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내달 23일 임시주총서 '집중투표제 제안' 다룬다
MBK 반대 배경은 투자금 회수 난항 때문?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 정부·정치권의 밸류업 기조에 발을 맞추려는 발언과 행보를 보여온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측이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인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서는 돌연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금융투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내달 23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주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집중투표제란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주주는 이사 후보자 1명 또는 여러 명에게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다. 기존의 단순 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경우 과반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큰 반면, 집중투표 방식을 이용하면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해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 단체나 금융당국, 정치권 등에서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권장되고 있다. 정부도 집중투표제가 기업 지배구조를 나타내는 핵심 정보라고 판단해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들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인수를 노리는 MBK가 강하게 반발하는 원인은 고려아연에 집중투표제가 적용될 경우 투자금 회수 등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집행임원제와 이사회 장악을 위해 자신들이 추천한 14명의 이사 선임의 건 외에 주주가치 제고나 소액주주들을 위한 안건을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아연 측에서 먼저 다양한 주주친화 정책을 내놓자 당황한 기색을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반공모 유상증자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시장 혼란과 주주, 투자자 우려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412/218146_223290_521.jpg)
집중투표제의 취지와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해온 MBK 측은 '이번에는 안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유미개발의 주주 제안에 따른 집중투표제 도입 청구 절차는 법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문제가 없고, 특히 조건부 집중투표 청구(정지조건부 주주제안)는 다수 사례가 이미 실행된 바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역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권장해 오고 있다. 정부는 상장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주 등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 지배구조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보고서에 명시해야 하는 15개 핵심 지표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포함돼 있다.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적인 정보로 많은 주주들이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다.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MBK가 국내 대기업 전반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만큼 집중투표제 자체를 반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MBK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워 놓고, 지배구조가 매우 부실한 것으로 평가되는 영풍과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명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여기에 더해 소수주주 권익 보호의 대표 제도로 꼽히는 집중투표제를 반대하기까지 하면서 결국 MBK가 바라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투자금 회수일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