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7년 11월 15일 일본 교토 오우미야 여관으로 가보자. 밤 9시경 자객 6명이 나타났다. 노련한 검객을 필두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쇄도했다. 2층 끝 방엔 눈이 나빠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읽는 32살 청년이 있다. 자객은 칼을 내리쳤다. 첫 공격에 청년의 이마가 맞았다. 몸을 돌려 칼집을 들어 막았지만 다음 공격에 어깨와 등이 갈렸다. 마지막 공격은 이마를 다시 때렸다. 치명상을 입은 청년은 2층 계단 난관을 붙잡고 앉았다가 절명했다. ‘북진일도류’ 최고 검객이던 청년의 마지막은 허망했다. 그의 이름은 사카모토 료마.
당시 상황을 보자. 천황은 학문과 예술에만 몰두했다. 권력은 토쿠가와 막부가 260년간 행사했다. 말기에 와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외세에 이권을 뺏기는 등 무능했다. 사츠마번, 조슈번 등 강력한 지방 군벌이 나섰다. 도쿠가와 막부를 없애고 천황 중심으로 뭉쳐 외세를 물리치자 외쳤다(‘존왕양이’). 속내는 토쿠가와 가문의 자리를 뺏어 새로운 막부를 열 생각에 불과했다. 그 자리를 두고 사츠마번과 조슈번은 경쟁했고, 관계는 최악이었다.
여기서 떠돌이 무사 사카모토 료마가 등장한다. 토쿠가와 막부 중신 가스 가이슈를 암살하러 갔다가 부국강병론에 감화되어 스승으로 모셨다. 그후 고베 해군학교(일본 최초의 해군), 가이엔타이(일본 최초의 무역회사)를 세웠다. 사츠마번과 조슈번을 화해시켜 동맹을 만들어 도쿠가와 막부 대항세력으로 키웠다. 전쟁이 임박하자 도쿠가와 막부가 스스로 천황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제일 군벌로 남는다는 대정봉환의 안을 관철해 내전을 막았다. 대정봉환은 패자 없이 모두 승자가 되는 기묘한 방안이었다. 천황은 약 700년 동안 행사한 적이 없던 권력을 갖게 됐다. 도쿠가와 가문은 권력을 잃었지만 망하지 않고 최고위 행정 관료가 됐다. 사츠마번, 조슈번은 고위 관직을 갖고 일본의 행정을 담당하게 됐다.

사카모토 료마가 대정봉환을 이루며 제안한 정책을 보자. 천하의 인재를 찾아 고문으로 위촉한다.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하고 유능한 제후에게 관직을 내린다. 외국과 적극 교류한다(‘양이론 폐기’). 헌법을 정하고 법령을 정비한다. 국회를 둔다. 육해군 등 국군을 두어 국방을 담당한다. 물가를 외국 평균에 맞춘다. 당시로선 파격이다. 황족, 군벌로만 인재를 충당하던 시절에 누구나 실력이 있으면 등용하자고 했다. 외국 교류는 양이론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더욱 파격이다. 오히려 외국에게서 배우자고 선언했다. 국민을 참여시키는 대의제 국회를 열겠다고 했다. 봉건사회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국군은 국가의 기본이다. 헌법과 법령은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법치에 의해 국가를 다스리자는 뜻이다. 물가를 외국 평균에 맞추는 것은 무역 활성화에 대비한 조치다. 그의 제안은 메이지 유신 이후 거의 실행됐고 그 결과 일본은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
사카모토 료마 이야기를 길게 썼다. 그가 처한 일본 상황이 21세기 우리가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는 세계 인공지능 시장을 2023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19%에 약 2조575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구체적인 수치의 신빙성은 믿기 어려워도 인공지능 성장 추세에 대한 이견은 없다.
