다. 코인판에 대형 M&A도 성사됐다. 핀테크 스타트업 서클은 미국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플로닉스를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4억달러다. 이 거래의 실질적인 주도자는 글로벌 IB 골드만삭스로 알려졌다. 서클에 투자한 골드만삭스가 이번 인수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후문이다. 일본에서도지난해 하반기 ICO 자금 조달액이 벤처캐피털(VC)을 통한자금 조달액을 웃돌았을 만큼 열기가 대단하다.



■ 기업은 코인 발행해 자금 마련,투자자는 백서·CEO 경력으로 판단


ICO는증권시장 IPO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IPO는 신규로주식을 발행해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과정이다. 투자자는 기업가치를 보고 참여를 결정한다. ICO는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한 스타트업이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토큰(Token)’을 발행하는 것이다. 먼 옛날, 버스를 타기 위해 발행한 ‘버스 토큰’을 떠올리면 된다. 투자자들은이들이 발행한 토큰을 구입한다. ICO에 성공했다고 모든 토큰이 상장되는 게 아니다. 거래소는 기술력, 비즈니스 모델,경영진 등을 판단해 상장 여부를 결정한다. 상장이 되지 않으면 ‘다단계 토큰’으로 개인간(P2P) 거래만으로 매매한다.


ICO는 IPO와 같은 까다로운 상장 조건을 피해가면서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이 선호한다. 일본 닛케이신문이 “지루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벤처캐피털 사무실을 다닐 필요가 없다”며 “전 세계 투자자에게가장 빨리 돈을 조달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평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투자자는 무엇을 토대로 ICO에 참여해야 할까. ‘절대적인’ 기준은 ‘백서(white paper)’다. ICO를 하려는 기업은 거의 스타트업이다. 따라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상세하게기술한 백서가 기준이 된다. 백서에는 프로젝트 목적, 비즈니스(서비스) 모델, 모금 규모, 유통구조 등이 담긴다. 아울러 기업이 얼마만큼의 코인을 투자자에게제공하는지, 어떤 화폐로 투자 가능한지, ICO 기간은 얼마인지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경영진 경력과 성과도 주요 참고 자료다.ICO는 3단계다. 일반인이 참가할 수 없는얼리백커(Early Backer) 공개가 첫 번째다. 자본금얼마 이상, 거래 규모 얼마 이상 등 커트라인을 넘어야 참여 가능하다.텔레그램은 이 단계에서 거액을 모았다. 얼리백커 단계가 지나면 본격적인 투자 모금 단계인프리세일(Pre-sale) 구간에 접어든다. 이때 일반인이참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후 열리는 메인세일(Main-Sale)보다가격이 저렴하거나 더 많은 토큰을 준다.



■ ICO가 IPO와 다른점은 - 발행 주체도 기업 아닌 재단


ICO와 IPO가 비슷한 듯하지만 크게 달라 주의해야 한다. IPO는 주식 발행이다.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고, 매년 배당 가능성도 열려 있다. 주주로서 회사 내부 정보에 접근할권리를 갖는다. 지분이 많다면 경영 참여가 가능하다. 회사가파산하면 법적인 순서를 따져야겠지만 잔여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ICO는 IPO 같은 권리가 없다. 코인 가격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결정한다. 코인을 발행하는 프로젝트가 일반인 대상 서비스 프로젝트라면 해당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주식처럼 회사 내부 정보를 보거나, 경영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 회사 재산에 대해서도 아무런 권리가없다. 해당 프로젝트가 잘됐을 때 코인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는 과정도 명쾌하지 않다. 회사가 잘되면 기업가치가 뛰고 주가가 오르는 것과 달리 코인은 회사 가치와 별 상관이 없다. 회사 수익이 늘어나 자산이 불어도 코인과는 무관하다. 코인 가치는시장이 결정한다. 수급 요인이 가격에 가장 큰 변수라는 뜻이다.ICO를 진행하는 주체 역시 법적으로 회사가 아니다. 회사와 별개인 재단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ICO 투자는 기부금을 내는 것과 유사하다고비유하기도 한다. 검증 과정이 다소 허술하다는 비판과 함께 암호화폐도 옥석을 고르는 게 중요해졌다. 마치 증권가 테마주 열풍처럼 ‘붐’에 편승해 ICO에 뛰어드는 기업이적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굳이 블록체인을 쓸 필요가 없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겠다는프로젝트를 발표하며 ICO에 나서는 ‘묻지마 블록체인’이 너무 많다”며 “현재 ICO를 계획하는 업체 중 90% 이상 블록체인과 상관없다”고 꼬집었다. 암호화폐 시장조사기관 토큰데이터와 비트코인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902개 ICO 중 418건이 실패했다.418건 중 자금 조달 이후 실패한 경우가 276개다. ‘먹튀’했거나자금 조달 이후 계획된 사업을 이행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준실패(semi-failure)로볼 수 있는 113개의 ICO를 더하면 ICO 실패율이 59%까지 높아진다.지난해 실패한 ICO에 투입된 자금은 2억3300만달러(약 2563억원)였다. 이 돈은 허공 속에 사라졌다.


