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뉴욕에 상장된 알리바바 등 자국 정보기술(IT) 공룡의 주식을 중국증시로 되돌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 당국이 해외증시에 상장한 대형 IT 기업들과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들을 자국 증시로 유치하기 위한 조치를 잇따라 발표하면서 중국 IT 분야의 ‘자국 중심주의’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신랑망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시가총액이 최소 2,000억위안(약 34조원) 이상인 해외증시 상장 기업에 대한 중국주식예탁증서(CDR)의 본토 상장을 허용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에 상장된 알리바바와 바이두, 홍콩증시의 텐센트 같은 중국 대어들의 본토 귀환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해외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중 시총 2,000억위안을 넘는 곳은 15곳이다.

CDR는 외국 기업을 중국증시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중국 은행이 특정 외국 주식에 대해 발행하는 예탁증서다. 현지 투자자들은 중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CDR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해외증시의 중국 기업들이 본토 증시에 상장된 효과를 볼 수 있다. CDR를 통한 이중상장으로 중국 IT 공룡들의 본토 복귀가 이뤄지는 셈이다.

증감회는 또 지난해 최소 30억위안 이상의 매출을 올린 IT 기업의 가치가 200억위안을 넘어설 경우 상하이 및 선전증시에서 IPO를 허용하기도 했다. 당장 큰 순익을 내지 못해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면 상장 기회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혜택이다. 증감회는 “정부가 내세운 국가발전전략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 가운데 인터넷과 빅데이터·인공지능·증강현실·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증시 상장 여부를 검증하는 위원회 조직을 따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SCMP는 “당국이 이미 중국증시 상장을 목표로 200여 중국 IT 기업의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알리바바·바이두 등 해외 상장 메이저 기업의 중국증시 상장 허용과 동시에 진행되는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 지도부 내에서 ‘테크노민족주의(techno nationalism)’가 한층 더 힘을 얻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SCMP에 따르면 현재 앤트파이낸셜과 샤오미·디디추싱 등 중국 유니콘 기업은 164개이며 이들의 기업가치는 모두 6,284억달러에 달한다.

중국 IT 기업들은 차등의결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장 직전 3년 동안 흑자를 유지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중국 본토가 아닌 해외 상장을 택해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증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중국 지도부가 자국 증시 활성화와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IT 기업들의 중국증시 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증권당국도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미 알리바바나 바이두 등 최소 3~4개 이상의 글로벌 증시 메이저 상장기업들은 본토 증시 상장 절차를 준비한 상태로 조만간 본격적인 CDR 발행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메이저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도 연말 홍콩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CDR를 통한 이중상장도 검토 중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증권당국이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징둥 등 홍콩과 미국증시에 상장된 8개 기업을 우선 CDR 발행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승인절차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통상 1~2년이 걸리는 상장기간 단축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혁신을 주도하는 IT 산업이 국가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테크노내셔널리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 소재 관칭요 민생증권연구원장은 “몇몇 기업들을 당국이 선호하게 되면 투자자금이 이들에게 몰릴 것”이라며 “사업적 의미보다 정부 노선을 따르는 것은 혁신을 해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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