우리 정부는 인공지능 산업을 키우고 그 위험에서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정책을 펴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정책 틀은 과거 군사정부의 일본식 개발계획에 따른 진흥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나머진 EU, 미국 등 선진국 정책을 그대로 베껴오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누구나 예상한 가능한 정책이 먹힐까. 기대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디지털 국가관의 정립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으로 이뤄진 오프라인 국가에 그쳐선 안된다. 글로벌 차원의 온라인 세상이 우리 영토에 들어간다. 우리 기업을 포함하여 온라인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활동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 국민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한국이라는 디지털 국가를 완성하는 수단으로 인공지능을 가꿔야 한다.
둘째 인재 등용이다. 한민족의 순혈주의를 버려야 한다. 피부색이 다르면 어떤가. 인종이 다르면 어떤가, 국적이 다르면 어떤가. 그들 중에서 인공지능 산업을 키우고 위험을 제거하여 안전을 만들어갈 인재가 있다면 누구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 활동할 필요도 없다. 다른 나라에서 활동해도 좋다. 국제 교류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역량강화에 도움이 된다. MOU 등 무늬만 국제협력을 하지 말고 인재를 통해 글로벌 상생 기회를 찾아야 한다. 중고등, 대학교육도 그에 걸맞게 창의력과 원천기술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모든 국민이 인공지능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정부, 기업, 전문가만 독점해선 안된다. 인공지능은 온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나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줄 수 있지만 내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 강력한 인공지능은 국민의 생명, 신체 안전을 중대하게 위협할 수 있다. 인공지능 국민회의를 만들어 모든 국민이 갑론을박 토론을 거듭하여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넷째 인공지능 산업에 모든 국민이 의미 있는 노동으로 기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 소득이 줄거나 없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들에게 기본소득이나 코인을 제공하자고 하지만 근시안적 의견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미 있는 기여 없이 그냥 주어지는 소득에 부담스러워 한다. 디지털 걸인에 다름없다. 국가라면 인공지능 시대에 일하고 싶은 사람에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이 데이터 생산이든 뭐든 상관없다. 삶의 의미가 있는 밥벌이, 존재증명, 자아실현 수단이 되는 일자리여야 한다. 어떤 형태의 기여든 노력의 대가로 급여가 주어져야 진정한 인공지능 시대가 된다.
다섯째 경쟁전략이다.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과의 정책 경쟁에 허겁지겁 따라갈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맞는 정책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감시한다. 자국에서 공장을 세우고 기여하는 기업에 보조금 지급 등 우대한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기업만 챙겨선 안된다. 세계적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 사업을 실험하고 실행할 기틀을 제공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주는 것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검토해 보자. 우리나라 시장이 커져야 우리나라도 성장한다.
여섯째 인공지능 기업에 대한 개별적 지원 등 미시정책 보다 인공지능 생태계를 조성하고 참여기업이 스스로 자력갱생할 수 있는 거시정책을 핵심으로 해야 한다.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답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거버넌스 확립이 중요하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각 행정기관이 상호 협력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칸막이식 정책을 추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령탑을 갖춰 일사분란하게 인공지능 활성화 정책과 부작용 대책을 끊임없이 논의하고 협력하고 조율하고 정리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대해 엄격한 법적, 정책적 규제를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법률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으면 급변하는 인공지능 산업과 시장을 정확하게 규율하기 어렵다. 잘못했다간 기술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생각을 바꿔 인공지능을 이용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과 병폐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두고 펼쳐지는 세계적 각축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정책도 창의적이어야 한다. 옛 정책을 답습하거나 외국 정책을 베껴 쓰다가 인공지능 낙오국이 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인공지능은 성장 모멘텀을 찾는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질서에서 새로운 미래를 정조준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 일상화, 개인화는 국민들 삶속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 저성장시대에 체질 전환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인공지능은 기업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이 때를 놓치면 기대 가득한 선진국 문턱이 우리의 무덤이 될 수 있다. 국민, 산업계, 정부가 힘을 모아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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