■ 지난해 국내 ICO 전면 금지


해외 ICO는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잠잠하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말 ICO 금지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ICO를 앞세운 유사수신 사기행위와 투기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좋은사업 모델이라면 주식 공모 등 공개된 시장에서 얼마든지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스위스, 싱가포르, 호주 등이 ICO에적극적인 가운데 ICO를 금지하겠다고 밝힌 나라는 한국과 중국 정도다.정부가 관련 법규를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지 방침 이후 국내 기업들은 해외 시장으로눈을 돌렸다. 국내 게임업체 리얼리티리플렉션은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세웠다. 이 회사가 개발한 증강현실(AR) 게임 ‘모스랜드’에 투자받기 위해서다. 의료 기록을 관리하는 국내 스타트업 메디블록은 지난해 11월 영국령지브롤터에 법인을 세웠다. 아이콘(ICON)과 보스코인(BOScoin)은 스위스에서 암호화폐를 발행했다. 이렇게 국내 기업이해외로 나가자 국내 ICO 금지 정책이 실효성 없이 자본 유출만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이 ICO를 전면 금지하고 거래소마저 무기한 금지시키자 제도권 밖 음성거래가 활성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정책을 수립할 때 ICO 제도 검토가 병행돼야한다고 강조한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IPO는국내 증시로 한정되지만 ICO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한류 유통 생태계를 비즈니스 모델로 앞세운강력한 코인이 등장하면 실물화폐(원화)보다 더 영향력 있는암호화폐를 보유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권에서도 ICO 금지를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 보호 효과는 미비하고 관련 산업 위축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언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ICO를 금지했다고 하지만 이는 투자자 보호에는 실효성이 없고 관련 산업만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며 “ICO는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나 중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ICO에 대응하는 국가들도 있다. 최근 스위스 연방금융감독청(FINMA)은 IC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ICO를 금지하기보다 악용되는 것을 막고,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바꿔 블록체인의 잠재력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주도해서 개발한 암호화폐 ‘페트로(petro)’ 사전 판매를 시작했다. 페트로는 베네수엘라가 보유한석유, 가스, 금, 다이아몬드등 원자재를 담보해 발행한다. 미국과 유럽연합 경제제재를 받는 베네수엘라는 암호화폐가 금융거래에 도움을줄 것으로 기대한다.


스위스 금융당국이 암호화폐 발행을 통한 IC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ICO를 3가지로 분류했다. 그중 증권 성격이 강한 ICO와 토큰에 대해서는 그에 준하는 법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스위스연방금융감독청(FINMA)은 “현재 ICO를 다루는 일관적인법적 원칙이나 관련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향후 ICO를평가하고 어떤 법을 적용할지 결정하기 위해 ICO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규제’가 목적이 아니다. 스위스 금융당국은 블록체인산업 ‘진흥’을 위한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명확한 규정이 없어 발생하는 혼란과 불확실성을 제거해 산업을진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때문에 한국도 ICO를 무조건금지하지 말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안을 찾으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ICO와 토큰은 지불형(payment), 기능형(utility), 자산형(asset)으로 분류된다. 지불형 토큰은 지불 수단 외 다른 기능이없는 토큰이다. 스위스법에서 자금세탁 규정을 따라야 한다. 증권으로취급되지는 않는다. 기능형 토큰은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에 디지털 접근권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오직 디지털 접근권의 목적만 수행한다. 발행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이미 사용 가능해야 한다. 역시 증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자산형토큰은 물리적 근거가 있고, 회사 수익 흐름에 참여하거나 수익에 대한 권리를 주는 경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주식, 채권, 파생상품에가까운 형태다. 이런 토큰은 증권으로 간주하고 증권법을 적용한다. 경우에따라 혼합된 형태의 ICO가 혼재한다. 예를 들어 기능형토큰인데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는 사례다. 이때는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적용받는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진행된 ICO는 약 5억5000만달러(약 6000억원)다. 세계 ICO 시장 14%를 차지한다. 지난해 ICO 토큰 총 가치는 현재 40억달러(약 4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ICO가 주로 진행되는 스위스 주크 지역은‘크립토밸리’라는 별칭까지 얻게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따온 별칭으로,암호화폐 허브 도시라는 의미다.


스위스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국가 차원 신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뚜렷하다. 요한 슈나이더 암만 스위스 경제부 장관(전 스위스대통령)은 “스위스가 ICO 시장의 번영과 함께 디지털 혁신을위한 ‘크립토네이션’이 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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