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프랑스 파리에 인공지능(AI) 센터를 설립하고 AI 기술 영토 확장에 나선다. 이번에 설립되는 AI 센터는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유럽에 세운 AI 연구 거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달 28일(현지 시각)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삼성전자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CSO•사장)가 만나 AI 센터 설립에 합의했다고 1일 밝혔다. 삼성전자는 우선 파리에 20여명 규모의 AI 센터를 설립한 뒤 100여명 규모의 센터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통해 유럽의 우수한 AI 인재들을 확보하고, 프랑스어를 활용한 AI 서비스를 개발해 유럽과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프랑스에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구글•페이스북과 한국 네이버도 AI 연구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재계와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파리 AI 연구소 건립에 이재용부회장의 해외 시장 공략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석방 뒤 첫 공식 행보로 지난 22일 유럽 출장을 떠난 것도 AI 분야 투자와 인재 확보를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 투자 속도가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스마트폰•반도체 이은 미래 기술은 AI


삼성전자는 스마트폰•반도체에 이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AI 분야를 꼽고 있다. 세계 전역에 있는 34개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중심으로 AI 기술 인력 확보와 기업 인수•합병(M&A)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서울 우면동의 '삼성 서울 R&D 센터'와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의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인도 벵갈루루의 삼성 벵갈루루 R&D 센터는 음성인식•기계학습•자율주행차 등 AI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기에 투입된 엔지니어와 전문 연구 인력만 8000명에 달한다. 삼성의 AI 비서인 빅스비(Bixby), 이미지 자동 번역 서비스도 이곳에서 개발됐다. 작년 8월에는 캐나다 몬트리올대(大)의 AI 석학인 요슈아 벤지오 교수와 공동으로 이 대학 내에 AI 연구소를 세웠다. 올해 중에 프랑스 외에 영국 케임브리지, 러시아, 캐나다 토론토에 AI 센터를 추가로 건립할 계획이다. 지난 2월부터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와 AI 기술 공동 개발에 나섰다. 아시아, 북미, 유럽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AI 거점을 마련해 전 세계를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AI 기술 기업에 대한 M&A도 적극적이다. 최근 인수한 기업은 모두 AI 분야다. 지난해 문자를 음성으로 자동 변환해주는 기술을 개발한 그리스의 이노틱스와 AI 챗봇(채팅 로봇) 서비스를 만든 한국의 플런티를 인수했다. 지난 6일에는 AI 기반 검색 서비스를 개발한 미국의 킨진을 인수했다.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역시 AI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투자를 전담하는 삼성벤처스•삼성넥스트•삼성카탈리스트펀드의 투자 내역을 분석한 결과, 작년부터 올 3월까지 AI 관련 스타트업 17곳에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수한 AI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있으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투자 담당자들이 찾아가 직접 기술을 평가하고 투자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 글로벌 행보 시작한 이재용, 다음 행보는 북미


IT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앞으로 국내보다는 해외 사업에 집중하면서 AI 같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직접 챙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유럽에 체류하고 있는 시점에 마크롱 대통령과 손영권 사장이 만나 AI 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것도 이 부회장의 의지가 강력하게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IT 업계 고위 관계자는 "손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강조하는 해외, 미래기술 발굴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라며 "이번 출장길에서 이 부회장과 손 사장이 유럽에서 만나 그동안 검토 수준에 머물러왔던 해외 기업 M&A와 투자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사장은 2016년 자동차 전장부품 업체 하만 인수를 주도하면서 삼성이 전장부품 시장에 뛰어드는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길에 따로 파리를 들르진 않았다"면서 "프랑스 AI 센터 설립은 손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략혁신센터(SSIC)가 주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유럽 일정이 끝나면 북미 지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목적지로는 삼성의 AI 연구소가 있는 캐나다 몬트리올과 토론토 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몬트리올과 토론토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이 미래 기술 연구 센터를 짓고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유럽에 이어 북미 일대까지 한꺼번에 돌아보면서 변화하는 IT 트렌드를 직접 보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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