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올 상반기 중으로 인공지능(AI) 스피커 ‘구글홈’을 출시한다. 시장을 선점한 국내 업체들과 거실의 AI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한국 출시가 다소 늦은 편이지만 구글의 강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연계했을 때 시장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구글은 이달 초 국립전파연구원으로부터 AI 스피커 구글홈과 구글홈 미니의 전파인증을 받았다. 전파인증은 무선 기기의 적합성을 평가하는 제도로 국내 출시를 위한 필수 절차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제품 출시 1~2개월 전에 전파인증을 받는 점을 고려할 때 올 상반기 구글홈 시리즈가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에도 구글은 미디어 스트리밍 기기 ‘크롬캐스트’의 전파인증을 받은 후 두 달 뒤 판매를 시작했다.

구글의 AI 스피커 '구글홈'국내 AI 스피커 시장을 주도하는 곳은 SK텔레콤•KT 등 통신사와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 업체들이다. SK텔레콤이 2016년 ‘누구’를 처음 선보인 데 이어 KT는 ‘기가지니’를, 네이버와 카카오는 ‘프렌즈’와 ‘카카오미니’를 각각 선보였다. 삼성전자도 자체 AI 비서 ‘빅스비’가 들어간 스피커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구글홈 상륙에 긴장하는 국내 이통사


현재 AI 스피커의 국내 시장 규모는 약 150만 대로 추정된다. 통신사들은 인터넷TV(IPTV)와 AI 스피커를 연동한 서비스를, 포털 업체들은 택시 호출, 음식 배달 등의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와 자사의 검색엔진을 활용한 음성검색 기능을 내세우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구글홈 출시에 긴장하는 모습이다. 구글이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80%가 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스마트폰과 AI 스피커에 동일한 소프트웨어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해 소비자를 구글의 서비스에 묶는 ‘록인(lock-in)’ 전략을 펼치고 있다. 모바일과 거실에서 모두 구글 AI 서비스를 쓰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지난해 9월 구글은 국내에서 구글 어시스턴트의 한국어판을 출시했다. 이후 출시된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들은 구글 어시스턴트를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어 구글홈과 스마트폰의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업체들은 각 사가 가진 ‘킬러 콘텐츠’로 구글에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카카오미니의 주요 기능으로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 연동과 카카오 택시 호출을 내세우고 있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포털 업체라는 이점을 살려 국내 시장에 특화한 음성검색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실시간 라디오 청취와 11번가를 이용한 쇼핑을, KT는 IPTV 셋톱박스 기능과 통화 기능을 각각 AI 스피커의 주요 기능으로 강조하고 있다.

구글홈의 성공 여부는 부족한 국내 전용 콘텐츠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구글은 최근 국내 한 오디오북 업체와 제휴해 한국어 음성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업계에선 구글이 국내 최대 음원 업체인 멜론과 제휴해 음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멜론 관계자는 “구글 어시스턴트에서 멜론 앱(응용프로그램)을 불러올 수는 있으나 구글홈과 사업 진행은 논의된 바 없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시장을 개척하면서 쌓은 콘텐츠의 양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구글이 국내 AI 스피커 시장 판도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이통사 포털사 대응책 마련 부심
 
구글이 AI 스피커 '구글홈'을 올 상반기 국내에 출시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동통신업계가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AI) 스피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 검색, 영어 교육, 온라인.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등 자체 제작이 어려운 콘텐츠 분야를 중심으로 외부 업체와의 합종연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9월 SK텔레콤 '누구(NUGU)'를 시작으로 KT, LG유플러스, 네이버, 카카오 등이 AI 스피커 시장 선점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 구글홈의 등장은 파장이 클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구글은 국내 오디어북 전문업체 '오디언소리'와 제휴를 맺는 한편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로 멜론, 지니뮤직, 벅스 등 다양한 음원서비스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누구' 스피커로 멜론에 올라온 음원만 들을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콘텐츠 경쟁력이 낮은 이통3사는 외부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서비스 품질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이 네이버 정보검색에 맞서기 위해 위키디피아 기반 맞춤형 검색결과를 내놓은 데 이어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손을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SK텔레콤은 콘텐츠진흥원이 보유한 문화원형 데이터베이스(문화원형DB)를 다음달 '누구'에 탑재한다. 문화원형 DB는 우리나라 역사, 문화재, 민속, 고전 등 문화원형을 방송, 드라마, 영화를 비롯 캐릭터, 패션, 디자인 등 콘텐츠 산업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DB로 쌓인 문화원형 디지털 콘텐츠는 약 10만개에 이른다.

KT는 인기 캐릭터 '핑크퐁'으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와 어린이 전용 콘텐츠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청각 기반 AI 비서 '기가지니(스마트 인터넷TV)'에 핑크퐁을 접목해 어린이들이 핑크퐁 영어 교육 영상을 보면서 문장을 따라 말하면, 기가지니가 발음의 정확도 등을 분석해 "엑설런트!"라고 피드백을 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KT 관계자는 "스마트스터디에 전략적 투자를 했던 것이 영.유아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로 연결됐다"며 "로보 어드바이저 등 AI 기반 기술과 의료 영상 분석 등 B2B(기업간거래) 분야 업체와 협력을 통해 KT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는 경쟁사인 네이버와 함께 AI 스마트홈 구축에 나선 상태다. 네이버의 AI 플랫폼 클로바에 자사 인터넷TV(IPTV)와 가정용 사물인터넷(홈IoT)를 접목한 'U+우리집 AI' 분야를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 AI 통.번역 서비스인 '파파고'까지 갖췄으며, 영어교육업체 YBM과 함께 연령대별 맞춤 영어교육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자사 AI 스피커에 배달음식 주문 O2O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탑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지만 결국엔 네이버 AI 스피커와 연계됐다"며 "AI 스피커 주도권 확보전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앞으로는 어떤 업체와 협력해 얼마나 다양한 서비스를 구축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