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상화폐 발행을 통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암호화폐공개(ICO) 전면금지 방침을 발표한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이를 위한 법 개정이나 규제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어 블록체인 업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사이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은 스위스,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ICO를 진행하며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고 해외에서 인력을 고용하고 세금을 내고 있다. 유력기업 ICO를 사칭한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가상화폐거래소도 우후죽순 설립되고 있어 이용자의 피해도 우려된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 업계는 ICO 전면금지에 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 제시와 함께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3일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ICO를 추진하는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홍콩, 스위스, 싱가포르 등에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ICO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모든 종류의 ICO를 금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ICO 금지 방침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규제안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6개월이 지나도록 관련 입법활동도 없다. ICO를 금지하겠다고 엄포만 놓은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싱가포르에서 ICO를 추진하고 있는 한 기업 임원은 "해외에서 법무법인을 선임해 법인을 세우고 ICO를 추진하는 데만 억대 비용이 필요하다"며 "ICO를 마무리한 이후에도 싱가포르에 세금을 내야 하고, 그 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때도 또 세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ICO 금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 비용낭비가 초래되고 결국 국내 블록체인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명확한 설립기준과 가이드라인도 없다. 빗썸이나 업비트 등 기존 국내 거래소가 금융당국의 압박 속에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중국 자본을 등에 업은 신규 거래소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가상화폐를 사칭한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수용 카카오 대표는 최근 간담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카카오코인을 준다며 투자자를 유인하는 범죄가 속출해 이용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할 정도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거대 해외 가상화폐거래소가 우리나라에 진입하면서 공짜 코인을 뿌리며 이용자를 대거 모으고 있는데 정부는 거래소 설립 기준과 같은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사업자들이 자체 거래소를 오픈하고, 자신들이 발행한 가상화폐를 거래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오는 6월 지방선거 이후에나 관련정책들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있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시점에 허송세월하다간 블록체인 산업을 선도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다단계 같은 유사수신 행위 등만 잘 단속하면 가치 없는 가상화폐는 시장에서 퇴출될 텐데 무조건 금지만 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며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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